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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라 Sep 19. 2018

주부 놀이

제주살이 열엿새

오늘은 수요일.

수요일은 막내가 4교시 하는 날이라

1시에 끝난다.

어딜 가기도 어정쩡한 시간이라

오늘은 주부 놀이.

구석구석 집안 청소하고 특별식 만들기.


청소를 마치고

아이들 간식으로 고구마도 구워 놓는다.



.

.

.


제주에 오니

살림이 단촐해서 좋다.

바리바리 묵은 짐이 없으니

집이 가볍고 시원하다.

물건이 별로 없으니 정신도 차분해진다.



여태 쓰지도 않는 짐을 이고.지고 살았구나.

읽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먹지 않을 식재료

안써도 버리기 아까운 살림살이들을

구석구석 쌓아 놓고

나의 에너지를 빼앗기면서 살았구나 싶다.

그것들 없이도 이렇게 잘 지내는 것을!

( 없으니 더 잘 지내는 것이겠지! )


6개월간 빌려 살고 있는 제주집.

집이 좁으니 청소가 한결 편하다.

책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필요한 옷 몇 벌만 가지고 매일 빨래하고

(중학생 여름교복이 딱 2벌이라 매일 빨아야한다)

설거지는 바로바로

( 내가 설거지 하는 동안 아이들은 빨래널기 )

매일 오후에 그날 먹을 저녁 식사거리 장보고

반찬은 메인 한 가지에 김과 김치 정도

남의집 살림살이니 조심해서 쓴다.



집보다 깨끗하고

집안일이 간단하다.

슬금슬금 살림이 늘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중.



김치를 많이 먹는데

사먹는 김치 너무 비싸고

내 김치를 먹고 싶어서 좀 담고 싶은데

그러자면

김치 담을 통도 있어야 하고

배추 절이고 버무릴 큰 볼도 있어야하고

양념 만들 큰 냄비도 있어야 한다.


어휴~~

그냥 사먹고 말지,,,


이런 고민들은 매 순간 있다.

유혹을 넘기지 못하고 큰 냄비를 하나 샀다.

반값 세일해서 17,000원이니

6개월만 써도 아깝지 않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큰 냄비를 꼭 필요하다고 샀으니

이참에 큰 냄비로 하는 요리까지 한다.

얼씨구,,,


오늘 주부 놀이에 당첨된 요리는 감자탕.

제주는 육지보다

돼지 등뼈에 살이 실하게 붙어있다.

감자도 기차게 맛있다.


요리책 보고 만들었으니 무척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한 끼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보니 과식하고 말았다.


감자탕엔 고기가 많지 않으니

애들이 많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애랑 막내가 별로 안먹는다.



아!

이거구나,,,!

내가 여태 이러고 살았구나!!



나중에 모자랄까봐

꼭 필요할 때 없어서 곤란할까봐

걱정과 두려움에

자꾸 쟁여 놓고

더 많이 사고

넉넉하게 만들어 놓는다.

( 나 전생에 개미였나? 아님 베짱이? )


나를 믿자.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리 준비하느라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 돈 낭비는

이제 그만!!


나는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고

애들도 이젠 커서 좀 기다릴 수 있다.

조금 불편한 것도 참을 수 있다.



아직도 배부르다.

내일 아침엔 얼굴도 퉁퉁 부어있겠지.

이젠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살자.


 .

.

.

남은 감자탕은

( 큰 냄비에서 깨끗하게 덜어 먹었으니 )

늦기 전에 선배네 집으로~

선배에게 감자탕 맛있다고 문자가 오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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