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백 일흔 나흘 190224
육지 집에 돌아갈 날이 다섯 밤 남았다.
그 중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을 찾아봤더니
오늘이다.
오늘이 바로 길일이구먼~ ^^
7시 20분 부터 한라산 등산 시작.
7시에도 성판악 주차장은 벌써 만차.
다들 부지런 하시네.
천천히 내 속도대로 가려 하지만,
나를 추월해 나가는 사람들이 백명쯤 되니
나도 속도를 좀 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데 오늘은 어쩐지 컨디션이 썩 좋질 않네.
정상 어반스케치를 염두에 두고
롱패딩과 그림도구를 챙겨서 배낭이 더 무거운 것 같기도 하다. 물을 너무 많이 가져왔나?
가방이 왜 이리 무거워.
ㅠ ㅠ
내가 제일 이뻐라 하는 구간.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10시 45분.
드디어 진달래 대피소 도착.
밥을 먹으면 몸이 무거워 올라가기 힘들지도 모르는 위험 부담을 안고!
가방 무게를 몸에 분산 시킨다.
ㅋㅋㅋ
도시락 무게와 아이젠 무게가 빠지니
배낭이 한결 가볍다. 작전 성공! ㅎㅎㅎ
진달래 대피소에서 부터 아이젠 착용.
밥 먹어서 힘이 나는지,
배낭 무게가 줄어서 그런지,
밥 먹으며 충분히 쉬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아져서 다리가 가뿐하다.
아이젠 없어 엉거주춤한 사람들을 지나
뽀드득 뽀드득 얼음을 밟으며
급경사를 신나게 (그러나 천천히) 올라간다.
히야~ 멋있다!
정상 부근은 햇살이 좋아 눈도 다 녹아있다.
오후 1시. 한라산 정상 도착.
사람들이 어마어마,,,
정상 인증샷 찍으려고 선 줄도 어마어마!
우왓! 백록담이다!!!!
이렇게 잘 보이는 백록담에 눈까지 쌓여 있다니!
따뜻하고 바람도 없는 축복 받은 날씨.
한 없이 감상하고 싶지만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서는 1시 30분에는 무조건 하산 해야한다. 계속 안내 방송이 나온다.
사진 그만 찍고 이제 그만 좀 내려 가시라고!
벌써 1시도 훌쩍 넘었다.
나도 급한 마음에 시계 볼 틈도 없이 폭풍 어반스케치. 한라산 백록담에서 어반스케치를 하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심지어 어반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너무 멋지다며 나를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되지요~ ^^
제 폰으로도 한 장 찍어주실래요?
ㅎㅎㅎ
그래서 인생샷 얻음!
15분 간의 퀵 드로잉.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백록담에서 어반스케치를 했다는 벅찬 기쁨!
야호, 신난다!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은!!!
오늘 한라산은
6개월 간의 제주 라이프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는 산행이었다.
그간 제주 생활의 축하와 감사의 의미가 담긴
나름의 의식이었다.
그런데 어반스케치를 위해 팔레트 뚜껑을 급하게 열다가 그만 물감 몇 개가 떨어졌다. 주울 수 있는 것은 주워 담았지만 데크 밑으로 떨어져 찾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맑은 하늘을 표현하는 블루 계열의 대표 주자 '세룰리언 블루'와
흙과 나무의 색! 브라운의 기본 '번트 시에나'
그것을 떨어뜨린 순간
'아, 내가 축하와 감사의 의식에 제물을 안가져 왔구나! 그런데 알아서 제물을 챙겨 가시네~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어반스케치.
"산이영 바다이영 몬딱 좋은게 마씀.
제주의 푸른 하늘과 곱들락헌 바당, 깨끗한 땅을 하영 보여 줍서양. 앞으로도 잘 부탁 허우다."
다행히도 다니엘 스미스 고체물감 팔레트에는 블루와 브라운 계열의 색이 넉넉히 들어있어서 남아있는 색으로 어반스케치하기에 충분했다.
4시 30분 하산 완료.
오늘은 한라산 등정 인증서도 받아왔다.
6개월 동안
사라오름 한 번, 윗세오름 두 번, 백록담 두 번.
총 다선 번의 한라산 산행을 했다.
오~ 많이 했네!
축하측하~ ^^
아까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부터 마시고 싶었던
탄산 가득 씨원한 콜라 한잔으로 축배.
하기엔 좀 아쉬워서!
저녁에 치킨, 닭똥집 볶음 파티.
감사, 축하, 보람, 재미가 넘치는 밤.
물론 배도 몹시 부른 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