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아들과 첫 스키 배우기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해였다. 폭설로 인해 축사가 무너지고 사고가 발생하여 통행이 통제되는 등 전국 각지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눈이 한 번 올 때는 무섭게 쏟아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횟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래서인지 눈이 많이 온 것 같으면서도, 정작 아이가 신나게 눈싸움을 하거나 눈썰매를 탄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들은 창밖 하늘을 바라보며 “아빠, 눈 언제 또 와?”하고 묻곤 했다.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괜스레 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 우리가 눈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자!
육아휴직 중인 아빠와 방학 중인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눈을 기다릴 게 아니라, 눈이 있는 곳에 우리가 가면 되잖아?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배워보면 어떨까?” “아빠 스키 탈 줄 알아요?” “모르지!ㅋㅋ”
나 역시 스키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장 인터넷과 유튜브를 켜서 아홉 살 아이가 스키를 배울 수 있는 나이인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어느 스키장으로 가야 하는지 펜을 들고 하나하나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초보이니 크고 복잡한 곳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스키장을 골랐다. 육아휴직 중이라 경제적으로 아주 풍족하진 않았지만, 최소한의 위생을 고려해 스키복과 방한 마스크는 새로 장만했고 장비는 현장에서 빌리기로 했다. 그리고 ‘완전 초보 강습’도 신청했다.
드디어 스키장에 가기 전날 밤. 우리는 들뜬 마음에 스키복을 미리 꺼내 입어보았다. 현장에서 옷 입는 법을 몰라 당황할까 봐 미리 연습해 본 것이었지만, 스키는 타 본 적도 없으면서 거실에서 국가대표 선수 같은 포즈를 취하며 서로를 보고 깔깔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둘 다 이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다.
설레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았지만, 나는 그날 밤 아이에게 딱 한 가지를 당부했다. 눈 위가 미끄럽고 어색해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도, 짜증 내거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이다. 아들은 성격이 급하고 승부욕이 강해서 생각대로 잘 안 되면 금방 짜증을 내곤 했는데, 비싼 장비를 사고 레슨까지 신청했는데 아이가 쉽게 포기해버리면 아빠인 나도 화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시큰둥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간 곳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오크밸리였다. 차로 1시간 20분쯤 달려 도착해 장비를 빌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강사님께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이는 눈부신 스키장 환경과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장비의 무게를 어색해했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아이가 짜증을 내고 집에 가자고 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A자 멈추기’를 배우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아이는 불과 두세 번 만에 자세를 익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지만, 정작 잘 안 되는 사람은 나였다. 다리와 골반이 뻣뻣해서 발끝이 안쪽으로 잘 모아지지 않았다. 머리로는 100% 이해했는데, 몸은 절반도 따라주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아이에게 “안 돼도 포기하지 말자”라고 신신당부했던 내가, 결국 제일 먼저 포기하고 싶어졌다. 아이는 이미 마스터하고 다음 진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넘어지고 부딪히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겨우 흉내를 내는 수준이 되었다. 그사이 아이는 훨씬 앞서나가고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아빠보다 잘하는 게 하나둘 늘기 시작할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뿌듯함과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경쟁심 같은 양가적인 감정이다. 못난 아빠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보호자로서 내가 먼저 겪어보고 좋은 것만 골라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일 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빠의 키는 작아지고 아이의 키는 커지듯, 우리의 능력치도 결국 역전되는 ‘골든 크로스’의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게임이 그랬고, 독서 속도가 그랬으며, 이제는 스키마저 그렇게 되었다.
고맙게도 아들은 아빠를 재촉하지 않았다.
본인에게는 쉽지만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아빠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런 아들 덕분에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강습이 끝나기 전에 나 역시 A자 멈추기에 성공하고 가벼운 방향 전환까지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이제 내가 아이에게 보여줘야 할 아빠의 모습은 무언가를 미리 경험해보고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도하는 동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하얗게 눈부신 스키장에서 아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