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태초에 이 '불안'이 있었다.
태초에 '이불' 안이 있었다.
※ 몽롱 주의 ※
※ 비구름 주의 ※
잦은 아침, 나의 이불 속에는 불안이 있다. 어쩌면 세계의 근원일지도 모를 이 불안은 지나치게 내밀한 공간인 이불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문제들로 새로이 잉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불안(이불 안)을 거두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를 짓누르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감 없이 담기로 했다.
——
잠은 나에게 위로다. 유일한.
이 의미를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깨달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잠으로부터 깨어나는 건 언제나 거대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나는 결코 한 번에 일어날 수 없다. 침대 위에서 두 눈을 뜨는 순간,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절절히 소망한다.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왜? 왜지. 수면이야말로 나를 온전히 품을 수 있게 되는 상태니까. 의식이 몽롱하고 사리 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야말로, 바다 같이 넓은 아량으로 나의 모든 것을 품어 주니까. 타인보다도, 세상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넓은 아량으로. 나는 깨어 있는 중에 그런 호의를 느껴 보지 못했던 것일까.
그런데 막상 자리에서 일어나 잠이 깨고 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마냥, 이 세계가 다른 세계인 것마냥 의욕으로 넘쳐난다. 나는 부지런한 일꾼이 되며 세상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 둔, 지치지 않는 열렬한 사랑꾼이 된다. 잠의 세계와 또렷한 의식의 세계 사이에 분명 무언가가 있어. 이불 안에 뭔가가 있다니까. 아직 완전히 이해받지 못한 외로운 세계가 있다. 나는 한편으로는 이 미지와 추상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계속 돌아간다. 어떤 날에는 '이불안의심연'을 그만 써야 할까 하는 상태에 도달하면서도, 그렇게 은근슬쩍 스며드는 기쁨과 묘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그런 생각과 감정들이 무색하게 어느 순간 다시 돌아간다.
그런 회귀의 순간이 오면, 마음 같아서는 한계를 모르는 아이처럼 그 품을 무한히 파고들고 싶다. 어쩌면, 깨어나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 아닌데. 의식의 세계에 있는 나는 아닌데. 온전히 깨어나기 전의 나는 왜 그 비밀스럽고 불명확한 세계에 머물고 싶을까. 잠의 위로를 원하는 만큼 받으려면 스스로의 건강을 해쳐야 한다는 점이 서글프다. 다른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닌데. 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에게 이리도 불친절한가. 친절을 바라는 것이 요행을 기대하는 것일까. 나라도 나에게 친절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단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생활 양식의 한 부분 때문에 스스로를 다그치는 일은 없다. 잠이 유일한 위로가 되는 사람. 안쓰러워. 나긋하게 대해야지.
——
글이 너무 쓰고 싶지만, 쓰고 싶은 글이 너무도 많지만, 건강을 위해 슬슬 운동을 하러 가야 한다. 왜 글쓰기는 운동이 아닌가. 글쓰기가 운동이라면 몸도 건강해지고 글도 원 없이 쓰고 참 좋을 텐데. 기본에 감사하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더 많은 것들을 욕망한다.
이제 날씨에 비해 이불이 얇은 것 같다. 두꺼운 것으로 바꿔야겠다.
그럼,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기까지.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