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show
집 앞 공원이 길었던 보수 공사를 마치고 재개장한 날에, 아들은 내가 퇴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축구를 하러 가자고 했다. 평일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공원은 다소 한산했다. 낮 시간에 놀러나왔다가 이제 곧 들어갈 채비를 하는 유모차 엄마도 있었고,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그 중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그 형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 싶었나보다.아직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가서 말을 걸만큼 사교성이 좋지는 못해 근처에서 쭈뼛거리는 아들을 대신해 "아저씨랑 같이 축구할까?"라며 같이 축구를 시작했다. 우리랑 같은 아파트에 살고 둘은 형제라고 했다.
짝을 지어서 패스도 하고, 나랑 아들이랑 편먹고 형제끼리 편먹어서 시합도 했다. 한 시간 정도 했더니, 부모님이 기다리실거라고 집에 가야한다고 했다. 아파트에 같이 들어오면서 아들이랑 재밌게 놀아준게 고마워서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사줬으면 좋겠는데, 지갑을 두고 온 게 아쉬웠다. 그 아이들도 너무 재미있었는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수요일 7시에 또 할 수 있어요?
오케이 콜!
수요일
오늘은 현장에 설치공사가 있어서, 강남 본사가 아닌 인천 현장에 나왔다. 총 5군데 업체가 공사와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시작하는 것이었는데 작업 시작 전부터 계획한대로 되지 않았다. 한 업체는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고, 현장 관리부서의 작업승인이 지연되어 자재를 하차할 수 없었다. 당초 계획은 13시 전에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17시가 넘어서 공사가 끝났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6시 반 즈음에 생각이 났다.
동네 꼬맹이들과의 축구 약속이
그리고 이틀 동안 형아들과의 축구 약속을 기다렸던 아들녀석이
퇴근 시간 러시아워까지 고려하면 2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그때 출발해도 이미 늦었다. 아들을 데리고 계신 장모님께 전화를 드려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들에게 잘 좀 말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동네 꼬맹이들에게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No-show를 했다.
장모님께서 아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셨었다는 사실은 집에 와서 들었다. 아들과 그 형아들이 만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형아들도 아빠랑 같이 나왔다고 했다. 동네 아저씨랑 축구 약속이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나보다. 아빠도 궁금해서 같이 나오셨나보다.
'아저씨, 우리도 아빠가 있어요.' 라는 표정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꼬맹이들이 실망했을 표정이 눈에 선했다. 장모님과 아들이 공원에 나갔지만, 같이 축구를 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목요일에도 회의를 일찍 마치고 퇴근해서 공원에 나갔었고, 금요일에도 차 막히기 전에 집에 와서 공을 들고 공원에 나갔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도 꼭 챙겨서 갔었다.
목요일에도 금요일에도 아이들은 없었다. 나에 대한, 어른에 대한, 그리고 어른들의 약속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생각해본다. 아저씨가 미안해. 같은 아파트 사니까 곧 보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