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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Mar 05. 2024

"흙도 불맛을 봐야 술잔이 되지"

- 떠난 이의 어떤 손

ⓒ 스침

# 오지(奧地)의 역설

- "어이쿠. 이 길 안 났으면 여길 어찌 오지?"

국도를 타다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산간벽지, 오지란 얘기다. 경북 청송이 그랬다. 오죽하면 개인적으로 청송 하면 '교도소'만 떠올랐겠는가. 그러니 "청송으로 시집간다면 눈물바람을 해댔지"란 말이 나올 법하다. 그렇게 자연환경이 인적을 막은 청송은 덕분에 '주왕산'이란 보물을 지금껏 품을 수 있었다. 폭포와 기암괴석에 협곡, 그리고 누구나 사진 한 장쯤은 봤을 능수버들의 주산지까지. 고개 돌릴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땅이다. 오지의 역설이다.


ⓒ 스침




- 산세와 주산지에 빠져 그런 곳만 찾곤 했다. 그러다 2008년 여름 '옹기(甕器)'를 발견했다. 질그릇 옹기는 청자, 백자, 분청회청사기와는 그 결이 다른 서민의 그릇이다. 옹기는 결코 관상(觀賞)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김장을 하고 이러저런 장을 담그는 문화를 가진 우리네의 생활필수품이었다. 부엌 한 구석이나 장독대가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상감이니 청화니 철화 같은 기법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다. 그 소박함이라니.






ⓒ 스침




# 그저 투박했던 손

- "누가 시킨 건 아니고, 집안에서 옹기를 만들어 팔았으니까 저절로 배운 거지 뭐. 요즘은 전부 틀로 찍어 내지 나처럼 손으로 직접 빚는 사람이 드물어."


- 인사를 하고 말을 걸어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물레질만 하던 청송 옹기장 이무남 옹. 당시 54년째 한 자리에서 옹기를 빚었다는 그는 "따져보니까 군대 생활 3년이 제일 편케 지낸 때였다"라고 했다. 평생 소박한 질그릇만 빚은 그는 꾸밈과 담 쌓은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고단하지 않은 삶이 없다지만 그의 고단함은 가늠이 안 되었다.  




ⓒ 스침

- 1970년대 중반 플라스틱 그릇이 등장하고, 기업들이 젊은이들을 도시로 빼가면서 옹기의 시대가 저물었다. 군생활이 가장 편했다는 그는 고집스럽게 경제적이고 편한 가스/전기 가마를 마다하고 있었다.


-"하던 대로 해야 옛날 그릇이 나오지, 약품 바르고 가스 가마에서 굽는 게 어디 그릇이겠어. 그런 데다 된장, 간장 넣어두면 다 상해. 꼭 요즘 사람들 심성 같아. 나한테 옹기 가르쳐달라고 온 사람치고 진득하게 세월을 버틴 사람이 없어. 무슨 일이든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것 아녀. 쯧쯧."


- 고집스러운 그를 만나고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1950)> 속 송영감을 떠올렸었다.      



ⓒ 스침
ⓒ 스침


# 진혼곡

- 상주 사람인 그가 동네처녀들조차 시집가기를 꺼렸다는 청송으로 흘러든 건 순전히 흙 때문이었다. 옹기는 몇 개를 포개서 굽기 때문에 흙의 힘이 좋아야 가마 속에서 불을 맞으며 주저앉지 않고 견딜 수 있다. 또 통기가 잘 돼야 음식물을 보관하기에 좋다.


- 그런 조건들을 두루 갖춘 흙을 찾아 오지까지 들어왔던 것. 여기에 소나무와 참나무를 태운 재를 잿물로 쓴다. 그의 옆에서 무심하게 지켜보던 동네 노인이 한 마디를 툭 던지고 자리를 털며 일어섰다.

"볕이 좋아 잘 마르겠제."


- 검색을 하다 우연히 그가 지난 2021년 9월 세상을 떠났음을 알았다. 지금은 3남이 옹기를 통째 벽에 박아 넣은 부친의 도막장을 지키고 있단다. "흙도 불맛을 봐야 술잔이 되지"라고 일갈했던 그는 이골이 난 일손을 저승에서 어찌 놓고 계실까? 가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조용히 생을 마감했던 소설 속 송영감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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