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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Jun 25. 2022

온통 초록빛

나도 그런데.



2022. 6. 24.





요즘 이랬다저랬다 하는 날씨가 나를 닮았다. 맑았다가 순식간에 먹구름이 꼈다가 보슬비가 내렸다가. 절실히 사랑했다가 환멸에 휩싸였다가.


저녁에는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인 세상을 걸었다. 나도 그런데. 나도 온통 녹색이야. 잔뜩 낀 구름 덕에 차분하지만 충분히 푸르른 녹색. 내면의 풍경이 외부의 풍경과 일치했다. 그 사실이 어찌나 고맙고 반갑던지. 나무들은 말한다. 움직이지 않아도, 숨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을 줄 수 있는지.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묵묵하고 꿋꿋하게 한 곳에 우뚝 서서 비바람을 견디며 잎을 피우고, 땅속 깊이 뿌리내리고,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환영과 이별의 인사를 동시에 하는 것이 얼마나 강인한 일인지. 이따금씩 선선하게 부는 바람은 슬픔과 그리움 같다.




낮에는 게으른으른, 그리고 게으른으른이 소개해 준 분들도 함께 브런치를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두 세계 사이에서 언어와 열렬히 씨름하는 용감한 사람들. 나는 멋진 사람들이 좋아. 그들의 말과 삶에 "멋지다."고 기꺼이 고백하게 되는 상황이 좋다. 멋나는 이들과 같이 이야기하며 내 안의 정원은 갈수록 더, 빠른 속도로 더 싱그러워졌다. 잘 둔 친구 덕분에 염원했던 계획이 그렇게 순조롭고도 풍요롭게 실행되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서서히 외부에서 찾아 나가고 만나고 대화하고 나눌 것이다.


멋쟁이들과 헤어지고  분이 지나 게으른으른은 아쉽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주었다. 사실은   얘기가 많았다며.  전에 냇물에 떠내려 가듯 인사하며 떠나간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났다. 진짜 다시 만나겠다고? 그렇단다. 나는  친구의 이런 엉뚱함과 순수함을 사랑한다.  진지하고 깊어지는 대화. 같이 있으면 마음 놓고 그저 자신이   있다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제약 없이 얼마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있다는,  그런 므흣한 얘기. 그리고 그런 사실을 굳이 말로 설명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가 서로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단다. 나도야. 나도 그런데. 너는야 미국에서 돌아온 중학생인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 그때의 나에겐 모국마저 낯설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이상 말하지 않고 텔레파시로 소통해야  것만 같은 기분. 오늘은 '나도 그런데.' 자주 내뱉게 되는 날이다.




이상하게도 저녁에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인 세상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으며 나와 조금씩 이별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수많은 나 중에 어떤 나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앞으로도 쭉 내면 속에 푹 침잠하여 글을 쓸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으로, 그대로의 강도로 혼자일 수는 없겠구나. 깨달은 것이다. 내가 지금껏 굳건히 지켜 왔던 가장 중요한 욕망, 이야기 쓰기에 대한 열망이 더욱 확장되었다는 것을. 더욱 많은 사람들을, 생명력 넘치는 다채로운 관계를 단지 이상 속에서만이 아닌 실체로서 아우를 정도로.


순전한 의지로 철저히 혼자여야만 했던 시절이 떠나간다. 희한하게도 의지와는 별개로 그렇게 되어 간다. 나무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여름이 흔쾌히 찾아온 것처럼.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도 하고 상상도 했었는데. 푸르른 여름이다. 온통 녹색인. 홀가분해.



혼자여야만 했던 시절이 떠나간다.

참 쉽지 않았는데. 왜 조금은 아쉬울까.




7월 1일, 나는 독립한다. 분가하여 그토록 원했던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다. 그 공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채워질 것이다. 드물게는 물건으로, 많게는 생각으로. 때때로 사람으로, 그렇게 마음으로.


더욱 푸르른 7월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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