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위로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
늦은 아침, 낮잠을 잤다.
오르떼가 이 가세트의 『예술의 비인간화』를 재밌게 읽다가 어느 순간,
엎어진 책처럼 나도 엎어졌다.
왜 엎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피곤했다.
어제는 이유가 좀 더 분명했다.
봄이 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게 싫은 이유는 사계절 중 봄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부드럽게 따스해서 싫었고, 나무에 꽃이 핀 게 예뻐 보여서 싫었다.
괜히 설레는 마음이 싫었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싫었고, 아무리 부정해도 지울 수 없다는 게 싫었다.
지우면 지금보다 스스로가 더 망가질 게 뻔해서 싫었다.
아무리 모른 척하고 발버둥쳐도, 역시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사람이 싫었다. 나 포함.
싫다고 말하는 게 싫었다. 거짓말 같아서.
4월이 오는 게 싫다. 4월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추워서 이불을 덮었는데, 여전히 쌀쌀했다.
잠은 밀물이 되어 씩씩하던 나를 꼼짝 못 하도록 수면 아래에 가둔다.
썰물이 되어 세계에 대한 나의 명랑한 사랑을 매정하게 쓸어 간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쓱 내다 보니 어떤 왜소한 아저씨가 현관문을 열고선 퉁명스럽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저씨도 내가 원망스러운가요?
나,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요? 이렇게 노력하는데.
——
다행스러운 한 가지는,
무너지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일어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난다.
요즘엔 검도가 나를 살리는 것 같다.
몸의 구석구석을 깨운다.
관장님이 그랬다. 뒤엉킨 호면 줄, 차근차근 풀어 나가면 된다고.
맞아도 위축되지 말라고. 똑바로 보고 앞으로 쭉 나아가라고.
연습할게요.
그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기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