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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Mar 30. 2023

엎어진 책, 봄

잠의 위로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



늦은 아침, 낮잠을 잤다.


오르떼가 이 가세트의 『예술의 비인간화』를 재밌게 읽다가 어느 순간,

엎어진 책처럼 나도 엎어졌다.


왜 엎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피곤했다.


어제는 이유가 좀 더 분명했다.

봄이 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게 싫은 이유는 사계절 중 봄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부드럽게 따스해서 싫었고, 나무에 꽃이 핀 게 예뻐 보여서 싫었다.

괜히 설레는 마음이 싫었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싫었고, 아무리 부정해도 지울 수 없다는 게 싫었다.

지우면 지금보다 스스로가 더 망가질 게 뻔해서 싫었다.

아무리 모른 척하고 발버둥쳐도, 역시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사람이 싫었다. 나 포함.

싫다고 말하는 게 싫었다. 거짓말 같아서.

4월이 오는 게 싫다. 4월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추워서 이불을 덮었는데, 여전히 쌀쌀했다.

잠은 밀물이 되어 씩씩하던 나를 꼼짝 못 하도록 수면 아래에 가둔다.

썰물이 되어 세계에 대한 나의 명랑한 사랑을 매정하게 쓸어 간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쓱 내다 보니 어떤 왜소한 아저씨가 현관문을 열고선 퉁명스럽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저씨도 내가 원망스러운가요?

나,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요? 이렇게 노력하는데.



——



다행스러운 한 가지는,

무너지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일어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난다.


요즘엔 검도가 나를 살리는 것 같다.

몸의 구석구석을 깨운다.

관장님이 그랬다. 뒤엉킨 호면 줄, 차근차근 풀어 나가면 된다고.

맞아도 위축되지 말라고. 똑바로 보고 앞으로 쭉 나아가라고.

연습할게요.





그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기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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