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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Jun 17. 2020

6·15 공동선언 20년, 평화가 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영접 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제공 : 경향신문)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다. 1945년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남측 정상이 북측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순간이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예고 없이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마중 나와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두 정상은 2박 3일간 무려 10시간 가까이 자리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눴고, 그 결과로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5일 남과 북 정상이 처음으로 공동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선언문의 역사적 의의는 남북이 스스로 평화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남과 북은 1항에서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 할 것을 선언하고, 2항에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3항에서 이산가족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했고, 4항에서 경제협력을 비롯한 교류활성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을 초청했고, 이에 답해 조만간 서울 방문을 약속했다.   

   

물론 6·15선언이 2박 3일 만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선언문의 내용은 1991년 12월 남과 북이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1991년 12월 남과 북이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상대방을 공식으로 인정한 문서다. 이 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정하면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했으며,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부터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을 강조해왔다.     

위와 같이 국민의 정부 이전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시도는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 남과 북은 1990년부터 8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가졌고, 그 결과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후 팀스피리트 훈련의 재개와 더불어 북한이 IAEA의 특별 사찰 결의에 반발해 NPT 탈퇴 선언을 하면서 다시금 남과 북 사이는 냉각기에 들어갔다.

     

이후 1994년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핵 활동 동결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김일성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안했고, 당시 문민정부는 이 제안을 수락했다. 남북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일정도 합의가 되었고, 사회적 분위기도 평화적인 두 정상의 만남을 기대하는 와중에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김영삼 정부가 민간 차원의 조문을 거부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다시금 무기한 연기되었다. 무려 6년이나 역사가 앞당겨질 절호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무언가 조금씩 엇나간 남과 북 관계는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급속도로 평화적 기류로 흘러갔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함께 1998년 금강산 관광이 개시되었으며,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및 비료 지원이 이어졌고, 개성공단 개발 등의 정책이 시행되었다.      


대결과 적대의 시대로 역행할 수 없다.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반북적인 정부가 이어지면서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었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모두 중단되었다. 또한 한미연합훈련과 북핵 및 대륙 간 미사일 실험 등으로 군사적 긴장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물론 2017년 현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한반도에서 다시금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해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한반도 문제를 직접 견인하겠다는 의지와 주변국에 신뢰를 보이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중재를 최우선 목표로 잡은 듯 외교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작년 두번의 북미정상회담이 큰 성과 없이 종료된 이후부터 조금씩 서먹한 관계가 유지되었고, 올 초부터 조금씩 남과 북 사이 파열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6월 16일) 북조선은 개성공단에 위치한 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청사가 폭파되는 이 와중에도 우리 언론들은 건물의 값을 계산하기에 바빴다. 20년간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어찌 보면 하나의 상징이었던 건물의 무너진 것이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전경. 북한의 돌발적 폭파로 인해 형체가 사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제공 : 통일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평화가 답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그걸 실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평화가 경제이고, 일자리이며,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다. 또한 평화는 누가 가져다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우리의 생명과 일자리와 경제가 흔들리는 일이 발생했다. 현 정부가 정권을 잡고 두 번 이나 남북 정상이 만나고 군사적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한·미연합 훈련은 지속되었다. 군비 증강과 공격적 무기 도입은 꾸준히 진행되었으며, 이번 연락사무소 폭발에 대해서 정부는 북한의 군사도발 감행 시 강력 대응 등 군사적 태세를 앞세우는 발언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동안 남과 북이 합의한 여러 선언들이 죽은 문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신뢰가 깨진 이유들을 다시 복기하고고, 여전히 우리에겐 평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올해 6월은 남과 북 사이 크고 작은 이벤트가 많은 달이다. 불과 20년 전 남과 북 사이 평화의 상징인 정상회담이 있었고, 70년 전에는 극단적인 갈등으로 전쟁이 일어났었다. 그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당연히 정상회담의 성과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선택이 이후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지 현 정부와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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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6. 17. 이두찬. 문화연대 분단문화위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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