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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라 Jan 17. 2019

다시 시작된 제주의 일상

제주살이 백 서른 닷새 190116

육지에서 신나게 놀다 제주로 돌아와 하룻밤 자고나니 다시 시작된 일상 안에 들어와있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둘째 방과후 수업에 데려다 준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으니 장을 본다.


식사 준비를 해서 밥을 먹는다.

수업에 다녀온 둘째가 팔을 걷어 붙이고 요리를 한다. 갑자기 왜 그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구이용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오늘 낮에 먹기로 했으니 스테이크의 가니쉬가 생각 났을까?

감자 껍질을 벗겨 삶더니

물을 빼고 으깬뒤 소금 후추 간하기.


보들보들한 매시드 포테이토를 만들어낸 녀석.

심지어 맛있다.

쇠고기 스테이크의 짝꿍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돼지 고기랑도 먹을 수 있구나. 맨입에 먹어도 맛있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식감이 기분좋게 먹었다.


오후에는 치과 가기.

진료는 아이들이 받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진땀 난다. 애들 이가 성치 않은 것이 엄마가 잘 관리하지 않은 결과인것 같아 얼굴이 화끈 거린다.

아이들 치료가 아플까봐 옆에서 전전긍긍.


애들은 치료 잘 받았는데

진료 끝나고 나니 내 등이 축축하다.

지난 여름 방학에 치과 검진을 걸렀더니

충치 치료할 것이 많네.



수요일은 도서관 나들이.

쏙 빠져들어 두어시간 만에 후딱 읽은 책.

<여행하는 집, 밴라이프>

디지털 노마드로 살며 1년간 밴라이프를 즐긴 젊은 부부의 글과 사진을 엮은 책. 나의 꿈이기도 하다.


우린 사실 90세인데, 어마어마한 비용을 내고 지금 이 나이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거야. 청춘을 다시 살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쥔거지. 90세의 내가 '아,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걸 해야지!' 생각한 것들을 거리낌없이 선택하고,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을 시도해야 해! 우리는 남들이 얻을 수 없는 큰 기회를 얻었으니까.


다이어리에 옮겨 적어 놓고 싶은 구절이다.


90세에 꿈을 이루진 말아야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 . .

놓지마 정신줄!




집에 돌아와 나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둘째는 계란찜과 계란말이를 만든다.


달걀을 풀고 물을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전자렌지에 익히는 계란찜은 둘째의 단골 메뉴.

뜨거운 계란찜을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었다.

벌써 반은 먹어버린 뒤 찍은 계란말이 사진.

척척 주도적으로 요리 하는 걸 보니 재밌나 보다.

요리는 둘째가 자신감과 의욕을 보여주는 분야이다. 나는 옆에서 박수치며 기다리다가 맛난 음식 받아 먹기.

그대신 산더미 같은 설거지는 나의 몫.


저녁밥 먹고

아이들은 방학숙제로 밀린 일기 쓰기.

나는 설거지하기.


숙제를 마친 아이들은 휴식.

나는 반납기한이 오늘까지인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 나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그림 그리기.

함덕 델문도에 갔더니

어떤 음료를 주문해도 똑같은 머그에 담아준다.

머그컵 그리기 재미 없어서 예쁠 것 같은 음료 주문.

'함덕 노을 칵테일'을 시켰는데 무알콜을 선택하니 그냥 향긋한 석류와 자몽에이드 정도의 맛이다. 알콜이 들어가면 훨씬 맛있겠다.

근데 플라스틱 잔에 주네. 좀 근사한 잔에 담아주지. 그리기는 편해서 30분 만에 싱겁게 끝난 마흔 세번째 어반스케치.

델문도는 함덕 바다가 아침 7시 부터 밤 12시까지 열일해 주는 곳인 것 같다.



집에 돌아와 한 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 잔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돌아다닌 다람쥐가 깊은 밤 굴 속에서 꼬리를 몸에 감고 쉬는 기분이 이럴까?

따뜻하고 편안하고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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