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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Oct 19. 2023

세상에서 가장 예쁜 하객이 되고 싶어요

나는 집순이었다. 20대에도 집에서 TV 보면서 라면 먹는 걸 가장 좋아했다. 산 옆에 살아서 집 앞은 등산객들이 오고 갔지만 늘 남의 얘기였다. 학교와 회사를 다니는 것 외에는 한없이 늘어져 있었다. 가끔 아빠가 같이 등산 가면 막걸리 사준다는 얘기에 꼬드김을 당해 가는 정도랄까.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누가 술 사준다고 하면 잘 따라나서는 타입이었다. 술 마실 때를 제외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서 보냈다. 그래서 등에 살이 많았다. 우연히 친구 등을 만져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훨씬 통통해 보였던 친구의 등에는 살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다들 어떻게 등에 살이 찰싹 붙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등 가운데로는 골짜기처럼 패어 있는 것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40년간 꾸준히 쌓아온 내 등살의 존재는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유독 더 도드라졌다.      


필라테스 주 2회 가고, 하루에 8 천보 정도 걷는 것으로 건강을 간신히 유지해 오던 어느 날이었다. 필라테스 선생님이 나를 보고 얘기했다.

“우리 목표를 만들어볼까요?”

“목표요? 어떤 거요?”

혜진님도 복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복근이요? 선생님, 저 마흔이에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만들어진걸 이제 와서 어떻게 만들어요? 매일 닭가슴살만 먹어요?”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먹는 건 그대로 드시고요. 주 3회 필라테스 오고, 집에서 조금씩만 운동 더 하시면 돼요. 그럼 정말 생겨요. 11자 복근은 쉽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럼 9월까지 만드는 걸로 할까요? 선생님 결혼식날 예뻐져서 가는 걸로요.”

“오, 좋은데요? 우리 6개월 동안 같이 만들어요.”     


그게 시작이었다. 선생님 결혼식 날, 예쁜 하객이 되어 가겠다던 결심. 왜 남의 결혼식을 디데이 삼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긴장이 되었다. 원피스를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불편하다는 이유로 못 입었더랬는데 이 기회에 살도 빼고, 좋아하는 옷도 실컷 입어야겠다 싶었다. 그래, 좋은 구실이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자주 만나니까 계속해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필라테스 주 3회를 시작했다. 사실 몇 년 전에도 운동 효과를 늘려보려고 필라테스 주 3회를 잠깐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주 3회 정도의 필라테스에 하루가 무너져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었다. 그래도 그동안 체력이 좀 붙었는지 이번에는 필라테스 주 3회를 해도 괜찮았다. 물론 필라테스하고 오면 늦잠 자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운동하는 50분 동안 겉으로 보기에 힘들어 보이는 자세는 몇 번 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우연히 자세가 제대로 들어가면 ‘우왁’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너무 아팠다.      


필라테스를 하고 집에 가려는데 선생님이 붙잡았다.

“이거 집에서 하시면 좋아요.”

“운동이요?”

“네, 이 동작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20번만 하세요. 인 앤 아웃이라고 하는데요. 이거 저도 하거든요. 매일 하면 정말 눈에 띄게 좋아져요.”

“진짜 복근 생기는 거예요?”

“그럼요. 그런데요. 공복에 하면 더 좋아요. 눈뜨자마자 하세요.”     


눈뜨자마자 복근 운동이라. 처음으로 집에서 운동을 가볍게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동안 선생님이 많은 운동법을 알려줬지만, 귓속까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었다. 집에서 운동한다고 하다가 더 아프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고, 어디에 힘을 주고 뭘 하라는데 그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만 남고 끝나버린 수업은 어딘지 모르게 찝찝했다. 늘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까먹기 일쑤였고, 가끔 선생님이 뭐 좀 해보라고 했는데 라는 생각으로 해보려고 하면 운동 방법과 순서도 잘 기억나지 않아 포기했다. 초등 아이 둘의 엄마는 늘 할 일이 넘쳐났다. 계속 발 동동 구르며 다니다 보면 이미 하루가 흘러가 있었다.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했다. 잊지 않으려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매트부터 폈다. 처음에는 배가 덜덜 떨릴 만큼 아팠다. 동작 하나하나 해내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그래도 뭐라도 하나씩 했다. 진짜 하기 싫은 날은 하나 하고 쉬고, 하나 하고 쉬고, 하나 하고 누워있기도 하고, 대충대충 스무 번을 겨우 채우기도 했다.    

  

“이 동작은 TV 보면서 누워 있을 때 하세요.”     

내가 필라테스하러 오는 날 말고는 매일같이 누워 있는 걸 아는 선생님이 또 자세 하나를 추가해 주었다. 하나씩 하나씩.      

“오늘은 세 개 알려 드릴 테니까 입맛대로 골라 드세요.”

“아니, 선생님. 여기가 아이스크림 가게예요? 무슨 운동을 골라 먹어요.”     


