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열엿새
오늘은 수요일.
수요일은 막내가 4교시 하는 날이라
1시에 끝난다.
어딜 가기도 어정쩡한 시간이라
오늘은 주부 놀이.
구석구석 집안 청소하고 특별식 만들기.
청소를 마치고
아이들 간식으로 고구마도 구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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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오니
살림이 단촐해서 좋다.
바리바리 묵은 짐이 없으니
집이 가볍고 시원하다.
물건이 별로 없으니 정신도 차분해진다.
여태 쓰지도 않는 짐을 이고.지고 살았구나.
읽지 않는 책
입지 않는 옷
먹지 않을 식재료
안써도 버리기 아까운 살림살이들을
구석구석 쌓아 놓고
나의 에너지를 빼앗기면서 살았구나 싶다.
그것들 없이도 이렇게 잘 지내는 것을!
( 없으니 더 잘 지내는 것이겠지! )
6개월간 빌려 살고 있는 제주집.
집이 좁으니 청소가 한결 편하다.
책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필요한 옷 몇 벌만 가지고 매일 빨래하고
(중학생 여름교복이 딱 2벌이라 매일 빨아야한다)
설거지는 바로바로
( 내가 설거지 하는 동안 아이들은 빨래널기 )
매일 오후에 그날 먹을 저녁 식사거리 장보고
반찬은 메인 한 가지에 김과 김치 정도
남의집 살림살이니 조심해서 쓴다.
집보다 깨끗하고
집안일이 간단하다.
슬금슬금 살림이 늘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중.
김치를 많이 먹는데
사먹는 김치 너무 비싸고
내 김치를 먹고 싶어서 좀 담고 싶은데
그러자면
김치 담을 통도 있어야 하고
배추 절이고 버무릴 큰 볼도 있어야하고
양념 만들 큰 냄비도 있어야 한다.
어휴~~
그냥 사먹고 말지,,,
이런 고민들은 매 순간 있다.
유혹을 넘기지 못하고 큰 냄비를 하나 샀다.
반값 세일해서 17,000원이니
6개월만 써도 아깝지 않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큰 냄비를 꼭 필요하다고 샀으니
이참에 큰 냄비로 하는 요리까지 한다.
얼씨구,,,
오늘 주부 놀이에 당첨된 요리는 감자탕.
제주는 육지보다
돼지 등뼈에 살이 실하게 붙어있다.
감자도 기차게 맛있다.
요리책 보고 만들었으니 무척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한 끼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보니 과식하고 말았다.
감자탕엔 고기가 많지 않으니
애들이 많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애랑 막내가 별로 안먹는다.
아!
이거구나,,,!
내가 여태 이러고 살았구나!!
나중에 모자랄까봐
꼭 필요할 때 없어서 곤란할까봐
걱정과 두려움에
자꾸 쟁여 놓고
더 많이 사고
넉넉하게 만들어 놓는다.
( 나 전생에 개미였나? 아님 베짱이? )
나를 믿자.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리 준비하느라
에너지 낭비, 시간 낭비, 돈 낭비는
이제 그만!!
나는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고
애들도 이젠 커서 좀 기다릴 수 있다.
조금 불편한 것도 참을 수 있다.
아직도 배부르다.
내일 아침엔 얼굴도 퉁퉁 부어있겠지.
이젠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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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감자탕은
( 큰 냄비에서 깨끗하게 덜어 먹었으니 )
늦기 전에 선배네 집으로~
선배에게 감자탕 맛있다고 문자가 오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