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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라 Jan 07. 2019

아이들의 생명력과 놀이 본능

제주살이 백 스무 닷새 190106

제주 집의 주말 하루는 자유의 날.


자유의 날은 제주에 와서 생겼다.

홀가분하게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하는 날.

아이들은 주말 하루 게임을 원했고,

나는 혼자만의 제주 여행을 원했다.


게임은 엄마 출발하는 시간에 시작해서 엄마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끝난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가 일찍 나가서 늦게 돌아오기를 염원한다. 나도 놀다 늦게 들어와도 걱정이 덜 된다. 아이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런데

어제는 내가 집에 들어가도,

주섬주섬 어지러진 집을 치우고 저녁 준비를 하며 계속 이야기 해도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게임.

애들은 밥 생각도 없단다.

나도 노곤해서 늘어져 있는 사이 밤 아홉시가 넘었다. 겨우 게임기를 수거했는가 싶었는데

TV소리가 들린다.


거기서 나의 분노가 폭발했다.

12시간 가까이 게임하고도 TV를 보냐고 소리를 꽥 질렀다. 내일은 12시간 공부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집안 공기가 싸해진 상태로 잠들었다.

아침이 되어도 여전히 화가 난다.


아이들은 아침 먹고 순순히 공부를 시작한다.

화가 가라앉지 않아 틈만 있으면 화가 넘실대는 나를 본다. 조용히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


나는 식탁에 앉아 책을 보고

아이들은 내가 시킨대로 대로 착실히 공부 하고 있는데도 왜 기분이 풀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점심 먹고 쉬는 시간에 거실 테라스에 나가서 운동하는 아이들.

피구도 하고 축구도 하며 재밌게 노는 녀석들.


여전히 기분은 풀리지 않지만 그래도 어미라고 애들끼리 사이 좋게 노는 모습을 보니 사진도 찍어주고 놀이 시간도 30분 추가해준다.


1시간 30분 쯤 공부하고 30분 쯤 운동하고,

또 공부하고 운동하기를 반복한다!


저녁 먹기 전까지

둘째는 2학기 사회 문제집 3분의 1을 풀고

큰애는 반바지 만들기 바느질 숙제를 한다.

막내는 문제집도 풀고 일기도 쓰고 책도 읽는다.

나는 읽고 있던 책 두권을 다 읽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놀랍다.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공부하는 것도 놀랍고

서슬퍼런 상황에서도 지들끼리 놀이를 찾아내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노는 모습도 놀랍다.


저녁으로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는다. 저녁 먹고 쉬었다가 밤 아홉시 반까지 공부하기로 했지만 아이들의 모습에 슬그머니 독기가 빠져버린 나. 게다가 둘째는 쉬러 들어가더니 잠이 들었고, 막내는 지루함의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역력하다. 큰아이의 반바지도 거의 완성 단계.


애들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내가 피곤해서 더 못버티겠다. 아이들에게 TV를 허락하고

그림 도구를 챙겨 나온다.


일요일 밤이라 그런지 왠일로 사람 없는 스타벅스에 앉아 무념무상의 펜드로잉.


한시간 좀 넘게 집중해서 그리고 나니

나의 에너지가 바뀌어 있었다. 더이상 화도 안나고 기분이 한결 가뿐하다. 생각의 흐름을 끊는데에는 역시 자신을 잊어버리고 몰입해서 노는 것이 제일 이구나!

머리를 비우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 .

나에겐 그런 종류의 아이템이 몇가지 있다.

책, 스도쿠, 등산, 그림, 뜨개질, 바느질,,,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중하는데 방해 받으면 엄청 화나니까) 그래서 카페, 목욕탕, 도서관에 혼자 가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기분이 좋아진 내가 속도 없이 발랄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니 애들은 개그콘서트를 보며 낄낄대고 있다가 나를 반겨준다.

큰애가 완성했다고 신나서 반바지를 보여준다.



오늘도 아이들이 미숙한 어미를 견뎌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 쪽팔려. 빨리 크자.



뭔가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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