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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Oct 19. 2023

하루에 8 천보씩 4년을 걸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살은 안 빠집니다

이제 걸으셔도 됩니다. 대신 조심하셔야 해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골반 내리고 걷는 것 꼭 기억하세요. 

 

걷지도 말라던 도수치료사에게서 이제 걸어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다. 드디어 걸어도 된다는 허락이라니! 하루에 8 천보 정도는 걷겠다는 결심으로 샤오미 미밴드도 샀다. 사실 나는 극강의 집순이. 집밖으로 나가는 걸 정말 싫어했다. 아무 일정도 없는 주말이면 집에 가만히 있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도 안 나갔다. 웬만하면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집에 가만히 있었다. 애들이 가끔 외갓집에 놀러 가서 집에 없으면 하루에 천 걸음도 걷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봤다. 집 밖은 위험했다. 집 안은 안전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걸을 때는 해외여행 갈 때뿐. 쇼핑도 싫어해서 웬만한 건 다 인터넷 쇼핑으로 마무리하는 사람이 나였다.      


살아야겠다는 절박감에 걷기 시작했다. 무릎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목도 아픈 내가 이제 와서 새로운 운동을 배운다며 무리할 수 없었다. 동네 공원을 자박자박 걷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조금씩 걸었다. 집 앞에 있는 대형마트를 놔두고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에 산책 삼아 갔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꽃집에 걸어서 갔다. 4일과 9일에 들어서는 재래시장 장날에 맞춰 걸어서 다녀왔다. 아이들 걷게 하겠다고 굳이 걸어서 20분 위치에 있는 음식점을 갔다. 애들이 좋아하는 빙수나 탕후루를 미끼로 동네 한 바퀴를 같이 돌기도 했다.      


하루에 8 천보씩 걸어온 지 4년이 넘어간다. 걸었을 뿐인데 제일 먼저 달라진 건 삶이 좀 부지런해졌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살림이 좀 편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침에 걷기 전에 로봇청소기가 청소하기 쉽게 집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들 먼저 정리한다. 아침마다 바쁘게 움직인다. 애들한테도 빨래며, 어젯밤 먹고 잔 간식, 컵, 쓰레기 등을 치우라며 잔소리 폭격을 시전 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집을 정리하고 나가는 건 어차피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을 때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니면 부산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 시끄럽다. 게다가 로봇청소기는 내가 보고 있으면 청소하는 모습이 답답하기 짝이 없어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다. 바로 눈앞에 쓰레기가 있는데 멀리 돌아서 치우는 융통성 없음에 화가 치밀지만, 내가 하는 청소가 아니기에 로봇청소기와 함께 거리를 두려 한다. 게다가 나는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니면 TV 소리도 제대로 안 들린다. 


누군가 청소하는데 나 혼자 어디 앉아서 쉬고 있기도 머쓱하다. 가전제품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노는 것 같아서 약간의 미안한 감정이 든달까. 그러니 로봇청소기, 세탁기, 식기세척기까지 한 번에 돌려 일 시켜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간다. 한번 걷고 오면 한 시간. 그동안 3대 가전 친구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다녀온 뒤의 내가 마무리 정도만 해놓으면 집안일이 완료된다. 어차피 내가 집에 있어도 딱히 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살아야겠다는 절실함으로 걸음수라도 채울 요량으로 동네를 걷고 시장을 본다.   

