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게도 별게 다 선행이람
어릴 때부터 이런 얘기를 늘 들었다.
너 자세 그렇게 구부정하게 있으면 나중에 커서 고생한다.
어릴 때는 내가 키가 큰 게 너무 싫었다. 부평역 지하상가를 걸어 다니다 보면, 짓궂은 남학생들이 내 뒤에 서면서 '내가 쟤보다 커? 작아?' 이런 소리를 듣는 게 스트레스였다. 커 보이고 싶지 않아 구부정하게 걸었고, 짝다리를 짚고 다녔더랬다. 바른 자세를 강조한 주변 어른들의 충고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고등학생 때부터 허리가 쿡쿡 쑤시며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억울했다. 그저 공부 좀 열심히 하겠다고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허리가 찌를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스무 살쯤에는 대통령들의 정형외과 주치의 출신이 한다는 논현동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주사를 맞고 허리에 테이핑을 했다. 테이핑을 감으면 테이프 자국이 허리에 아로새겨졌다. 당시 살던 인천에서 논현동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 30분이 넘게 걸렸다. 주사 10대만 맞으면 평생 허리 아플 일 없을 거라는 돌팔이 의사 말을 믿었다. 그랬으니 20년 전에 한 대에 10만 원이 넘는 주사를 10대나 맞았겠지. 그 의사가 돌팔이 의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후로 15년 후에 내 허리 디스크가 터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중간에도 아이 낳고 키우면서 허리는 지속적으로 아팠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은 허리 디스크 터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앞으로 애들이랑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자 눈물이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행복한 결혼생활하면 떠올리던 공원에서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놀이, 수영장에서 하하 호호 물놀이하며 노는 일 등등 이제 앞으로 가족이 함께할 수 있기는 어렵겠구나 싶었다. 대체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긴 한걸까 좌절감이 쏟아졌다.
디스크 치료를 위해 갔던 대학병원의 환자 중에서는 내가 제일 어렸다. 당시 내 나이는 서른일곱이었다. 다들 보호자 부축받아 온 여든 넘은 어르신들뿐인데, 혼자 덜렁덜렁 가서 의사한테 따박따박 아프다고 칭얼대고 돌아오는 길에는 현타가 줄줄 쏟아졌다. 마흔도 안된 젊은 나이에 혼자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택시 문을 열고 닫는 것도 힘들었다. 앉아 있다가 서는 것, 서 있다가 앉아 있을 때, 앉아 있다가 누울 때 등등 진짜 세상의 모든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천천히 그나마 있는 근육들을 달래 가며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아이들과 재밌게 노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이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도와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었다. 나의 엄마는 아프다며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동생들과 거실에서 놀다가 시끄럽게 떠들기라도 하면 엄마는 머리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런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얼음땡'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하면서 열심히 놀았다. 그런데 도대체 내 삶은 언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뭐가 문제였길래 여기까지 왔을까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진심을 다해 몸을 되돌리기 위해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다. 다행히 디스크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에 누구나 다 한다는 도수치료부터 받았다. 그 외에도 체외충격파, 물리치료, 신경차단 주사. 단백질 주사를 줄줄이 시작했다. 도수치료사가 내게 처음 가르쳐줬던 건 하나였다. 걸을 때 골반을 아래로 내리라는 것. 골반을 위로 들고 있어서 허리가 계속 찝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나는 걷는 것부터 잘못되었다고 했다.
뭐라고요? 걷는 것부터 잘못되었다고요?
저기요. 제가 애만 둘이에요. 심지어 첫째는 8살이고, 둘째는 5살이라고요. 눈도 못 뜨고 태어난 신생아 둘을 기는 것부터 해서 걷고 뛰는 것까지 깔끔하게 마스터시켰는데요. 동네 놀이터에서 가장 잘 노는 애들이 바로 저희 애들인데요. 그런 제가 걷는 것부터 잘못되었다고요? 진심으로 돌쟁이가 된 것처럼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수순이었다. 경험 많은 도수치료사들은 내가 치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음걸이를 보면서 내 상황을 꿰뚫었다.
“주말에 어디 힘든 일 있었어요? 왜 이렇게 몸이 무거우세요?”
“헉. 어떻게 아세요? 애들 따라다니느라 힘들었어요. 선생님, 그런데 제가 요즘 시간이 좀 많은데, 동네라도 걸어 다닐까요?”
“아뇨, 걷지도 마세요. 아직도 제대로 걸을 줄 모르세요.”
“네? 그럼 뭘 할까요?”
“당분간 누워 계세요. 지금은 좀 쉬셔야 해요.”
걷는 법도 모른다니. 허 참, 도대체 인생 어떻게 산 건가. 걷지도 말라고 하시니 그저 침대에 누워있었다. 걸을 때 의식하며 좀 걸어볼까 했더니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허리를 꺾고, 걷고 있었다. 허탈했다. 왜 학교에서는 제대로 걷는 법 하나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왜 학교에서는 바른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지 않는 걸까. 사실 이것만 제대로 알아도 평생 아플 일의 50%는 줄어들 것 같은데 말이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고 애꿎은 국영수만 하다 왔다고 생각나니 허탈감이 쏟아졌다.
이제 와 남 탓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한 탓이다. 책 읽을 때 허리 꺾고 앉고, 걸을 때 키 커 보이는 게 싫어서 어깨 좁히고 걷고, 요가할 때 수업시간 중 가장 유연해 보이려고 있는 무릎 없는 무릎 다 쓰고, 아이들 울면 무조건 안아주던 것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달라지면 된다. 더 늦게 아팠으면 회복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아직 삼십대니까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