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과 김금희의 만남
소유욕에 찬 동시에 그 모든 소유가 덧없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는 그런 몸짓으로 그를 끌어안았다.-<브람스를 좋아하세요…>(민음사) 중에서, 216쪽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랑의 일시성과 인간관계의 불완전함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고독을 음미하는 작품이다. 국내 소설 중 이의 주제와 연관되는 소설로 김금희의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2016, 문학동네)를 떠올릴 수 있다. 소설은 사랑의 덧없음과 인간관계 속에서의 정서적 공허함을 중심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만감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두 작품은 각 시대의 사회적 맥락에서 사랑과 고독을 다루며, 감정의 상실과 사랑의 일시성을 심도 있게 그려 나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39세 여성 폴의 내적 갈등과 그녀의 갈등이 동반되는 사랑의 본질을 다룬다. 폴은 젊은 남자 시몽과의 관계에서 일시적인 위로를 찾지만, 그녀는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다. 반면,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는 필용과 양희의 사랑, 관계의 결핍을 담아냈다. 인물들은 청춘의 한가운데서도 사랑을 완전히 느끼지 못하고 관계의 일시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헛돈다. 이렇게 두 소설은 시대와 배경을 달리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강의 소설에서 폴은 자신의 나이가, 들어온 사랑마저도 영속적으로 만들기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금희의 두 청춘도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사회적 제약과 개인적인 결핍으로 인해 불안정하다. 게다가 사랑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하지만, 관계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지속되지 못한다. 소설은 사랑이 순간적인 위안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거, 인물들이 겪는 정서적 혼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폴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녀의 내적 갈등이다. 시몽과의 은밀한 관계로 자신의 젊음을 되찾고자 하지만,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두 번째는 사회적 제약과의 갈등이다. 폴은 나이 든 여성으로서 사회적 규범 속에서 젊은 남자와의 관계가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압박을 느낀다.
김금희의 소설 역시 사회적 제약을 강조한다. 필용과 양희는 청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경제적 불안정성과 사회적 기대 속에서 고통받는다. 연애를 통해 서로에게 의존하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불안정한 미래가 그들을 가로막는다. 이들은 사랑을 추구하는 동시에,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덧없고 불안정한지를 깨달아 간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 중에서, 28쪽
폴의 사랑과 고독은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며 겪는 감정적 변화와 그로 인한 불안에 초점이 맞춰졌다. 폴이 사랑으로 자존감을 승화하려는 시도는, 결국 자신이 더 깊이 고립되어 가는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사랑이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의존과 자립 간의 갈등 속에서 더욱 복잡해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로써 사랑의 불안정한 본질과 개인의 내적 탐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찬가지로, 필용과 양희도 사랑과 고독의 교차점에 서 있는 셈이다. 이들은 사랑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영화 속 로맨스 이상의 문제로 가득하다는 걸 알아간다.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받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김금희의 인물들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고립감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이상 과거처럼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인식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이 출간된 1950년대는 여성이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제약이 강하게 가해지던 시대였다. 폴은 자신의 나이와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젊은 남자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인식한다. 그녀의 사랑은 결국 사회적 제약 속에서 파괴된다. 김금희의 소설 속 현대 한국 사회는 경제적 불안정성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사랑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을 보여준다.
필용은 앞으로 다가올 성공과 인정을 꿈꾸지만, 양희는 오로지 현재에만 머물러 있다. 그 현재란, 손에 잡히지 않고 부옇게 흩어지는 안개처럼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모습은 MZ세대가 겪는 사랑의 포기 현상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포착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이상일 뿐, 경쟁과 생존의 문제로 여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두 소설은 사랑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다루지만,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는 걸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 제약과 개인의 내적 갈등 속에서 사랑은 서서히 파괴되고 소멸한다. 특히 양희와 필용은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적 기대가 얽혀 있는 현실에 굴복하는 양상으로 흘러간다. 사랑은 이제 더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이 아니며, 본질을 잃고 흩어지는 사치품에 불과하다. 더는 영원하거나 이상적인 감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암담한 현실은 오히려 일시적이지 않되 더욱 견고한 불안정성을 확장하며, 사랑은 선택지의 외곽에서 표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