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라 Jan 08. 2019

당신이 옳다

제주살이 백 스무 엿새 190107

월요일


큰아이 등교.

막내 방과후 교실 등하교.

둘째 사고 싶은 책 사러 시내 서점 방문.

책 몇 권 사고 집에 돌아와 쉬다가

큰아이 하교 후 정형외과 물리치료.


동네 새로생긴 떡볶이 포장해서 저녁먹기.


이리저리 쫒아다니며 애들 치닥거리에

하루가 다 지나갔다.


잠깐 바람 쐬러 함덕 바닷가에 나와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내가 이 밤에 여기 나와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텅 빈 기분이다.



차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한참 통화 한다.


온전히 혼자만의 휴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나.

설연휴에 혼자 떠나는 쿠바 여행이 편치 않은 남편.


서로가 자신의 필터를 통해 듣고,

자신의 판단 평가를 얹어서 조언 충고가 난무하는 대화를 하고 집에 돌아 와서는


아까 서점 나간 길에 사온

<당신이 옳다>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 보니 요 며칠 내가 귀신에게 홀린 듯이 똑 같은 자리를 뱅뱅 돌고 있었다는 생각에 섬뜩하다.




지난 주말에 아이들에게

"12시간 게임 했으면 됐지, 또 TV를 보냐"

불벼락을 내렸는데,

그것이 나에게 내린 불벼락이었을 수도 있다.


"제주에 왔으면 됐지,

뭔 혼자만의 시간이 또 필요해!"


내 자신을 혼내키는 말에

괜한 불똥이 애들에게 튀었다.


애들이 원인이 아니니 애들이 착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씨근덕대고 있던건가 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나에겐 산소공급이나 마찬가지이다. 어제 집에서 기진맥진 하다가 기어이 밤마실을 나고오 나서야 기력이 회복된 것을 보면 확실하다.


그래서 뭔지는 몰라도 애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 자신에 대한 공감이 충분하지 않으니

남편말에 공감해줄 여력이 있을리가 없지.

그러니 아까 통화할 때 판단 평가를 듬뿍 얹은 조언 충고를 팍팍 쏟아 부었지.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해야만 한다"는 상황으로 몰아 넣고 있으니

무려 제주에 살고 있음에도 우울하고 답답해서 휴가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요새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속이 헛헛했구나. 그래서 요새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구나.


요새 나를 압박하는 "~해야만 한다"는

<놀지만 말고 돈 벌어야지!>

<방학인데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지!>

두 가지이다.



<놀지만 말고 돈 벌어야지!>

50부터 돈 벌겠다고 큰 소리 쳤는데 뭐해서 돈벌지 궁리 중이다. (돈벌겠다고 이야기한 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부담스러우니 내 남편을 포함한 세상 모든 가장들이 존경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귀포 카페에 기념품 만들어 파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다. 시간도 역량도 열정도 턱없이 부족하다. 썩 내키지 않으니 선뜻 손이가지 않는다. 더 만들어서 갖다 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은 불편하다. 계속 신경이 쓰여서 구멍난 바가지 마냥 에너지가 줄줄 새는 것이 느껴진다. 그만하겠다고 정확하게 내 의사를 전달해야겠다. 그리고 에너지가 새는 구멍을 메꿔야겠다.



<방학인데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지!>

홀가분하게 혼자 놀고 싶은 마음 꾹 누르고

아이들과 같이 놀자고 해도 집에서 TV 보고 싶다는 아이들. 애들의 반응에 화도 나고 무기력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애들 TV보라 하고 혼자 놀러 가는 것도 편치는 않고, 방학 내내 그러기는 더 싫다. 제주의 방학을 하루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사실은 애들의 방학이라기 보다 나의 남은 제주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억지로는 하기 싫은데 아이들의 자발성이 안 보이니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어찌해야 할지 속수무책. 아이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나도 신바람이 나지 않으니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며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정혜신 박사의 책 <당신이 옳다> 앞부분에 나오는

'자기 소멸'이라는 표현을 읽는데 요즘 나의 상태가 떠오른 것이다. (겨우 1장만 읽었을 뿐인데 굉장히 즉각적인 영향력이 있구먼)


(또 올라오는 검열관의 목소리,,,

야, 너 처럼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사는 애가 무슨 자기 소멸이야! 작작해라~ (12시간 게임 했으면 됐지, 또 TV를 켜? 제주에서 살면 됐지,  또 휴가가 필요해?) 무섭고도 끈질긴 내면의 검열관!!!)



나를 지우고 나의 욕구를 무시하고

상황에 맞추거나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나를 욱여넣고 있었다. 엄마로서 생활인으로서 '가치증명'과 '인정욕구' 의 링고게임을 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자빠져야 끝이 나는 링고게임.


그랬더니 마음에 기쁨의 빛이 사그라들고 저절로 솟아나던 감사한 마음이 슬그머니 줄어 들더니 작은 일에도 화가 난다. 애쓰고 있으니 군것질이 땡기고 과식해서 컨디션이 엉망이다. 그러고 있는 나에게도 화가나고 남에게도 화가난다.


자신을 공감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도 급격히 떨어진다.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남의 발등 쳐다볼 여유는 없다. 봐달라고 하는 상황이 짜증나 죽겠다.



다시 평온하고 기쁨과 감사가 차오르는 상태로

돌아가는 방법은 <자기 공감>이다.


'그랬구나,, ' 나의 느낌과 욕구를 인정해주자.

('니가 그러면 안돼지'하는 내면의 검열관은 넣어둬)


어떤 느낌이던 어떤 욕구던 '괜찮아. 충분히 그럴수 있어' 자신을 수용하자. (무조건적 수용과 지지)


나를 위한 욕구를 충족시킬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보고 자신과 타인에게 부탁하자. (자기돌봄. 나를 귀하게 대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며!!!)


나의 삻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기꺼이 나를 보살피는 것. 나에게 관심 가지고 나를 돌보는 것.

(나는 노예가 되려고 세상에 태어난게 아니잖아)

나에게는 이것이 love myself.


"그만하면 됐지, 뭘 더해"

라고 말하는 검열관의 목소리는

"황금 돼지 해에는 다 돼지~"

로 맞받아 쳐주자!!


황금 돼지처럼 풍요로운 한 해를 마음껏 누려야지.

꿀꿀~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의 생명력과 놀이 본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