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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10시간전

[소설] 티시포네 프로젝트 28화

28화. 마지막 구원이여


<마지막화>


나는 구치소의 쇠창살을 무한히 쳐다보면서 싸늘하달까 경박하달까, 이런저런 상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처절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여론은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다. 만인에게 지탄받는 중이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마저도 동정의 아량을 보여주질 않았다.


보복을 통하여 난폭의 실체를 갱생하려던 우리의 지고한 프로젝트는 죄의 형틀에 단단히 묶여버렸다. 저마다 선고받은 형량은 정상적인 사회의 틀에 적응할 기회조차 막막하게 만들었다. 벌써 인간 말종으로 취급받고 있지 않던가. 싸늘한 시선만으로도 녹초가 되어버렸다.


회생할 수 있을까. 훗날을 도모할 수 없을 정도로, 정당성마저도 얻지 못했다. 이건 실패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더 큰 비애였다. 우리의 대범한 행동은 무모했을 뿐이라고 한다.


우리의 행동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어린아이’의 치기에 불과했던가. 차량이 시속 60km로 달리면 타이어는 1,610회 회전한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회전수는 가파르게 늘어난다. 이 회전이 역사의 길보다도 더 원대한 숨결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티시포네도 순환하는 움직임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새롭게 다지고자 했다. 도로 위에서 난폭한 행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서로의 조화를 깨는 일이다. 모든 운전자가 자신의 길만을 달리는 게 아니듯, 약속을 맞추고 배려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운전의 미덕이 아닐까. 무모한 난폭운전을 제재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고자 했다.


그들이 진심으로 참회하며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개인 간의 감정 충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안전과 질서를 가져오는 과정이라 믿었다. 우리가 지향하고자 했던 가치와 의도를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아쉽고, 또 아쉬워 허탈함이 증폭한다.     




세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 절대 아니었다.


“대중이 우리를 지원하고 있다는 기운을 느끼십니까. 이게 중요한 겁니다. 우리는 전혀 헛되지 않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진의를 알아주는 대중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 아니 어차피 우리는 옳다! 이걸 새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더욱 꿋꿋하게 우리의 프로젝트를 결행하면서 대중을 흡수하도록 합시다. 시대의 못된 습성을 바로잡고 세상을 평화의 질서로 재편해야지 않겠습니까. 그 중심에 바로 우리 티시포네가 있습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기 이 공간에 내가 존재한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최근 몇 개월 동안 현란했던 사건들,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우리는 옳았는지를 계속 자문했으나 대답은 쉽게 내릴 수 없었다. 다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반복이었다. 우리는 어리석었던가.


누군가를 정화하겠다는 선한 의지는 가장된 위선에 불과했던가. 비록 우리의 프로젝트가 대중과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유발했다지만, 그뿐이었다. 조직적인 폭력과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긴급체포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 정말로 그 이유를 깊이 다루는 이는 없었다. 그저 가볍게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야 우리의 행동과 고결한 이상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세우려 했던 가치는 외면당하고 말았다. 우리를 제외한 세상의 시야는 좁고도 얕았다.


시대를 이끌겠다는 우리의 철학을 받아들이거나 제대로 검토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세상이 얼마나 척박하던가. 그 안에서 싸우고자 했으니, 지금에서야 사치처럼 보일 뿐이다.


세상에 외떨어진 존재처럼 적막할 때,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벌어졌던 장소를 우연히 지나가면서 보았던,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것은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 곡선이었다. 우리의 과녁 차량이 마지막에 보여준, 살아보고자 안간힘을 발휘했던 그들의 숨결이 새겨 있었다. 보이는 선들이 무한의 궤적을 만들며 이어졌다.


