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니 12시 반이었다. 13시간을 내리 잤다. 이렇게나 늦잠을 자다니. 평소에는 늦잠 자고 싶어도 눈이 자동으로 떠지는 바람에 어려웠는데 어제 새벽 4시에 일어난 탓일까? 여행 체력이 바닥나는 게 느껴진다. 투어라도 하려고 찾아보긴 했는데 오후에 눈 뜨니 다른 곳에 가기 싫었다. 숙소에 내가 제일 많이 투자했는데 숙소에만 있어도 여행 뽕 뽑는 거 아냐? 대단한 합리화를 한다. 결국 브리즈번도 누군가 살아가는 동네, 내가 사는 동네가 나에게 그리 큰 감흥이 없는 것처럼 이 도시도 그리 대단한 관광지는 없는 거 같다.
사실 나는 남들이 좋다 하는 관광지는 항상 와닿지 않았다. 유명해서 가긴 한다만 느껴지는 건 없다. 내가 오로지 바라는 건 축구인가 보다. 축구장 가는 게 그 어떤 여행지보다 재밌고 알차다. 어제 걷던 브리즈번 강은 좋았다. 강도 좋아하는 편이네.
저녁에는 장을 봤다. 호주 온 지 거의 열흘 가까이 되어서야 장을 제대로 봐서 먹는다. 그전에는 샐러드 키트나 길거리 음식으로 식사를 때웠다면 오늘은 호주 사람들이 아침 식사 먹을거리를 샀다. 그리스식 샐러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실수로 사버렸다. 어쩐지 가격이 너무 비싸더라니. 비싼 이유였을 올리브와 큐브 치즈를 싫어해서 모두 버려야 했다. 한 5일은 먹을 만큼 푸짐하게 샀더니 40불이 나왔다. 카페에서 한 끼 대충 먹으면 20불이 나오는데. 역시 직접 해 먹는 게 최고다. 햄버거나 피자 같은 음식 보단 장 봐서 해 먹는 게 호주스러운 식사 아닐까? 그래놀라에 요구르트, 곡물빵에 베이비 당근까지 야무지게 씹어먹었다. 나름 만족스럽게 식사도 했다.
문제도 많다. 얼굴 트러블이 진짜 난리 났다. 손빨래는 영 잘 못 했는지 마르는 빨랫감에서 썩은 내가 난다. 얼른 집에 가서 전부 세탁기 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