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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22. 2024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25화

25화. 질주하는 마니아들


젊은 사람 여남은 명이 보였다. 그중에는 여성도 한 명 있었다. 그가 리더라도 되는지 주변으로 사람이 빙 둘러 있었다. 시혼은 세운과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들 중 한 명이 세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여성에게 뭐라고 알려주는 듯 보이는 입 모양이 시혼의 눈에 들어왔다. 여성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이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세운이 지난번에 얘기했던 그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하필 시혼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인지, 아직도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세운은 그들과 대면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자 제일 앞에 있던, 친구로 보이는 남자와 격하게 악수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사람들과도 비슷한 힘으로 일일이 악수하며 반가움을 진하게 표출했다. 시혼은 바로 뒤따르며, 악수보다는 그들 모두에게 가벼운 눈길로 인사를 나눴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인사가 끝난 후 자리에 앉자마자 여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리고 오늘 왕림하신 목적이 우리와 함께 그 사업을 도모하자는 취지이던 데. 아, 그 전에 영상 잘 봤습니다. 아주 화끈하고 스릴 만점에, 탄성이 절로 나왔답니다.”


여성의 말에는 티시포네에 대한 찬사가 짙게 깔려 있었다. 모두의 기운이 의심할 필요 없이 같다고 여겼는지 세운은 주저하지 않고 설명을 풀어나갔다. 무언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가 강렬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여느 때와는 분명 달랐다. 영상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실시간으로 진행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복기시키더니 살갗에 후벼 드는 쾌감을 신명 나도록 전달 했다.


“그래요, 그건 알겠는데… 왜, 우리를 그 사업에 합류시키려 하는 거죠?”

여성의 질문이 송곳처럼 예리하게 세운의 눈매를 찔렀다. 그러나 세운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처럼 전혀 꿀리는 기색 없이 대차게 응답해 주었다.


“수입차가 자기 옆이나 뒤, 앞에서 달리고 있으면 벌벌 떱니다.” 세운의 단 한마디였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여성은 한 번 피식 웃었다. 주위의 남자들도 헛웃음을 지었다. 다들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표정을 만들었다.


“바로 그런 심리를 역으로 이용하자는 겁니다. 목표 차량의 주위에 포진되면 압박이 더욱 공고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럴수록 우리의 목적은 더욱 수월하게 진행되겠지요."

몇 사람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그러더니 누군가가 그렁그렁한 목소리로 힘을 보태었다.


“우리에게 급가속과 급커브는 생명과도 같지요.” 그의 말에 여성은 싱긋 웃어주는 것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

리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요. 일리 있는 상황극이네요. 그런데요. 왜 우리가 꼭 그걸 해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대로 광란의 질주 속에 만족하고 있거든요.”

수입차를 굳이 대동하지 않더라도 프로젝트는 잘하고 있지 않냐는 뉘앙스였다. 여성의 말이 끝나자, 세운은 시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자기를 데려온 이유가 파악되었다. 이럴 거면 미리 언질이라도 줬다면 한결 좋았겠다는 생각만이 스쳤다. 그렇게 아쉬운 눈빛을 잠시 나타내주었다.




준비한 게 있을 리 없었지만, 어차피 최근 몇 번의 모임에서 주되게 설명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 정리하면 될 일이었다. 조금 긴 얘기가 끝났다. 사람들의 정감마저 충족시켰는지, 표정들이 훈훈하면서도 다부져 있었다.


“오, 브라보. 멋져요. 우리의 폭주에 삶의 철학을 입히자는 프로젝트네요. 그럼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요. 막가는 사회에서 지성으로 질주하다, 어때요!” 여성은 뒤돌아보더니 나머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날렸다. 자기의 표현이 괜찮지 않냐며, 동의를 구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대와 스릴이 벌써 스며들어 있었다. 남자들도 흔쾌한 표정과 박수로 화답했다. 세운은 웃을 겨를도 없이 모인 사람들의 휴대 전화번호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입력했다. 이들의 전화기는 분명 대포폰일 것이다, 우리처럼. 시혼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세운은 어느새 티시포네에게 오늘의 결과를 간략히 요약해서 메시지로 전송했다. 시혼의 전화기에도 다정하게 도착했다.


“이렇게 하나의 팀이 되었으니 경사스러운 날이네요. 그럼,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여성은 벌써부터 기대에 찬 목소리였다. 프로젝트가 곧 가동되기라도 할 것처럼 물었다. 세운은 회원 중에서 프로젝트 요청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실행하는 과정까지 샅샅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공유된 영상을 활용해서 간결하고 입체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들로서는 이미 보았던 영상이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 포위 차량의 움직임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자, 탄성을 질러대었다. 박수도 빠지지 않더니 여성의 반응이 즉각 나왔다.


“우리는 사실, 자동차 마니아예요. 그냥 폭주족과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근데 뭐, 구분이나 경계가 모호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합법적으로 무한 질주하거든요. 차량의 흐름이 한적한 시간과 외진 곳을 찾아서 다닌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마땅한 장소가 희박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때때로 우리의 광속이 블랙박스에 걸려서 사회 문제로 비화 되고는 해요. 도로를 더 개설하거나 넓히면 다 풀리는 문제라 얘기하면, 그건 또 다른 행정의 문제가 되어버리기에….”

잠시 말을 끊더니, 다시 화끈하면서도 통통 튀기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액션이란 거죠. 게다가 철학과 미학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와 와! 감탄이 절로 나온단 말이에요. 언제 할 수 있을까요, 프로젝트. 어서 빨리, 하루라도 빨리해 보고 싶다니까요.” 앉아 있으면서도 온몸이 뜀뛰기를 하는지 얼굴이 하늘로 폴짝폴짝 널뛰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월등한 군사력으로, 아마도 중동의 질서를 완전하게 자신들이 장악하거나 재편하려는 야욕을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여기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중동,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런 대척은 서로를 압제하며 족쇄처럼 연결되어 있답니다. 그래서 한쪽의 폭격이 완전히 멈추지 않는 한 모든 전쟁은 지구의 운명과 함께할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어도 폭격만큼은 살아남아 지구의 혼돈을 지속하겠지요. 이 모든 불행을 원래의 평화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간을, 인류에게 일찍이 없었던 시간이 도래해야만 할 겁니다.”

강사의 말이 끝나자 한 학생이 반론이라도 제기하려는 기색인지 조금 큰 목소리로 의견을 말했다.


“교수님, 우리에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이 별개로 작동하진 않잖아요. 다만 현상에 적용하는 게 다를 뿐이니까요. 어차피 시간은 추상의 개념이고 그걸로 역사의 결과도 가정처럼 속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는데요.” 말을 마치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보기에는, 현상에 적용한다기보다는 실제의 해결 방법이나 의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시는 걸로 이해되는데, 그렇지 않을까.”

앞쪽에 앉은 여학생이었다. 강사는 입가에 머무는 옅은 미소를 애써 감추며, 강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조바심에 눈가가 잠시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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