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면, 자식에 대해 이것 하나만은 꼭 시키고 싶다거나 이건 하지 말아야지 하는 식의 뭔가가 생긴다. 예를 들면, 부모의 강요로 인해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질린 케이스는 애들 공부를 억지로 시키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대학입시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전략으로 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부모가 학원을 그만두게 하질 못해서 애가 학원 그만두겠다고 하면 무조건 그만두게 시키겠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하도 부모가 쉽게 포기를 하게 해서 자기 자식은 절대 포기를 가르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골골골 거리면서 아프게 살아온 것이 인생에 가장 큰 후회였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 무조건 운동을 잘하게 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아이스하키는 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이들이 아이스하키를 하기 전, 나는 운전하는 걸 엄청 무서워했다. 물론 못하기도 했다. 거리 감각과 방향감각이 없어서 후진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도망가기 바빴다. 집 앞 주차장에서 주차를 못해서 동네 언니가 주차해 주고 갈 정도였다. 주차는 2칸 정도 여유 있는 곳에만 했다. 어느 장소에 가기 전에 주차는 편한지를 꼭 물었더랬다. 동네에 아이스하키 링크장이 생기면서 무료 체험을 받아볼 기회가 생겼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던 4년 전, 내 첫 질문도 이거였다.
“링크장 주차 편해?”
“응, 완전.”
그 말에 시작했다. 아이스하키는 주 2회 1년 다니겠다고 보장을 해주면 80만 원 정도 되는 장비를 지원해 준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고 나서도 아이스하키 단장님께 종종 이런 말을 남겼다.
“단장님, 저 사실 자신 없어요.”
“뭐가요, 어머니?”
“저는 제가 라이드해서 했던 사교육 중에 6개월 이상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운전을 진짜 못하거든요.”
“아이고, 어머니. 할 수 있어요. 애들이 재밌어서 못 그만둬요. 저희들끼리는 아이스하키처럼 중독성 강한 운동이 없다고 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대형쇼핑몰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만 갈 수 있었던 내가 아이들 아이스하키 게임을 위해 분당과 광교, 목동까지 운전하게 되었다. 아이스하키는 무서웠다. 진짜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다녀오면 아이들은 너무 재밌었다고 하고, 대회 나갔다 오면 또 거기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저변이 늘어났다. 아이들 아이스하키가 늘었다기 보다도 내 운전 실력이 훨씬 더 빨리 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이들 대회 시간에 맞춰야 하니 더 부지런해졌고, 아이들 운동하기 전에 배고플까 봐 간식 준비하는 스킬과 순발력이 늘었다. 절대 하지 않던 밤 운전과 비 오는 날 운전까지 하게 되었다.
아이스하키 때문에 멀리 운전이라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나 스스로에게 감탄했다. ‘와, 내가 자식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고?’ ‘와, 내가 이렇게까지 운전해서 자식들 운동시키러 간다고?’ 놀랍고 또 놀라울 일이었다. 밤 9시에 연습게임을 하러 판교를 가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이스하키 대회 참석을 위해 목동을 가고, 하얗게 내리는 비를 뚫고 광교를 갔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힘이 되었다. 그나저나 이 모든 걸 일상처럼 해내시는 전국의 하키맘 & 대디분들. 존경합니다. 역시 잘하는 아이들 옆에는 엄청나게 서포트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아이스하키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칠 때는 아이스하키 아이템으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에 응모도 할 정도였다. ‘이렇게 재밌는 운동, 여러분 꼭 한번 해보세요.’ 하는 마음이었다. 무섭지 않아요. 위험하지 않아요. 헤치지 않아요.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그러면서 나도 아이들을 따라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500만 원을 주었다. 그냥 흐지부지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뭘 하면 좋을까. 뭔가 남는 일을 하고 싶었다. 평소 같았다면 여행계획을 짰을 것이다. 기억에 오래 남는 체험이야말로 돈 이상의 가치니까. 이상하게도 이번만은 왠지 뭔가 아이템을 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프로젝트 비용으로 써야 가치 있게 느껴진달까. 명품백이나 비싼 주얼리 같은 것보다도 골프채를 사거나 뭔가 운동 장비를 사서 남겨야 그 일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는 강렬한 기분이 나를 압도했다. 뭘 할까 고민하던 시점에 아이들 아이스하키 같이 하는 엄마 한 명이 링크장 귀퉁이에 서 있는 내게 ‘성인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라며 말을 걸어왔다. 너무 재미있다고, 체험 한번 해보라며 권했다. 내게 체험을 권한 엄마는 곱디고운 사람이었다. 아이스하키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정도로 부드럽고 우아한 재질의 사람이었다.
아이스하키는 아이들이 2년 정도 계속하고 있는 운동이긴 한데 워낙 과격해 보여서 생각도 안 해봤던 아이템이었다. 쿵쿵 세게 부딪히고, 넘어지고, 엄청 빨리 움직이는 데에 반해 아이들의 부상은 적어서 신기하던 찰나이기도 했다.
“안 아파요?”
“진짜 신기한데, 안 아파요.”
