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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앨리스 06화

불통의 불똥 파티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과 춤을!

by 유하




왜 동물일까? 이상한 나라의 인물들이 사람보다는 동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① 바닷가에서 도도를 중심으로 열심히 도는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




우선, 디즈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이상한' 인물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흰 토끼, 문손잡이, 도도, 매, 큰부리새, 초록 앵무새, 빨간 부엉이, 펠리컨, 가재, 물고기, 불가사리, 트위들 덤과 트위들 디, 바다코끼리와 목수, 호기심 많은 굴, 도마뱀 빌, 빵-나비, 꽃, 흔들리는 말파리, 애벌레/나비, 어미새, 체셔 캣, 모자 장수, 삼월 토끼, 겨울잠쥐, 안경-새, 거울-새, 나팔-오리, 우산 대머리 독수리, 삽-새, 새장-새, 아코디언 부엉이, 망치-새, 연필-새, 몸 랫츠(Mome Raths), 빗자루-개, 카드 병정, 하트 여왕, 하트 왕, 플라밍고, 고슴도치.



집단으로 등장하는 경우(트위들 디와 트위들 덤 포함)를 각 종류에 따라 묶어 한 명으로 친다면 총 41명이며, 그중 아홉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물에 속한다. 디즈니의 작품에는 원작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인물들 뿐 아니라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트위들 덤과 트위들 디, 또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나오는 바다코끼리와 목수, 호기심 많은 굴, 빵-나비 등이 섞여서 출현한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을 보면, 사람과 동물 사이의 구분이 어려운 인물들도 있고 아예 아기가 점차 돼지로 변하기도 한다. 존 테니얼(John Tenniel, 1820~1914) 그린 공작 부인이나 하트 여왕 등 원작의 그림 속 인물들도 신체 비율이 정상의 범주로부터 훨씬 벗어나 있어 독특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특히 하트 여왕은 캐럴의 작품에서 "사나운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역으로 앨리스가 동물들에게 '동물'처럼 여겨지는 장면들도 꽤 있다. 한 예로, 버섯을 먹고 몸이 커진 앨리스가 어미새로부터 위협적인 "뱀"으로 의심받는 장면이 디즈니의 작품에서도 나온다.




루이스 캐럴 지음 / 존 테니얼 그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① 공작 부인과 대화 중인 앨리스. ② 앨리스와 그에게 화가 난 "사나운 짐승" 같은 여왕.




그래서, 왜 동물일까? 첫 번째 이유는 꽤나 간단하다. '이상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인물들이니 이상해야 한다. 즉, 비정상적이고, 색다르며,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어야 한다. 한 명 한 명을 아예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만드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방식은 창작에 대한 막중한 부담과 함께 이 모든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실제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동물들을 선별하여 독특하게 조합하는 방식이야말로 작품의 개성을 균형 있게 강약조절하고 이 세계관의 '이상함'을 적절하게 설득시킬 수 있는 유능한 방법이지 않았을까.



두 번째 이유에 대한 힌트는 그들의 소통 방식에 있다. 이상한 나라의 소통 방식은 한마디로 '불통'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묻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정확한 메시지와 전달력이 부재한 알쏭한 대화들은 앨리스의 흥미를 끌어당기면서도 그를 화나고 갑갑하게 한다. 이 불통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으로 다과회에서의 폭죽이 터지는 광경을 꼽고 싶다. '안-생일(생일이 아닌 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상을 축하하며 터지는 폭죽. 비처럼 내리는 폭죽의 잔해들 속에서 겨울잠쥐는 몽롱한 정신이 쏟아 내는 헛소리들로 이벤트를 마무리한다. 불통의 불똥 파티. 어째 요즘 나의 일상 같다.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② 티 파티에서 안-생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 ③ 폭죽과 함께 떨어지는 겨울잠쥐.








그렇다. 불통인 소통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 요즘이다. 잔뜩 우려낸 차의 맛처럼 쓰디 쓰다. 점점 견고해지는 나의 세계를 어떻게 소개하고 표출할 수 있을까. 견고해진다는 게 과연 좋은 의미인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까. 어떻게 나눌까.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상대와 상대의 세계를 소외시키지 않는 방식으로라면 좋겠는데. 바람과는 달리 언어의 차이만을 가을 공기처럼 쌀쌀하게 실감하는 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의 본성 자체는 사람과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소통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겼지만, 소통의 실패와 단절로 인한 좌절을 경험하며 점차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것 같다. 대신 못다 한 애정을 거대한 이상과 투철한 신념,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삶에 대한 철학, 인류애에 쏟았다. 반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감정들은 상대적으로 자잘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사람들이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해 화가 날 수는 있어도, 상대방에게 '작은 일'로 서운해하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애써 치부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용한다면, 자신만의 영역을 탄탄하게 쌓아올렸다면 그렇게 느낄 수 없을 거라며.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름의 합리화이기도 했다. 솔직하게는, 긴밀한 관계에서 오는 세부적인 감정에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관계는 후순위로 밀려난 문제가 되었고, 마음 속의 이상을 즐기거나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등 '더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고자 했다. 적절한 거리는 관계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다. 어떤 무리나 집단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 안에 정착하는 것은 언제나 내 욕망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기를 선호했다. 대신 언제나 개인적이고 내밀한 욕망들에 무섭도록 집중했다.



