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아빠가 필요할 때

by 라파고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아빠의 부재’는 종종 사회적 묵인 아래 열심히 사는 남편의 훈장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제가 아는 한 회사 팀장님도 그랬습니다. 집은 인천이지만, 일 때문에 천안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주말부부로 지내셨습니다. 아이가 일곱 살 때부터 시작된 타향살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까지 무려 6년 동안 아이와 평일을 함께하지 못하신 셈입니다. 7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이에게 아빠는 주말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주말 아빠’의 역할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에 프로젝트 때문에 팀장님이 인천 집에서 서울 본사로 매일 출퇴근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잘하신다고 소문난 팀장님이시기 때문에 전사적인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 덕분에 평일 저녁에도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은 오히려 아이와 매일 같이 있으니 더 데면데면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의 성장기에 아이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 때문에 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빠가 가장 필요했을 시기에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셨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무님께서 이런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래도 OO 팀장 열심히 산 거잖아요. 열심히 안 산 거 아니잖아요.”


물론 그 팀장님이 열심히 살지 않으셨을 리 없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고된 업무와 장거리 출퇴근, 홀로 하는 숙소 생활은 분명 녹록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 아이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아직 아이에게는 아빠의 고군분투가 가족의 생계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생각되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아이에게 아빠는 그저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든든하고 유쾌한 동반자입니다. 아마 아이는 일곱 살부터 열세 살에 이르기까지, 학교나 학원,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겪었던 수많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아빠에게 하고 싶어 목이 빠지게 기다렸을 것입니다. 친구와 다툰 이야기, 선생님께 칭찬받은 일, 새로 배운 놀이의 규칙 같은 사소한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아빠는 오지 않았고, 아이는 마침내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거나, 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서서히 아빠에게 자신의 세계를 공유하지 않게 됩니다. 아이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데, 아빠의 시계는 주말에만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아빠가 필요한 순간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말한 날

처음으로 두 발로 힘차게 걸은 날

낯선 어린이집에 첫발을 들여놓은 날

밤새 열이 펄펄 끓어 아파서 우는 아이를 안고 밤을 지새워야 할 때

친구와 크게 싸우고 와서 세상이 무너진 듯 서럽게 울 때


이런 찰나의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처한 환경이 다릅니다. 매일 출근해야 하고, 야근도 해야 하고, 때로는 출장이나 파견도 가야 합니다. 아이의 모든 순간, 모든 찰나를 함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일하는 아빠로서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항상 이렇습니다.


내 아이의 찰나의 순간에 내가 그 옆에 있어 주고 싶다.

이 소망이야말로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용기 내어 육아휴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어쩌면 이 결정으로 커리어의 속도가 늦춰지거나 방향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눈부신 시절에 제가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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