툴툴거리면서 했다. 진짜 하기 싫은 날에는 20번 해야 하는 거 10번만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의욕이 넘쳐서 30번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매일 했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매일 꾸준히 해내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사실 하루에 5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거 한다고 해서 뭐 달라지겠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짧은 동작만으로도 몸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까지 이런저런 운동 많이 알려드렸는데요. 4년 동안은 제가 아무리 말씀드려도 안 하시더니, 요즘은 운동하시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진작 하자고 할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니에요, 너무 빨리 말씀하셨으면 아마 도망갔을 거예요. 지금은 할만하니까 하는 거예요. 작년만 해도 집 인테리어하고 캐나다 간다고 정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비로소 때가 된 거죠. 제가 하고 싶은 때, 그리고 할 수 있는 때요.”     


아침저녁으로 5분 복근 운동을 시작한 지 6개월이 흘렀다. 놀랍게도 배에 가느다란 실금이 3줄 생겼다. 작고 소중한 내 실금 복근, 지켜! 마흔 넘어 처음 가져본 복근이라 작은 실금에도 마구 감동하고 감탄하게 된다. 자꾸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살펴봤다. 이리 봐도 있다. 저리 봐도 있다. 희미해서 착한 눈을 하고 봐야 겨우 보이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둥글었던 복근에 약간의 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 선생님 결혼식 날짜에 맞추어 겨우겨우 만들어냈다. 그리고 목표했던 몸무게도 만들었다. 예전에는 조금만 안 먹어도 바로 빠졌는데 요즘엔 아무리 안 먹어도 안 빠져서 스트레스받던 찰나였다. 진짜 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지방흡입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운동으로 조금이라도 몸을 만들 수 있어서 신이 났다.     


혜진님, 이러다가 복근 또 사라질 수 있어요.


“아니, 선생님 그러면 운동 대체 왜 해요? 안 하면 없어지는데, 시작부터 그냥 안 하는 게 나은 거 아녀요?”

“아니죠. 운동 안 하면 몸이 아픈 거 제일 잘 아시잖아요. 매일 조금씩 루틴처럼 하다가 복근이 사라지는 거 같으면 힘들게 운동 일주일 정도하면 다시 또 생겨요. 한번 만들어진 건 금방 다시 나오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드시고, 운동 제대로 하면 돼요. 너무 살을 빼야 한다고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즐겁게 하세요.” 

“선생님, 인스타그램에 보면 살 빼서 예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여요. 그런 거 보면 훨씬 더 많이 빼고 싶어요. 저 초등학교 때도 160cm에 50kg이었거든요. 성인이 돼서 50kg을 유지해 본 기간은 아마 1년도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지금 67kg에서 61kg까지 빠졌잖아요. 그러니까 욕심이 생겨요. 빠지고 있는 과정이니까 50kg대까지 가보고 싶어요.”

“충분히 만드실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혜진님 몸이 점점 건강해지고 있고, 몸이 달라지고 있는 건 누구보다도 제가 너무 많이 느끼고 있어요. 아이 둘 낳고도 복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신 회원님이세요. 그것도 디스크 터진 지 얼마 안돼서 저한테 운동하고 싶다고 오셨었잖아요. 처음에는 쉽고 단순한 동작들도 정말 힘들어하시면서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며 속상해하셨던 날들을 제가 알잖아요. 그리고 저는 인스타그램 믿지 않아요. 보정했을 수도 있고, 시술이나 약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요. 그건 진짜 자기 몸이 아니잖아요. 인스타그램에는 미인이 그렇게 많은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 아시죠? 그런 거예요.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 만든 내 몸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에요. 잠깐 그렇게 만들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고요. 극단적으로 물 안 먹고 만들 필요 없어요. 건강에도 좋지 않고요. 지금 너무 잘하고 계시니까요. 마음 급하게 먹지 마시고, 지금처럼 꾸준히 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잘하고 계세요.”     


사람마다 타고난 것들이 다른데 괜히 다른 사람들 사진 보면서 너무 부러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뻐지면 좋겠지만, 굳이 나다움을 잃어가면서까지 타인의 시선에 맞출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사실 나는 숫자에 집착이 굉장히 심한 편이었다. 예전에 다이어트할 때는 매일같이 몸무게를 재며 0.1kg에 울고 웃었다. 어제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몸무게가 대체 왜 이런 거지하며 좌절에 빠졌다. 뭘 먹으면 1kg이 훅 찌는 그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거의 안 먹기도 하고, 그러다 짜증 나서 폭식하기도 했다. 중심을 잡고 버틴다기보다는 이리저리 그날의 기분에 마음껏 휘둘리는 시간들이었다. 몸보다도 마음이 힘든 시기였다. 그걸 바꿔준 것이 아침저녁 5분 복근 운동이었다.     


계란 삶으려고 타이머 10분 해놓고 복근 운동 잠깐 하다 보면 아무리 중간에 누가 방해를 하더라도 10분을 넘지 않았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는지 하기 싫다는 마음보다도 되려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한 정도까지 가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그냥 하면 되는데 말이다. 잊어버릴 것 같으면 저녁에 하는 것 대신 낮에 TV 보면서 하기도 하고, 저녁에 TV 보면서 그냥 폼롤러로 몸을 문질문질대면서 매트 위에 누워있다. 삶 속에 운동이 들어와 앉은 듯하다. 진짜 왕초보 필라테스지만, 몸을 움직이고 나면 마음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근육이 조금씩 늘어나고 찢어지는 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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