“저 예전에 디스크 터진 적도 있고, 운동신경도 없어서 운동 진짜 못하는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장비가 있어서 안 아파요. 무릎보호대가 정말 폭. 신. 폭. 신. 해요. 이번 주에 저희 남편 안 오는데 저희 남편 장비 빌려드릴 테니까 체험 한번 해보세요.”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한 아이스하키 체험은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장비를 착용해서 그런지 아프지도 않았고,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나의 허영심도 채워주었다. 뭐야, 골프보다 훨씬 재밌잖아. 골프보다 싸고, 80분 동안 신나게 얼음 위를 달리고 나면 온몸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체험 한번 하고 바로 장비 구매하고 등록했다. 엄마 여성회원 2호였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고 세상이 조금 달라졌다. 무섭게만 느껴지고 뭔가를 하려면 겁이 덜컥 나곤 했는데, 파이팅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김혼비 작가가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 달라진 점으로 ‘좀 더 잘 싸우게 되었다’라고 대답했을 때가 공감이 갔다. 예전에는 문제가 생겨도 그냥 피하곤 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내가 참고 말지 했다. 최근에는 오전 7시쯤 한적한 동네 공원을 걷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하나가 내게 다가와 ‘어흥’ 하고 갔더란다. 영 이상한 느낌이 들어 못 본 척하고 도망갔는데, 이 일이 두고두고 열패감처럼 느껴졌다. 다시 한번 그 미친놈을 만나면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고 ‘야 이 shake it, 뭐래는 거야.’라고 한마디 해줬을 텐데 그때는 세상의 미친놈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다. 난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데 피지컬에 비해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화요일 저녁이면 아이들 야식까지 깔끔하게 먹여놓고 집을 나섰다. 복장은 단순하다. 까만색 쫄쫄이에 형광색 양말을 입는다. 쫄쫄이를 입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엉덩이가 너무나 부담스러우니 타인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엉덩이를 덮는 잠바 떼기 하나는 필수. 차로 5분 정도 걸리는 링크장에 순식간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나처럼 쫄쫄이를 입은 군단들이 갑옷처럼 아이스하키 장비를 걸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다. 다치는 것이 무섭다. 반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스케이트를 타고 멈추지 못한다. 스케이트를 타는 속도가 무척 느리다. 크로스오버를 하지 못한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잘 탄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나의 속도로 아이스하키를 할 것이고, 내가 하는 박자로 천천히 해내가고 싶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고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 더 깜짝 놀랐다. 너는 원래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아이스하키라는 과격한 운동을 직접 한다니 다들 놀라운 모양이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이런 것이다. 나는 카바나에 누워 맥주를 마시고 있고, 남편과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잠깐 같이 놀고, 오래도록 혼자 지켜본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놀고, 그 이상의 범주에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이 충분히 몰려온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운동능력치가 내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너무 빠르게 찾아왔다. 분명히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그저 내가 아이들 장비를 챙기고 잘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그걸 알게 된 시작은 스키였다. 당시 9살이던 둘째의 스키가 갑자기 너무 빨라져 버렸다. 분명히 나보다 너무 느려서 내가 한참 동안 더 기다려야만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달리지 않으면 안 되어버렸다. 내가 스키를 더 빨리 타려면 근력이나 몸을 쓸 줄 알아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꾸준히 필라테스를 하면서 디스크의 위험에서는 무사히 탈출했으나 운동을 잘하는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때 찾은 것이 아이스하키였다. 아이들과 잘 놀고 싶어서, 칠십이 넘어서도 같이 아이들과 운동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였다. 남과 부딪히는 걸 정말 싫어하는 내가 누군가와 안전하게 부딪혀 볼 수 있다면 더 늙기 전인 지금 뿐인 것만 같아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딸과 함께 아이스하키 게임도 같이 뛰어보고, 아들과 함께 패밀리 하키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었다. 항상 저 멀리 관객석에 앉아 추위에 덜덜 떨면서 애들 뛰는 것만 보다가 링크장 안에서 보는 아이들은 낯설었다. 아니, 너무 빨라서 따라잡을 수도 없었다. 왜 매번 애들이 느리다고, 애들이 잘하지 못한다고 뭐라고 했을까. 더 빨리 달리라고, 도대체 퍽을 보고는 있기는 하느냐며 왜 소리를 질러댔을까. 내가 말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은 열심히 잘 타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운동을 하고 나서 재밌다고 느끼면 그만인데, 내가 아이스하키에 들인 돈과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온갖 아이스하키 장비가 거실을 뒤덮고 있으면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현타가 물밀 듯 밀어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이스하키를 정말 못한다. 그리고 가기 전까지도 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내가 없으면 애들이 유튜브 보고, 게임하며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다 잘 텐데, 혹시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걱정이 앞을 가린다. 그러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이 정도도 못하면 의미 없다는 생각에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간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스하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엄마, 나 골프에 집중하고 싶어. 아이스하키는 그만하면 안 될까?
우리 가족과 아이스하키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딸이 대학생 되어서도 아이스하키만은 끝까지 할 것 같아서 내 장비도 그냥 미친척하고 질렀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아이스하키에 식어버린걸 보니 내가 다 헛헛하다. 나중에 언젠가 다시 아이스하키가 생각나는 시절이 있겠지. 너희랑 같이 하려고 애쓰는 엄마도 여기까지만 할게. 사실 엄마도 아이스하키가 엄청 무서웠어. 너네한테 안 들키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던 거야. 여기까지 올려둔 체력이 아깝고 혹시나 다칠까 봐 겁도 많이 났어. 그래도 네 덕분에 겁쟁이 엄마가 여기까지 성장했다. 몸이 건강해진 것보다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가 났달까. 고맙다, 아들딸. 엄마가 아이스하키 덕분에 더 행복했어. 그리고 진짜 많이 달라졌어. 운동은 너희가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덕분에 가장 많이 성장한 건 나야.
그나저나 집에 한가득 쌓여 있는 아이스하키 장비는 어쩌지. 당근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