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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Feb 06. 2021

함께 싸운 순간
작은 승리가 모인 순간

김진숙과 함께한 라방2,  우리가 싸우듯이

      

* 희망의 버스 사법탄압에 맞서는 ‘돌려차기’는 기획팀이다. (이하 ‘돌려차기’)2011년 희망버스에 탑승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아야했던 많은 사람들의 법률지원을 시작으로 위치추적, 계좌추적, 통화내역조회, 벌금폭탄 등 잘못된 수사 관행에 대한 법적 문제 제기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진숙과 함께 용기를 더 하는 라이브 <내가 싸우듯이>를 진행하고 나서, 김진숙은 ‘돌려차기’에 제안을 해왔다. 희망 뚜벅이와 함께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제 얘기는 많이 나왔는데 아시아나케이오나 엘지트윈타워 훨씬 어려운 조건에서 투쟁하시는데 언론 빨을 못 받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카메라도 의식하시고 그런 기회들이 있으면 해서 청원했습니다.”라며 정년퇴직할 나이도 되었고 이 왕관(투쟁하는 해고노동자)을 다른 동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웃으며 위트 있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진숙의 초대로 함께한 김계월과 최명자는 청소노동자다.     


김계월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아시아나케이오지부 해고노동자로 9개월째 해고무효투쟁을 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 업무를 담당하는 2차 하청업체 ‘아시아나케이오’에서 항공기 기내 청소와 수하물 처리 업무를 해왔다. 코로나19 사태로 공항ㆍ항공산업이 마비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위기에 가장 먼저 노출되었고, 지난해 5월11일에 사측의 무기한 무급휴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됐다.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은 최소한의 해고회피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에서 거듭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음에도 복직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최명자는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엘지트윈타워분회 해고노동자로 3개월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십 수 년간 계속되어 온 관리자 갑질과 무료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2019년 10월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권리 보장을 요구했지만, 하청업체인 지수Inc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한사코 외면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진짜사장’ LG는 LG그룹 계열사 건물의 시설관리 전문 자회사인 S&I코퍼레이션을 앞세워 ‘청소 품질 저하’를 구실삼아 지수Inc와 계약해지했다.      


<우리가 싸우듯이>는 투쟁과정에서 힘들었을 해고 이야기는 조금만 듣고 살아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즐겁게 진행하기로 했다. 그 시작은 지난 토크 <내가 싸우듯이>에서 김진숙의 고구마 사랑에서 출발했다. 고구마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더니 매일 고구마를 가져오신다며 사실은 좋아하는 것이 많다고 했다. 가전제품도 좋아하고 가구도 좋아하고 부동산도 좋아한다고...     


김진숙은 내 인생의 ‘웬수’가 아버지라고 했었다. 아들과 딸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했던 아버지는 그가 오일장에 나가 헤매다 5일만에 집으로 돌아갔음에도 반가워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김계월과 최명자는 남편과 딸(자식)을 지목했고 둘의 이유는 조금 달랐다. 결혼으로 만난 남편은 살면서 의견 충돌 등 다양한 이유로 웬수가 되었지만 자식들에 대한 의견은 달랐다. 김계월은 세대차이를 느끼며 부딪히는 과정에서, 최명자는 시집 안간 딸아이가 웬수같다고 했다. 자신의 결혼생활에 힘겨움을 느끼면서도 자식에게 결혼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60대 또래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편견이 암묵적으로 어머니들의 마음속에 있는 듯 했다.    

 

투쟁의 과정에서 통쾌했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궁금했다. 최명자는 시키는 데로 다 하다가 노조에 가입하고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후로는 정당한 대우를 하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통쾌함을 느낀다고 했다.    

  

“왁스한 돈 주세요. 토요일에 우리가 7시간 반을 일하고 30분 꺾기를 해서 무임금으로 일한 거니까 내 놓아라 했는데 1년 동안 너무나도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왔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그러고는 12월이 되니까 해고하더라고요. 그래서 파업을 시작하고 로비 마당에 자리를 깔고 노숙을 했죠. 우리가 감히 구광모 이름을 어떻게 외쳐봐요... 파업에 들어가니까 구광모 빨리 나와서 해결해라! 이러고 우리가 소리를 지르고, 센터장 이름도 부르면서 빨리 해결해 달라! 우리가 소리 낼 수 있는 게 가장 통쾌합니다. 통쾌하네요.”     


그리고 그는 지난한 싸움에 견딜 수 있는 힘은 연대라고 이야기했다. “부자들이 연대 해주는 거 아니더라고요. 노동자들의 마음을 아는 자들이 연대를 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또 막 마음에 와서 닿더라고요. 찐하게. 그러니까 연대가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김계월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지난해 12월 8일에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을 때 가장 통쾌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측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에 “이 투쟁이 오래 갈 수도 있겠구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라며 짧은 순간의 통쾌함과 서글픔을 동시에 이야기했다.     


김진숙은 “저는 87년도에, 제가 해고되고 나서 1년을 진짜 맞기만 했어요. 어용노조 간부들 50명, 회사 간부들 100명 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밟히고... 그러다가 87년도에 처음으로 파업하는데 어용노조 간부 새끼들 다 배 타고 도망가더라구요. 남의 이름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근데 조합원들이 특공대 조직해서 다 잡아와서 사과 받고. 민주노조 처음 세웠던 그런 순간들이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한 힘인 것 같아요. 조합원들의 힘과 진실을 본 순간. 함께 싸운 순간, 작은 승리들이 모인 순간들이 통쾌한 순간이라 생각돼요.”     


김진숙은 노동해방은 여성, 장애인의 해방도 함께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제가 36년을 해고자로 살면서 스스로 약자고 소외된 사람이고. 만일 남성이었다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거죠.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보게 되고. 저는 오히려 이렇게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이 감사한 것들이 많아요. 같이 싸우는 동지들 중에서도 남성들 중에서는 시각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이 있어요. 노동운동 수 십년해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람도 있고. 그 세계가 편하니까. 그래서 제가 해고 됐고, 제가 노동운동 했고 이렇게 살아온 삶이 좋습니다.”     


그는 노동자의 이미지가 비굴하고 불쌍하고 약하게 그려지는 것을 비판하면서 지금 저는 충분히 맨 앞에서 씩씩하게 걷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나에게 일이란 삶이고, 일을 통해서 호흡한다고 두 사람은 이야기했다. 이에 김진숙은 노동운동을 안했더라면 아마도 청소노동을 했을 것이라 이야기하며 두 분을 초대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최명자는 노조운동은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나를 보면서 은근 놀라기도 했지만 없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다 겪었던 것. 사측의 너무나 부당한 행동. 그런 게 너무 눈에 보이고 그게 괘씸하게 느껴지는 순간 저절로 말이 나온다고했다. 부당함에 큰 소리로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여러분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일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당당하게 하라고 시청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김계월은 부당노동을 강요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던 내가 나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 즉 노조운동은 인권이라고 말했다.  

   

70대에도 일하고 싶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김계월과 정년 없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최명자. 반면 김진숙은 살면서 안 해본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음주가무를 즐기며 유흥의 삶을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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