지금은 글쓰는 삶을 통해 나 자신의 본질을 찾았다고 느끼고 그것을 밖으로 적절하게 표출하는 데 몰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진실된 나로서 타인에게로, 사회로, 관계로, 그 문제의 중심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혼자 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느끼고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하는 의무 때문에도 그렇다. 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시기,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과 기준들이 명확해지는 때에 오래된 친구들과 절연을 하거나 취업, 결혼 등의 행사로 과거의 인연과 관계가 많이 정리된다는 말들을 들었다. 어쩌면 그런 시기가 나에게도 온 것 같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괜스레 미뤄 두었던 과거에도, 그리고 어쩌면 그 대가를 치루며 진중한 고민을 하게 된 지금도, '인간'이라는 존재, '타인'이라는 존재의 어떤 거대한 부분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나는 글을 쓰며 그 수수께끼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해독하는 것도 원치 않는 양가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런 태도가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을 탄생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근하지만 괴이한, 이리저리 불통의 불똥이 튀는.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불사신들의 불행 Les malheurs des immortels』(1922) 콜라주 삽화로 그려 넣은 나방과 새 얼굴의 두 남녀처럼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한다. 그 가면은 각자가 살아 온 세계를 대변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세계로부터 상대에게 특별히 드러내고 싶은 부분을 선별한 것이다. 혹은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의중을, 본모습을 파악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모은 정보들을 모아 붙여 상대를 콜라주한다. 다시 말해, 나의 앞에 놓인 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이 아닌, 내가 만들어 낸 콜라주일 수 있다. 그 콜라주는 그 사람의 진실에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을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막스 에른스트, 『불사신들의 불행』(1922) & <앨리스의 친구들을 위해> (1957)




이리 보니 온갖 동물들이 어슬렁거리는 '이상한 나라'는 굉장히 사실적인 세계다. 그도 그럴 것이, 엄밀히 말하자면 이상한 나라는 현실의 재구성물일 뿐이다. 꿈이 현실의 재구성인 것처럼. 현실을 아예 파괴하거나 그로부터 완전히 탈피한 세계가 아니다. 앨리스의 손가락 하나로 흔들리고 변형된 연못 위의 반영물 같은 것이다. 에른스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을 여러 점 그렸는데, 그중 하나가 <앨리스의 친구들을 위해 Pour les amis d'Alice>(1957)다.



각종 새들과 토끼 등의 짐승들이 뒤섞인 혼란한 풍경. 디즈니의 작품에서 앨리스가 깨어나기 직전, 이상한 나라의 인물들이 온갖 색깔들로 전환되어 마구 뒤엉킨 화면과 닮았다. 대신 그림 전반을 뒤덮은 새파란 색감이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진다. 훨씬 가장 눈에 띄는 우측의 새하얀 것은 올빼미인 것 같은데, 백사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단에는 여왕인지 왕인지 왕관을 쓴 인물과 거북이인지 도마뱀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짐승이 보인다. 중간중간 노랗고 붉게 번뜩이는 눈동자들이 생선 구이에서 다 타고 남은 눈알들처럼 번뜩인다. 그들을 앨리스의 '친구들'이라 부를 때 더해지는 이질감, 그 섬뜩함.




디즈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④ 앨리스가 연못을 손가락으로 건들자 물 위의 상이 변한다. ⑤ 이상한 나라의 인물들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변하며 잠든 앨리스의 모습과 겹친다.




나는 이상한 나라가 그러한 현실 속 불통의 이질감과 기이함으로부터 탄생했다고 믿는다. 우리는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순 없어도 그러한 불통을 직면하고 즐길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다 함께 모여 노래나 부르며 바닷가를 돌고, 티 파티를 즐기며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과 함께 춤을 추는 세계! 그 세계는 현실로부터 탈피한 절대적인 환상의 세계가 아닌, 초현실주의자들이 믿는 세계, 다시 말해 초현실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현실을 변형시킨 '제2의 현실'이다. 한편, 이상주의자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제2의 현실'의 재미난 불통을 유의미한 소통으로 격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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