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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Apr 10. 2023

생일 D-1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오늘 나의 한계를 처절히 느껴 버렸지 뭐야. 내가 가장 당당하고 무결하다고 여기던 순간에도 사실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지 뭐야. 


내 그림자로부터. 그 애가 나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어. 그런 날이 예고도 없이 와 버렸어. 사월에.


내일은 내 생일이거든. 태어난 날에 죽는 거, 정말 드라마틱하겠다 상상해 봤어. 걱정 마. 나 안 죽어. 하지만 사월 중에 오늘이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기를, 사월이 끝나기 전까지 오늘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이 없기를 바라긴 했어. 제일 좋아하는 달이니까.


생일 축하한다며 당장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거든. 바빴다면서. 


나는 그런 게 싫어. 자기 죄의식 덜려고 선심 쓰는 것처럼 구는 거. 사실은 온통 자신에 대한 생각밖에 없으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뒤늦게 아 맞다. 신경 써 줘야지. 공식적으로 우린 이런 사이니까. 그러면서 제멋대로 구는 거 말이야. 기다려 주지는 않고, 원하던 반응이 오지 않으면 전전긍긍하며, 실망하며, 그렇게 날 위한 척 날 괴롭히는 거. 가만히 평화로이 잘 지내던 날 괜히 자극시키는 거.


혹시 내가 지금 굉장히 주관적으로 구는 것 같아? 맞아. 결심했거든. 아주 주관적인 사람이 되기로. 주관적인 기준에 부합하면서 살 거야. 걱정 마. 민폐는 안 끼쳐. 절대 그럴 수 없는 성격이야. 대체로 꽤나 얌전한 걸 선호하거든. 적어도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일 관해서는. 그래서, 아무튼 주관적으로 살기로 했어. 자기객관화, 오랫동안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걸 완전히 알게 됐어. 자기객관화만큼 무심하고 폭력적인 관점이 있을까. 결국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 다들 자기객관화를 하라는 거잖아.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정말 얻는 게 뭐야? 그런 관점에 '나'라는 게 어디에 있어? '자기객관화'라는 게 대체 뭐야? 그 대단한 객관성이라는 게 대체 누구의 기준이야? 대중? 대중의 실체가 뭔데?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견의 평균치가 자기객관화야? 대체 평균값은 어떻게 내는 건데? 다수의 의견이면 다 맞는 거야? 자기객관화, 성공, 화려하고 양적으로 풍만한 사랑. 다 허황된 것들이라는 걸 알아 버렸지 뭐야.


그래. 주관적으로 살 거야. 나만의 맥락과 속도와 이유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가면서, 그렇게 살 거야. 정말 오랫동안 그 잘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놓지 못해서, 너무 많은 걸 만족시키면서 살려고 하다 보니 자꾸 내가 밀려났던 거야. 자기 연민, 좀 하면 안 돼? 가여워. 현실 속 나, 숨겨 두었던 나, 진짜 나다운 나. 무엇보다 많이 외로웠을 나의 어둡고 차가운 그림자. 사람은 모든 걸 다 만족시키면서 살 수 없어. 정해진 에너지와 신체적 한계가 있어. 정해진 각자의 시간이 있어. 얼만큼인지는 모르니 더 미치지. 결국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 내 선택은 나야. 가짜가 아니라 진짜야. 다른 사람들의 말들에 의해 꾸며진 현실이 아닌 내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실이고, 현실 같은 꿈이야. 내 선택은 나야. 나의 생존과 행복, 건강한 힘. 힘이 생긴다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어. 사랑. 진짜 사랑. 그냥 온전한 시선으로 봐 주는 거.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평가도 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거 있잖아. 나 따뜻한 차 한 잔 마셔도 돼?


맞아, 나 예민해. 사랑에 관해서는 더더욱. 하지만 다들 그렇잖아? 어제부터 오늘까지 내가 받았던 고통은 그런 거야. 뭐가 옳고 맞는지 다 아는데도 나한테 그걸 있는 그대로 행동으로 옮길 힘이 없다는 게 너무 슬펐어. 난 사실 혼자 있을 때 가장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한데, 그걸 자꾸 자신의 이유와 감정에 취해 멋대로 깨려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어. 만났을 때 대뜸 귀에 꽂히는 그들의 둔감한 단어들이 싫어. 멋대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추측하는 단어들. 입맛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 줘야, 그래 이제 넌 좋은 사람이구나, 입맛에 맞지 않았던 예전의 넌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모습이었구나, 그렇게 더 가까워지려는 것도 싫어. 좋은 사람인 게 아니라, 기호에 맞게 욕구를 충족해 주는 사람이겠지. 봐. 저들도 상당히 주관적으로 살고 있잖아. 그래, 난 그저 상대가 가장 필요해 보이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뿐이야. 내 결여를 생생하게 느끼며 살다 보니, 그들의 결여도 너무 잘 느껴져서. 그래서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준 거고. 그저 그대로 바라봐 주는 거, 그런 온전한 시선. 그런데 왜 난 내가 원하는 최고의 것을 받을 수 없어? 나는 예민한 사람이야. 예민하게 느끼고. 예민하게 사랑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야. 그런데 나만큼 예민하게 봐 주는 시선이 없어서 슬펐어. 정말 더 이상, 도저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슬프게도. 


아직도 내가 객관적이지 못한 것 같아서 불편해? 자신의 일이 아니니 좀 우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성보다도 결국 감정인 걸? 인간은. 오늘 나의 한계, 바람 한 점도 감싸 주지 않는 낭떠러지 끝에 서서 내가 느낀 건 그런 거야. 아무리 잘난 이성이라고 해도, 끝에선 별 수 없어. 결국 감정을 내던지고 받아야 하는 게 인간의 본질이야.


그래. 주관적으로 살 거야. 때때로 이렇게 감정도 막 내던지면서. 내 감정은 정말 소중하기에, 꼭 허술한 말로 할 필요는 없잖아. 더 정확하게 글로 쓸래. 격렬한 고통의 중심에서 나는 결국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 왜 계속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어. 그거, 희망일까? 그 와중에도 글에 대해 생각한다는 게 참 고집스럽네. 나는 한계를 가진 사람이고, 쓸 수밖에 없어서 쓰지만, 글은 때로 한계를 뛰어넘기도 해. 한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서 다른 한 사람에게로 훌쩍.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세대, 시대, 나라, 세계. 꼭 영원하고 무한한 걸 약속하는 것 같잖아. 아까 마셨던 술보다, 이 차가 더 맛있다.


고통은 그런 건가 봐. 항상 어떤 메시지를 줘. 보지 못했던 걸 보게 하고,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들어. 말했잖아. 나, 안 죽어. 적어도 스스로를 죽게 놔 두진 않아.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의 편에 확실히 서기로 했거든. 그렇지만 기다리고는 있어. 죽음. 덤덤하게. 나 이제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죽음이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올 때, 가만히 서 있다가 악수를 건넬 거야. 긴장되긴 해도 반가울 거야. 그가 날 치열하게 살게 해 주었으니까.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게 살고 있다면, 꽤 괜찮게 살고 있는 거 맞지? 그런 거지?


가끔 그런 날이 있어. 다 알아도 슬픈 날. 알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은 날. 그래서 말도 행동도 엇나가는 날. 아니지, 주관적으로는 매섭게 정확할지도 몰라. 요즘 누구를 위해서 글을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나 결심했어.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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