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나는 단순히, 그것을 따라가면 되었다.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
아침에 깨어났을 때,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로 어떤 꿈을 꾸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흐릿한 꿈의 영상이 선명해지는 대신 영 달갑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나의 내면은 이 불청객들을 잘근잘근 씹다가 이내 그것들에게 고함을 쳤다.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그것들을 잔혹하게 해체했고, 어리석고도 불결한 그들에게 논리적으로 반박했으며, 공정하게 처단하겠노라 선포했다. 어쩌면 전에는 억누르려고만 했던 것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여움은 갈수록 증폭했다. 그리고 침실 안에 내가 아침부터 잔뜩 풀어놓은 내면의 보따리들을 보았다. 예전에 누가 어떤 영향을 나에게 주었든지 간에 이것이 현재 나의 내면의 상태였고,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그 가운데 불현듯, 그러나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
청아한 목소리였다. 너무도 맑아서 그 소리를 들은 즉시 내면의 모든 소란은 하던 일을 멈추었다. 모든 감각과 정신이 그 하나의 음성에 주목했다. 좀 전에 고함치던 소음과는 대조적이었다. 상처도, 불안도, 분노도 얽힐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상냥한 소리. 말의 내용보다도 더 큰 층위에서 그것을 너그럽게 감싸는 부드러움. 목소리의 핵심은 그것이 전달된다는 데 있다. 나는 그 티 없는 음색을 들었다. 진정 '들었다'는 것은 온전하게 이해하여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너의 삶에 집중해.'
청아한 목소리는 단지 몇 마디 말들로, 더 나아가 단지 말 이상의 깨끗하고 안정된 흐름으로 나를 이해시키고 안심시켰다. 뒤엉킨 기억과 그것으로 인한 소란은 진정한 내가 아니며 이 목소리가 나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도록 했다. 꿈보다는 선명하고, 현실보다는 내밀한 어조. 자연의 소리인 듯 그동안 들어왔던 노래들의 가장 승화된 선율 같기도, 내 안의 신성이자 나의 가장 고차원적이고 평화로운 인격, 위대한 어머니 혹은 복잡하게 뒤엉킨 길목의 지혜로운 안내자 같기도 한 그것. 인생이 어떻고 저떻고 떠들어 대는 대신 목소리는 삶의 중심에서 저만의 기운과 향기를 그윽하게 풍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단순히, 차분하게 피어오르는 봄 같은 그것을 따라가면 되었다.
누워 있는 채로 시선은 창의 커튼을 향했다. 하늘의 푸른 공기와 햇빛의 은은하게 붉은 색감이 흰 커튼에 투영되어 어우러져 있었다. 이후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이불을 개고, 아침을 준비했다. 도마 위에 감자를 얇게 썰어 놓고 보니 마치 향긋한 배와도 같았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레몬을 넣은 물을 마시고, 오늘 써야 할 것들을 생각했다. 이제 무엇을 보고, 고이 느끼고, 흘려보낼까. 어떤 일들이 날 찾아올까. 어떤 형상과 색감, 저마다의 이유들로.
——
그럼, 가벼워졌으니 다음으로.
오늘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