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람 Aug 18. 2023

첫 번째 애들레이드 일기

2023. 7. 29.
 애들레이드로 떠나는 날이다. 친절한 집주인과는 전날 인사를 마무리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우버를 잡아탄다. 와, 두 번 다시 묵고 싶지 않은 스타일의 숙소. 기생하는 마음으로 사니까 진짜 불편하다. 다음에 여행할 때는 숙소는 무조건 호텔. 편안한 잠자리를 좋아하는 내 본 모습을 알게되어 고마운 경험은  이제 보내버리련다.

날이 참 좋다. 비행기가 무사히 뜰 수 있겠다.

 짧은 비행이지만 기내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알아서 정해진 메뉴로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10불 내에서  골라야 했다. 맛이 궁금했던 살라미와 코코넛 초콜릿 바를 골랐다. 하나에 5불이었다. 가격은 사악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탈로그를 볼 때만 해도 뭐 저런 걸 기내식으로 파나 싶었다. 비싼 가격의 기내식도 쉽게 주문하던 호주인들이 신기했는데 그 마음을 내 배고픔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행한지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엄청 배가 고파졌거든. 살라미는 진짜 별로였다. 베어 무는 순간 기름이 팍 터지면서 찝찔하게 혀에 닿는다. 탄산이랑은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과한 맛이었다. 한 입 먹고 버렸다. 다만 저 코코넛 초콜릿 바가 요물이었다. 진짜 맛있다. 초코귀신 박혜정선수와 정민영 선수가 생각이 났다. 이걸 한국까지 챙겨가서 선물이라고 주면 웃기겠지? 그만큼 맛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솟을 정도로 맛있다.

 애들레이드에 내려서 한식당을 찾았다. 아침 일찍 출발하다보니 제대로 밥을 못 먹어 서러웠는데 그 마음을 달래려고 '서울'에 갔다. 한식당 이름이 서울이다. 호주와서 처음 먹는 제대로된 한식. 비빔밥인데 호주맛이었다. 채 썬 야채들이 예뻐 보인다. 대부분 새콤 달콤하게 절여져 있어 알록달록한 단무지에 밥 비벼 먹는 맛이다. 국물은 오뚜기 사골 국물을 데워 먹는 맛. 김치도 아주 맛있고 계란이 수란인 게 귀여웠다. 내가 알던 비빔밥이랑 달라서 좋았다. 이런 것도 현지식 아니겠어? 얼른 먹고 내 숙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쭈욱 가는데 아차차, 시간여행을 해버렸나보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한 1960년대쯤의 시골이 나왔다. 야트막한 들판과 낮은 층의 건물들. 내 숙소는 황야의 카우보이를 위한 쉼터 느낌이 나는 모텔이었다. 까만색으로 칠해둬서 컨테이너인가 싶었는데 안에 보니 나무문으로 된 오래된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다. 그래도 좋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는데 웃음이 절로 났다. 

 방 안은 깔끔했다. 퀸 사이즈 침대에 캐리어 펼칠 곳이 넉넉했다. 창문을 못 여는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화장실은 굉장히 작았는데 이것도 뭔가 호주 옛날 집 감성이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호주인 앨리스(?), 오늘은 애들레이드의 우리 할머니 집에 놀러 왔는데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꽤 낡았어. 그래도 난 할머니 집 참 좋아해!
휴가마다 놀러 오는 편이야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책상과 의자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이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 정신 멀쩡한 사람 맞습니다.

 주변에 식당을 찾으니 아무것도 없다. 호주는 제일 아쉬운 점이 오후 2시 즈음에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다. 오후에도 갈 수 있는 곳은 조금 떨어진 곳에 피자와 커피를 파는 카페였다. 글 쓸 생각으로 아이패드를 챙겨 들고 카페로 갔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게 고마웠는데 보니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장사하는 곳이다. 아이스 모카를 주문했다. 자기네는 빵도 맛있으니 먹어보라 한다. 레몬 케이크가 있길래 레몬 케이크로 하고 아이스 롱블랙으로 주문을 바꿨다. 막상 나온 건 아이스 모카와 레몬 케이크였다. 레몬 케이크를 할아버지께서 시원하게 손으로 잡아 꺼내셨다. 역시 여기 사람들은 빵이 일상이라 그런지 우리나라 식당 아주머니들이 손맛으로 승부하는 것 처럼 맨손으로 빵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룬다. 다행히도 케이크가 짭짤하진 않았다. 3시간 동안 글을 쓰다 해가 떨어질 거 같아서 자리를 정리했다. 어두워지면 혼자 걷기엔 무서운 길이다.

  밤부터 선수단 선물을 준비했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선수들에게 힘이 되기도 어렵겠다 싶었다. 봉투를 꺼내고 편지와 초콜릿을 넣고 스티커로 마무리했다. 하나하나 건네 줄 생각으로 알아보기 쉽게 봉투에다 이름과 번호도 크게 썼다. 어째 준비하는 선물마다 초등학생이 준비한 것 같지만 좋아해 주시는 고마운 선수님들이기에 정성스레 준비해 본다. 하나같이 소중한 내 사람들.



이전 04화 세 번째 시드니 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