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빠도 엄마가 있었지
나는 오늘도 필패의 도전을 한다. 아이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아이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한 아빠의 무모한 도전
안아달라 뽀뽀해달라 왜 아빠는 안 해주느냐
질척거리는 아빠의 구애에 5살 아들은 엄마 품으로 달려가며 뒤통수로 외친다.
일 순간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생각해본 적 없었다.
기억이 너무나도 엷어져 인생에 그랬던 적이 있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문득 지방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너무나 가여웠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프셨던 아버지를 간호하며 두 아들을 키워냈다. 시집와서 병간호와 생계를 책임지며 30여 년간 살아낸 결과로 얻은 것은 가난, 억척 그리고 고장 난 몸이었다. 어린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그 지방에서 전월셋방 전전하던 엄마의 아들들이 하나는 돈 잘 버는 사장님으로, 다른 하나는 대기업 과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돈돈 했던 어머니에게 돈이 효도인 줄 알았다. 결혼했으니 효도는 나 대신 상냥한 와이프와 개구쟁이 아들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작은 아들은 서른일곱이 되고 노모는 육십넷이 되었다.
장성하여 상경한 이후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본 기억이 없다. 부리나케도 전화해서 기계적인 안무를 묻고 가끔 처자식을 데리고 내려가서 며칠 묵고 오지만 한번 따뜻하게 안아본 적 없다. 어디가 아프다고 한 것 같긴 한데, 오른쪽이었는지 왼쪽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당신의 보살핌이 필요 없어진 아들에게
먼저 손 한번 잡아보자고 말하는 걸
수백 번 망설였을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한 번 안아보자고 했을 때
거절이 두려웠을 늙은 여인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