압살되기 직전의 생존본능으로 휘돌아나가는 타이어 자국은 꼿꼿한 문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극한의 조건에서도 살아남은 삶의 경이로움처럼, 흰 선은 모두 아름다웠다. 그 이후로 유사한 자국을 목격할 때마다 동공에는 안정이, 심장에는 평화가 안착했다. 의기소침해지는 날이면 물러진 틈을 허용하지 않을 직진의 삶이 되기 위해, 급하게 틀어진 곡선 위에 숨소리를 맞추고 싶었다.    



나의 교도소 생활도 벌써 두 달째 접어들고 있었다. 선고 일정이 점차 다가온다. 그런데 최근 며칠 전부터 내 주변의 움직임이 한산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는 초기에 면회를 두 번 왔을 뿐 그 뒤로는 소식이 없었다. 전화 연결조차도 되질 않는다.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말라 했는데, 진짜로 모르고 계시는가.


변호사 접견은 단 한 차례, 그 뒤로는 감감하다. 재차 선임을 요청했는데 회신도 없다. 바깥소식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담당 교도관의 순찰도, 발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의 얼굴마저 기억이 없다.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뭔가 불길한 기운이 내가 잠자고 있는 공간을 배회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처럼 구역 되어 있는 게 아닌지. 밖에는 일찍 날아온 여름의 전령이 비를 데리고 왔다. 교도소 마당에는 붉은 백일홍이 가득 채워져 피었다. 이제 보니 언제였나, 봄꽃은 어느새 다 졌구나.


모든 것이 지나간 후, 남은 것은 고요함이었다. 긴 바람의 끝자락에서, 나뭇잎들은 이젠 더 이상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나풀거리며 내려앉았다. 부서지더라도 바람에 맞서던 그들, 한때는 자신들이 가는 길만이 맞다고 의합했던, 이제는 희미한 기억으로 떠돌며 와해하는 중이었다.


흩날리던 시간의 뜨거움도, 돌길을 걸을 때 느꼈던 날카로움도 더 이상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바람이 지나간 흔적, 그리고 다시는 가지 못할 길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꿈꿨던 무언가는, 휘몰아치던 바람에 쓸려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들은 바람을 이기려고 했던 게 아니라, 바람 속에서 위안의 길을 찾으려 했던 것임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 발을 험하게 내디뎠을 뿐,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는 거다. 결국, 홀로 이렇게 남은 거였다. 나머지들은 바람 속에서 흔적도 없이 자기들의 공간으로 안전하게 사라졌다.


세상이 다시 조용해졌을 때, 그들은 먼발치에서라도 서로의 길을 바라보리라. 돌길을 걸었던 발걸음도, 나뭇잎처럼 흘러가길 바랐던 꿈도, 이제는 같은 바람 속에서 고요히 엉켜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발자국들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한순간에 날개를 잃은 새와 다름없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새는 이제 땅에 떨어져, 다시는 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바라본 하늘은 아직도 넓고 푸르렀지만,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모든 게 멀리 사라져 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길은 다른 이들의 발끝에서 새롭게 그려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것은 싸움도 복수도 아닌, 모든 분노를 내려놓고 고요히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길이었다. 분노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최강의 보복이자 깊은 복수임을, 내가 찾아 헤맸던 진정한 힘은 적을 꺾는 무력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고요에 있었음을 이해했다.


티시포네 신화가 전하는 참된 복수는 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질긴 인내와 고독 속에서 진정한 평온을 찾는 힘이었다. 나는 긴 고통의 흔적을 힘으로 되새기듯 철창의 반듯함을 애처롭게, 떨어지지 않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상으로 경장편 <티시포네 프로젝트> 연재를 마칩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탐독해주신 브런치 작가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소설은 지난 2021년 경 중편으로 집필되었으나, 공모전이나 어디에서도 실리지 못했던 글을 최근에 여미게 되었습니다. 글을 다듬고 살을 붙여서 지금의 경장편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더 좋은 글을 만들어 보리라는 의지로

하루의 땀을 견지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Bookk에, 지난 11월 22일부터 종이책으로 출간과 구매가 가능해졌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티시포네 프로젝트 @가다은 - BOOKK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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