   

걷게 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어제 이래서 내가 화났었지, 그날은 내가 좀 심했었나. 오늘 저녁은 뭘 먹지. 오늘 비 온다고 했는데, 애 둘 다 아무도 우산 안 가져갔다. 등등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움직인다. 생각 중 하나 밟히는 것이 있으면 산책을 다녀와서 하나씩 해둔다. 아빠랑 싸우고 난 뒤에는 내가 먼저 전화하고, 잊고 있던 세금도 내고. 오랫동안 연락 못했던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본다. 그렇게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미루어둔 중요한 일들의 대부분이 해결되어 있었다. 특별히 신경 써서 뭘 하는 건 아닌데, 멍 때리며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마음속 복잡했던 고민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졌다. 속 시끄러울 일은 먼저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있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면 피해버렸다. 싸한 느낌은 과학이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쯤 해서 살이 빠진다거나 온몸의 부기가 빠진다는 얘기를 좀 해야 할 듯한데, 아쉽게도 그건 잘 모르겠다. 40분 이상 매일 걸으면 좀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보통 생활 걸음으로 이루어진 8 천보는 아이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생긴 것들이라 운동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매일 움직이는 덕택에 살이 더 찌지는 않았으며, 병원 갈 일도 줄었다. 예전에는 세상 모든 장기들이 다 부어있었다. 자잘한 염증도 많았다. 정형외과를 필두로 안과, 피부과, 산부인과 등등 가렵고 따갑고 아픈 몸 구석구석을 잡고 있었더랬다. 갑자기 싹 아프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하나씩 병원 갈 일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스스로가 확연히 느낄 정도로 건강하다. 진짜 아프지 않다는 느낌을 넘어서 ‘내가 건강하다’라는 느낌을 받은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아프지 않다의 경계에 있는 것만으로도 진짜 뿌듯하고 기뻤는데, 계단 하나를 넘어선 성취의 영역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무거운 화분을 드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었다. 내가 이걸 들고 나면 아프지 않을까. 높은 곳에 놓인 물건을 잡겠다고 뻗다가 일주일 내내 목이 결려서 목을 못 돌리고 살았던 경험도 있었던 나로서는 손을 높이 뻗는 행위 자체도 겁이 났다. 예전에는 여행 다녀오면 일주일을 아무것도 못하고 뻗어 있었는데, 요즘에는 물론 피곤하기는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다. 그냥 약간 무리한 평상시 정도의 느낌이랄까.      


말레이시아에서 3주 살기를 하고 밤비행기로 새벽 다섯 시에 입국했던 그날, 나는 딸과 함께 홍대에 갔다. 좋아하는 유튜버 팬카페가 열린다며 꼭 같이 가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날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딸에게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다. 진짜 죽을 것처럼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움직일만했다. 그날 하루동안 1만 5 천보 넘게 걷고 집으로 돌아와 정말 뻗어버리긴 했지만, 다음날 일어나 여행 짐 정리도 하고 캐리어도 닦는 등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다.     


단순히 걷기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인다는 건 삶에 큰 이벤트가 있어도 아프지 않는다는 것다. 그래서 평소에 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아프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범주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다치지 않고 오래도록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 살이 빠지고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나중 문제라고 본다. 몸에 좋은 것을 먹고,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붙는 옷을 입어도 몸에 태가 나고, 사람들에게 예뻐졌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나중의 얘기였다. 살 빼는 것이 목표였다면 더 열심히 달리고, 식이도 병행했었어야겠지만, 과자와 빵,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다.      


디스크가 터지고, 남편과 주말마다 30분씩 걷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집 근처에 있는 공원 한 바퀴만 걸어도 죽을 것 같았다. 숨이 헉헉거리며 차올랐고, 빨리 걷는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너무 빠르다며 제발 좀 천천히 걷자고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쟤를 어쩌나’ 싶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러다가 좋아질까 싶긴 했다고 말이다. 


늘 골골골 대며 힘들어했던 내가 최근에는 동네 친구를 이끌고 검단산을 다녀왔다. 힘들다고 지친 친구를 토닥이며 검단산 정상에 올라서 막걸리도 먹였다. 내가 누군가를 운동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평지를 30분 이상 걸으면 힘들다고 금세 지쳐버리고, 등산한 지 5분 만에 식은땀으로 하얗게 김이 난 상태로 걷던 나였는데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튼튼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신이 났다. 나의 마흔은 스물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 그리고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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