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내린 것과 일으킨 것
잠의 위로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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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어나기에 몸이 조금 무거웠다. 가뿐하면서도 의지로 충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기분이 반갑지 않았다. 익숙한 무언가가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겼다. 나는 저항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그 끌어당김을 주시했다. 무엇이 나를 끌어내리고 있는가. 내가 잃어버린 것들, 불신의 목소리들. 오만한 의식이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생각한 것들. 내면 세계를 부정하는 오만한 현실도. 하지만 분명 '형체'가 없는 것이었다.
여전히, 저항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다. 나는 웅크린 채로 마음을 가만히 안았다. 그 찰나, 포근한 기운이 웅크린 몸 위를 얇은 비단처럼 살포시 감싸 안았다. 천사, 새, 신, 내가 사랑한 작가들, 예술과 종교의 혼, 진정으로 호소하는 목소리들. 내가 때때로,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거대하지만 경쾌한 힘의 흐름. '그것'의 온기는 마음으로 오롯이 전해졌다. 그래, 상처 받고 의심 많은 우리의 세상엔 내면 세계를 지키는 사람도 필요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은 내면에 있다. 끌어내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순간을 두고 사실인지 아닌지를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하거나 부정하려 하겠지만, 나를 움직여 왔고 실제 세상을 움직이고 내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런 객관성과 논리를 뛰어넘는다. 우리의 세계는 기발한 아이디어, 널뛰는 다양한 빛깔의 감정, 예리한 추상, 현실에 균열을 내는 상상, 엉뚱한 농담과 실수, 창의적인 해석,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꿈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내가 '그것'을 느꼈고, '실체'로서 받아들이고 싶었다는 것. 그의 힘을 삶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써야지. 언제나처럼. '시간'에 대한 고찰 이후에는, '새'의 자유로운 비상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닫힌 문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세상에게 마음을 활짝, 아주 활짝 열었다.
쓰기 위해서는 몸을 일으켜야 한다. 무엇이 나를 일으키는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음악은 나를 일어나게 한다. 이 순간의 유일한 무기. 찰나의 음악은 나에게 글보다도 강하다.
나를 일으키는 것들, 살게 하는 것들로 삶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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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기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