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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Nov 22. 2017

명화를 다룬 비운의 명서

장 프랑수아 셰뇨 <명작 스캔들>

이 책의 최대 마케팅의 실수는 제목인 것 같다. 미술 관련 서적 중에 꽤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제목의 고루함 덕분에 좀처럼 읽을 엄두를 내지 못 했다. <명작 스캔들>이라는 제목과 표지에 사 분할된 명화 배치를 보면, 이 책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로 미술 이야기를 할 것 같아 두려웠다.

미술 스토리 텔링 방식 중-비단 미술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에 가장 싫어하는 것은 '시간 순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흐를 예로 들자면 '고흐는 1853년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스토리 텔링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과찬인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인생을 사는 것도 시간순인데, 꼭 책을 읽으면서까지 시간순으로 읽어야 되나? 하는 비뚤어진 마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 프랑수아 셰노의 스토리 텔링 방식은 매우 재미있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책 안에서 마음껏 뽐내며, 명화들이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순간부터 끄집어내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일전에 예를 들었던 고흐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 이렇게 시작한다.
폴(고갱)은 빈센트(고흐)와 나눠서 쓸 캔버스 20미터를 샀다. 그들은 이 캔버스로 20미터의 걸작을 완성할 참이었다. -p207


고흐의 이야기는 그가 매우 아끼고 좋아했던 고갱와 같은 아틀리에를 쓰고 동거했던 약 2개월간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둘의 다른 취향으로 벌어졌던 사소하지만 치열한 논쟁들과 그런 논쟁을 벌이는 것마저 좋아하던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읽으니, 이미 충분히 알고 있던 고흐와 고갱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경우 화가의 이야기가 아닌,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도난'되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해준다. 과연, 박물관 한가운데 멀쩡히 전시되어있던 명화를 도둑은 유유히 떼어내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인지 절도범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마치 그와 공범이 되어 박물관에서 그림을 가지고 도망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흥미로워할 미인 프리네에 대한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프리네는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신성모독의 죄로 법정에 섰지만, 죽음을 당한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사면을 받는다는 이야기와 당시의 그림은 남녀노소의 이목을 집중시키 기게 충분하다. 그는 이야기의 배치 역시 사람들이 쉽게 집중할 수 있도록 배치할 줄 아는 진정한 스토리텔러인 것이다.


장 프랑수아 셰노의 다른 책도 구입하고 싶지만, 국내에 출간된 것이 없어 알지도 못하는 불어를 아마존에서 검색하며 방황하면서, 지금까지 읽어본 미술 관련 책 중에서 손꼽히게 흥미진진한 책이라고 단언한다. 어쩌면 그의 책을 더 읽기 위해 불어를 공부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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