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악은 새로울수록 강해지고
새로운 구성원이 채워지면서 그룹 통화 인원은 열 명을 훨씬 넘기게 되었다. 티시포네는 한결 완숙된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도로 위에서 고가의 외제 차가 보여줄 위용이 기대되기도 했다. 이제는 새로운 임무도 창출하면서 역할 분담도 더욱 세밀하게 재구성되었고 각 차량이 움직일 루트마저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현장에 출동할 인적 자원이 풍부해졌다는 게 큰 힘이었다. 사이버상에서 댓글을 달아줄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다. 이를 도맡을 적임자가 필요해진 것이었다. 세운은 이 모든 걸 사전에 계획했던 것일까? 더군다나 드론을 담당할 인력이 더 추가되어야 할 텐데, 시혼은 생각할수록 세운의 복안이 궁금했다.
시혼은 자신도 모르게 티시포네의 확장에 얽매이게 되었다. 늘어나는 인원과 세밀해지는 역할 분담 속에서, 그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고도화된 네트워크에 갇힌 형편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티시포네의 위용이 커질수록, 거기에 묶여버리는 자신을 발견하며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주어진 임무에 대한 활약을 꿈꾸는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기이한 자부심마저 움트는 거였다. 하지만 끝끝내 이탈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갈대밭으로 이끌었다. 현실의 어둠 속에서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복잡한 감정의 너울에 손이 떠내려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시혼은 이런 생각으로 한가하게 소일하며 보내고 있었다. 한적하다 싶을 때 그룹 통화가 작동했다. 필시 프로젝트 호출일 게 뻔했다. 새로 합류한 회원이었다. 지금은 지방의 휴게소에서 정차 중이라고 했다. 회원이 적시에 와줄 때까지 차량을 추격하겠다고 알렸다. 핵심은 드론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프로젝트를 가동할 수 있는 주변 지형물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다. 더군다나 고속도로였다. 몇몇이 결합하겠다며 흔쾌하게 반응을 보였다. 시혼도 기분 좋게 답해주고는 차량을 몰았다. 일종의 지방 원정인 셈이었다.
최소 필요 차량이 확보되었고 시혼은 일종의 스페어로 편성되었다. 시버 차량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전방에서 주행하는 역할이었다. 드론을 맡은 세운은 현장을 폭넓게 파악하는 중이었다. 어느새 대략의 실행 구상을 설명해 주었다. 고속도로 갓길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시혼이 전방에서 한참을 앞서 달려가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확인된 갓길에서 시버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차량을 상당한 속도로 몰아가며 갓길 쪽으로 주행을 유도하는 임무였다. 그러다가 정차 중이던 시혼이 갑자기 튀어나올 계획이었다. 공간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 몰리던 차량은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혼란이 상황에 놓이게 될 거였다. 당연히 사고를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계획이었다.
티시포네는 대열을 갖추고 한참을 주행하고 있었다. 세운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는지, 조금은 난처해하는 목소리로 작전의 일부를 알렸다.
“시버의 뒷유리에 스티커가 부착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판독이 안 되거든요. 후방에서 압박하는 람보님, 확인할 수 있지 않나요. 혹시, 아기가 타고 있다는 게 아닌지 싶어서 그럽니다.”
처음부터 추격했던 람보는 즉각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가 추격할 때부터 본 스티커였다. 그러나 차량 내부에는 분명 운전자 한 명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휴게소에서도 혼자만 움직였다. 아이가 타고 있을 리 없거니와 다른 동승자도 없으리라고 그는 단언했다.
아무도 없는데, 단지 스티커 한 장 붙어있다고 대사를 멈출 수 있는 일인가. 람보는 지금의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사실대로 알리면, 다른 회원들이 동참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면 람보가 받았던 분통은 참아 넘기는 일이 되고 만다. 잠시 고민하더니 나름 잔꾀를 부려 답신을 보냈다.
“아, 저거요. 초보운전이라고 광고하는 겁니다.” 길게 고심할 필요도 없이 임기응변으로 답변이 튀어나왔다. 그의 대답에서 확실한 기운이 감돌자, 드론에서 곧바로 반응이 나왔다.
“하하 그렇군요. 오늘 도로 위에서 제대로 신고식 하게, 쓴맛 좀 보여줍시다.” 그러자 참여자들은 “오케이!”를 외쳤다. 더하여 “부담일랑 털어내고 결행합시다.”라며 일이 벌써 성공한 것처럼 화끈하게 달아오른 목소리 톤이 여기저기서 내뱉었다.
갓길을 활용하기 위해 시버의 우측은 비운 상태로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좌측과 후방에서 외제 차가 압박하자 자신의 본래 속도를 잊고 상당히 높은 속도로 주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고가의 외제차량 효과를 입증해 주었다. 이렇게 프로젝트 성사를 위한 질주는 가동되었다.
추돌사고를 보여주는 뉴스 영상이 지루할 만큼 반복되고 있었다. 시혼은 갓길에서 튀어나오며 시버의 전방으로 끼어드는 순간, 좌측에서 몰아가던 차량이 급발진했다. 이때 타깃 차량은 좌측의 공간으로 급하게 핸들을 틀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마자 후방에서 바짝 쫓던 람보의 차량이 직진으로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프로젝트에 맞춰 모두는 사고 현장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역시나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혼의 차를 피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왼쪽 차선으로 핸들을 틀었던 시버는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이 운전석을 들이박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다시 우측 차선으로 꺾이더니 튕겨 들어갔다. 그러고도 뒤따라오던 대형 화물차량이 급제동하면서 추돌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물차의 적재물을 묶었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물건들이 차량 밖으로 쏟아졌다.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닥에 부딪히면서 살짝 솟구쳐 올랐고 멈춰있던 타깃 차량을 가격했다. 차의 반쯤을 뭉개버렸다. 이 차량에서 죽은 이는 한 명이 아니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졌다. 그리고 원망의 시선은 람보에게로 향했다. 람보는 한사코 아니라며 발뺌했다. 세운은 모두를 진정시키며 수사 범위에 우리가 포함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수사망을 두려워했다기보다는, 회원들은 윤리성이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는 걸, 세운은 온전히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워할 이유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를 단정 지을 수 있는 스모킹 건은 없습니다. 주변에서 주행했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대동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주행을 했다고 주장하면 그만입니다. 여기에 그 어떤 범죄적 단서를 적용할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지레 겁먹지 말고 평상시처럼 지내시면 되는 겁니다.”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범위를 움켜쥐며 선언하는 사람이라니, 시혼은 그의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세운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은 불안한 기색을 떨쳐내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세운은 이걸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실존 포기각서’가 지금처럼 위태로운 순간에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경찰이 뭔가 냄새를 맡고서 수사망이 우리 중 누구에게로 도달한다면, 그 두려움 앞에서 회원들의 선택이 세운의 격려대로 안심할 수 있을까.
처벌을 감면 시켜준다는 달콤한 회유, 죄수의 딜레마는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였다. 법의 위협 앞에서, 또한 가장 수세에 몰린 그 누군가가 손쉬운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아이의 죽음이 없었다면 무난하게 지나갔을 것이다. 티시포네의 계획은 여전히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티시포네의 실패는 목표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