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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비축기지 Sep 30. 2022

플로팅 유니버시티

비축생활 VOL.16 기지가 사는 세상

베를린 템펠호프 공원의 물 위에 띄운 대학

플로팅 유니버시티

조립과 플로팅 방식으로 늪지에 건축한 이곳은 생태 환경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매년 여름, 도시의 변화와 환경에 대해 논의하고, 도시 생태 문제에 다방면으로 접근한 교육과 연구를 진행한다.

글 문창호




ⓒAlexander Stumm

템펠호프 공원은 1930년대 초 템펠호프 공항(Tempelhof Airfield)이 있던 자리에 지었는데, 본래는 베를린의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부지로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8년 템펠호프 공항이 폐쇄된 이후, 이곳은 ‘내버려두기’로 결정됐다. 베를린 시민들이 템펠호프 공항 개발 계획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비행기가 달리던 활주로에서 자전거와 스케이트를 탔고, 활주로 옆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겼다. 그들의 바람대로 템펠호프 공원은 몇몇 편의 시설을 설치한 것을 제외하고 크게 변하지 않았고, 베를리너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원으로 남게 됐다. 그런데 2018년 여름 템펠호프 공원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80년간 봉쇄됐던 템펠호프 공원의 늪지에 희귀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거주하며 생태 전시장 같은 독특한 환경이 조성됐는데, 별안간 ‘대학교’가 들어선 것이다.

ⓒTomaschko

‘플로팅 유니버시티 베를린(Floating University Berlin)’은 2018년 독일의 건축 사무소 ‘라움라보어 베를린(Raumlabor Berlin)’이 주도해 만든 비공식 교육·연구 시설이다. 2018년 5월부터 9월까지 20여 국가에서 온 대학생, 예술가, 지역 전문가, 건축가, 음악가, 무용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만든 프로젝트 공간이기도 하며, 더불어 사는 도시 생활을 실천하고, 현대적이고 탄력적인 미래 도시 생활 형태를 표방했다. 참여자들은 늪지 위 캠퍼스 내에 학습 공간, 작업 공간, 강당, 정수 시스템, 주방, 바, 화장실 등 필요한 시설을 건설했고, 그 결과 지식을 교환하는 실험적이고 교육적인 형태의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이곳에서 지구온난화, 자원 부족 같은 화두를 중심으로 ‘초다양성과 초고속 개발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도구가 필요할까?’ 등을 논의하는 학술회의, 워크숍, 토론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4개월간의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 ‘플로팅 베를린’이라는 사회단체로 전환돼 매년 여름 관련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시민과 지식인을 초청해 도시와 환경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며, 환경문제와 주변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기후를 돌보는 기후 케어(Climate Care) 페스티벌 또한 꾸준히 운영 중이다.


ⓒPierre Adenis

플로팅 건축은 일반적으로 물 위에 떠 있는 건물을 말하는데, 평상시 땅이나 구조체 위에 놓여 있지만 홍수 시 물 위로 떠올랐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건물도 해당된다. 일반적으로는 부력이 있는 하부 구조체와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는 상부의 건축 공간으로 구성한다. 하부 구조체는 속이 빈 콘크리트 박스, 통나무, 플라스틱 통, 스티로폼, 빈 페트병 등을 활용하며, 상부의 건축 공간은 최대한 가벼운 재료를 사용해 부력의 부담을 줄인다. 플로팅 건축물의 장점은 일반 건축물에 비해 이동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일반 건축물은 한번 지으면 그 자리에 고정돼 이동이 불가능하다. 반면 플로팅 건축물은 땅에 고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을 마치면 필요한 다른 장소로 옮겨 재사용할 수 있다.

ⓒDaniel Seiffert

플로팅 유니버시티 베를린의 기본 건축물과 부대시설은 갈수기(한 해 중 강물의 수량이 가장 적은 시기)에는 지면에 앉았다가 우기에는 물 위로 뜨는 플로팅 건물과 철제 파이프를 지면에 고정해 건물 바닥을 우기 수위보다 높게 지은 조립식 건물로 구성했다. 대지 조건, 사용 후 원상 복귀 문제, 건축 비용과 유지 관리 예산 등을 고려해 복합적인 방식을 선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플로팅과 조립 방식을 채택해 생태의 보고인 늪지를 거의 훼손하지 않고, 다양한 목적의 공간을 자유롭게 건축했다. 필요하면 시설을 증축할 수 있고, 용도가 다하면 언제라도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철거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단연 높은 ‘가성비’를 보인다.



문창호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새로운 건축 유형인 플로팅 건축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스웨덴 왕립공대 건축과 객원 연구원,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및 클렘슨대 건축과 방문 교수 등으로 견문을 넓혔고, 군산대학교 누리 건설교육사업단과 플로팅 건축 연구단 단장을 역임해 교육과 연구 사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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