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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앨리스 04화

이상한 나라의 시간 II

흰 토끼의 회중시계

by 유하



시간. 세계의 조건이나 상황이 어떠하든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것의 꾸준함은 야속하기도 경이롭기도 하다. 현재의 나는 그것을 보다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 약이 바짝 올라 있는 상태다. 돈보다도, 예쁜 옷보다도, 매력적인 애인보다도 나는 시간이 갖고 싶다. 순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그 어떤 행위보다도 시간을 '보다 온전히 소유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녕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시간을 갖는다는 것.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① 모자 장수가 뿌린 버터, 잼, 레몬으로 쑥대밭이 된 회중시계.




모자 장수와 삼월 토끼의 티 파티에서의 대화가 떠오른다. 앨리스는 말이 통하지 않는 모자 장수와 삼월 토끼에게 화가 잔뜩 난 채로, "전 시간이 없어요! (I just haven't the time!)"라고 외친다. 그러자 삼월 토끼는 애타게 "시간? 시간 있는 사람 누구야? (The time? Who's got the time?)"라며 부르짖는다. 그의 울부짖음이 끝나자마자 "시간이 없어. (No time.)"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 흰 토끼가 티 파티에 등장한다. 모자 장수는 자꾸만 약속에 늦었다는 흰 토끼의 회중시계를 과감하게 빼앗더니 시계가 이틀이나 늦게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마치 외과의사인마냥 모자 장수는 포크로 시계 안을 후비더니 위에 버터, 잼, 레몬까지 뿌린다. 결국 시계는 처참하게 고장난다.



아주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현실의 시간을 파손하는 장면이다. 마치 현실 속 의무와 체계를 모독하는 것으로까지 인식된다. 모자 장수가 들이부은 형형색색의 끈적한 액체에 시계가 힘겨워 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잔인한 이상주의자의 현실 속 시간이 종종 맞이하게 되는 비운 같다. 그렇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흥미진진하면서도 끔찍한 저 회중시계는 나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단지 글을 쓸 때뿐 아니라 샤워, 청소나 설거지와 같은 집안일, 옷을 고르고 화장하는 일, 걷는 일 등에 사색, 상상, 음악, 글과 삶에 대한 구상이 쉴 새 없이 동반되거나 침투한다. 생활 전반의 초점이 내면의 세계에 맞춰져 있다 보니 주변에 실재하는 사물들이나 외부적인 사실 그대로의 정보를 인지하는 일, 돈이나 시간을 포함해 숫자를 정확히 계산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다거나 약속에 늦기도 하고, 연락을 자주 못하거나 답장을 빠릿하게 하지 않아 친구들을 서운하게도 한다.



외면보다는 정신에 집중하며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이 현실에서 드러나는 문제나 결함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성향이 때로는 현실에 허술한 구멍을 만든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그런 허술한 구멍이 생긴다고 해서 이상주의자로서의 본성을 철저히 개조해 보겠다는 것도 답은 아니다. 적절한 균형을 찾기를 바라고 노력할 뿐, 이상주의의 가치를 발굴하고 빛내기 위한 삶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비록 때때로 현실과 뒤뚱거리는 이상일지라도.



그런 의지와 노력의 중심에는 글이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현재의 나를 이루는 정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글쓰기는 나의 과거를 찬찬히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게 해 주고, 안개에 휩싸였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선명하게 열어 준다. 그것은 피상적이고 미성숙한 관계들에서 풀지 못했던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 성장의 열쇠다. 무엇보다 쓰기는 머릿속의 이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하는 탁월한 도구다. 그런 점에서 쓰기를 통해 시간을 온전히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놓쳐 버린 것들도 많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좋은 사람들과 웃고, 맛있는 걸 먹고, 떠들 수 있는 시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를 내어 주는 시간.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결국 시간은 손 위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그런 것일까.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 1931.




차분한 모래로 덮인 삭막한 해안가를 상상한다. 회중시계가 바쁜 1인 가구의 옷가지처럼 널브러진.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1931)이다. 그 안의 숫자와 바늘이 선명하게 보이는 세 개의 회중시계는, 자주 비유되는 '까망베르 치즈'처럼 흐물거린다. 그 모습은 마치 납작한 생물이 꾸물대며 기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오렌지색 회중시계에는 개미들이 잔뜩 붙어 있다. 이 개미들과 옆의 시계에 붙어 있는 파리, 또 그 옆의 시계가 반쯤 걸쳐져 있는 눈 감은 사람의 피부 조각 같은 얼굴, 황량한 풍경은 다 함께 죽음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바닷바람인가. 어디서 들려 오는 소리. 유한한 삶의 시간을 어찌해 보려는 이들에게, "그래 봤자 어쩔 수 없어. 시간은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잠시 후, 이어지는 소리. "그러니까 시간은 그대로 두고 마음껏 꿈꾸자." 기이한 얼굴의 길게 뻗은 속눈썹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양털 러그 위에서 귤을 까먹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던 어린 시절. 나는 왜 계속해서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까. 이 시간이 그 시간과 마주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마지막 장면은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가 언니와 함께 차를 마시러 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시작부의 하늘도 그렇고 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언니의 옷 색깔과 유사한 보라색의 하늘이 배경에 펼쳐져 있다. 마치 앨리스가 언니의 시간, 어른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앨리스의 미래는 문자들로 빽빽한 역사책을 딱딱하게 소리 내어 읽고 누군가의 '이상한 나라'를 비웃는 언니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지. 자세히 보니, 보라색 하늘에는 앨리스가 입은 드레스의 하늘색이 듬성듬성 섞여 있다. 어쩌면 앨리스는 언니와는 조금 다른 길을 갈지도 모른다는 희망 같은 것이 고리타분한 현실 속에 어우러져 있다.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②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가 언니와 함께 차를 마시러 가는 마지막 장면.




내 안의 앨리스를 지켜 주고 싶다.





앨리스!

이 애틋한 이야기를

부드러운 너의 손으로

어린 시절의 꿈으로 가득 찬

신비한 추억의 장소에 가져다 두렴.

머나먼 땅에서 꺾어 온

순례자들의 시든 꽃다발처럼.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더스토리, 202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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