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 imagine Oct 20. 2023

나도 수영을 배워야겠습니다

"수영 곧잘 하시는데 왜 하시려고 하세요?”
“애들이 저를 수영 못한다고 무시해요. 그래서 배워야겠어요.”     


수영 수업을 받으러 갔던 첫날이었다. 내가 유유히 평영 하는 걸 본 수영 강사가 무척 의아해했다. 나는 희한하게도 평영만 할 줄 안다. 30년 전에 동네수영장에서 6개월간 배웠던 네 개의 영법 중 평영 하나만 오롯이 살아남았다. 이제와 갑자기 마흔 넘어서 평영 밖에 못하는 나 자신이 조금 서글퍼졌달까. 아직은 평영으로 아이와 함께 수영 경주를 하면, 내가 이길 수 있는 수준이지만, 따라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판단이었다. 아직은 내가 첫째보다 키가 10cm는 더 커서 팔다리가 길지만, 곧 따라 잡힐 것만 같았다. 게다가 첫째는 자유형으로 나는 평영으로 함께 대결을 하게 되면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그래서 자유형이랑 배영, 접영도 멋지게 하고 싶어졌다. 엄마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게다가 둘째가 만 10세가 되면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다 같이 따고 싶은데 그전에 수영을 잘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사실은 바로 집 앞에 생기는 수영장이 오픈하면 다니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오픈이 미뤄지길래 그냥 집 근처를 포기하고 수영 등록을 바로 해버렸다.      

사실 집 앞 수영장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거라 가격이 저렴한 대신 꼼꼼하게 잡아줄 것 같지 않다는 점도 우려스럽기는 했다. 3개월 정도 소규모 그룹레슨으로 나를 제대로 봐준다면 금방 늘 것 같다는 자신도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올해 안에 네 개 영법을 모두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싶었다. 레슨을 위해 등록한 수영장은 원래 어린이 수영장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마음이 편했다. 예전에 아이 수영 때문에 상담하러 이미 와봤을 때는 거리가 12.5m 정도일 거라 예상했는데 길이가 25m나 되었다. 수영 배우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암튼 이유는 많았다. 끝도 없이 댈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내가 수영이 지금 당장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 개운한 몸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졌다는 것. 그래서 젖은 머리를 말리는 데에 40분 넘게 걸려서 아침에는 시간 아깝다는 이유로 머리도 안 감는 내가, 운전하는 걸 싫어해서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 다니는 내가 차를 타고 나가는 번거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수영이 배우고 싶어 졌다는 것이었다.      


수영을 잘하려면, 물의 리듬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해요. 

물의 리듬. 그동안 아이들과 워터파크나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물의 리듬일 것이다. 나와 수영이 함께 되었을 때 일치된 것 같은 합일의 느낌이 좋았다. 개운했다. 몸의 노폐물이 쏙 빠져나가며 수영장에 녹아내린 느낌이랄까. ‘우울은 수용성’이라 물에 다 녹는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수영하고 난 다음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너무 피곤해서 노곤해지는 기분과 헷갈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둘’에게 모두 수영을 가르치고, 가족여행으로 남편과 함께 수영장 있는 워터파크를 항상 가면서도 수영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에는 그렇게 수영을 배울 만큼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튜브, 구명조끼 등을 챙기며 물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그러하듯 내 수영에 신경 쓸 수 있는 시간은 사치였다. 그나마 둘째의 키가 130cm가 넘으면서 웬만한 워터파크 미끄럼틀을 탈 수 있게 되면서부터 아이들끼리 수영장에 있어도 크게 불안하지 않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 혼자 수영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주어졌다. 그럼에도 수영장에 있는 시간은 늘 정해져 있고, 많이 가봐야 1년에 서너 번 일 뿐인데 굳이 수영을 배울 필요도 없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아이들과 씨워킹을 하고, 스노클링을 하러 가는데 그곳에는 마침 손님이 우리 가족뿐이었다. 승무원은 20명이 넘는데 우리 가족만을 위한 VIP 투어가 이루어졌다. 다른 곳에서 씨워킹하러 갈 때는 전부 10분 남짓 보기 바빴는데 이번에는 진짜 토할 때까지 보여줄 작정인 듯했다. 씨워킹 시간이 20분 정도 넘어가자 이제 내 정신은 미치기 시작했다. 나는 충분히 본 것 같고, 충분히 재미있는데 다른 식구들은 올라갈 생각이 1도 없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며 올라가야겠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모두 즐거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귓가에 웅웅 소리가 익숙해지질 않았고, 답답한 공기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스노클링도 마찬가지였다. 가이드가 우리 가족 옆에 찰싹 붙어서 니모도 보여주고, 갈치, 대왕조개 등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해주었다. 스노클링도 30분이 넘어가자 슬슬 한계가 찾아왔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떠나는 스노클링은 너무나 환상적이었지만, 나의 몸 상태는 여기 까지라는 느낌이 대번에 들었다.      


“오빠, 난 갈래. 너무 힘들어.”     


아이들과 남편을 뒤로 한채 헤엄을 쳐서 바다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애들은 물고기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바다가 어색하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애들이랑 뭔가를 같이 했을 때 힘이 부친다는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코타키나발루의 숙소에는 50m 수영장이 있었다. 집에서 걸어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수영장의 존재는 20일 동안 18일을 수영하게 만들 만큼 유혹적이었다. 물론 아침저녁으로 3인분의 수영복을 빨고 말리고 걷느라 바빴지만, 이 모든 번거로움을 상쇄시킬 만큼 개운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매일 수영할 수 있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싶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나는 아이들에게 거의 화를 내지 않았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코타에서의 엄마는 엄청 착해.

처음에는 내가 밥을 안 하고, 학원 라이드를 안 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매일 수영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았다. 코타에 있는 동안 사춘기가 올랑말랑한 13살 딸아이도 내게 화를 내지 않았고, 갱년기가 올랑말랑한 40대의 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 해묵은 감정들이 물에 녹아 사라지듯 건강한 감정들만 남아 온 가족이 오래도록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회원님, 그런데 수영할 때 왜 숨을 내쉬지 않으세요?”

“네? 수영할 때 숨을 내쉬어야 돼요? 그냥 멈춰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숨을 내쉬지 않으면 수영을 할 수가 없어요. 저희가 50m 단거리 경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수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숨을 계속해서 내쉬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아시안게임 단거리 수영 선수처럼 무호흡으로 수영하고 계세요.”

“아, 전혀 몰랐어요.”

“처음 습관이 안 들면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음파에서 음을 길게 해보려고 해 보세요. 끊임없이 숨을 내쉬는 연습을 해야 더 오래 많이 할 수 있어요.”

“저는 제가 체력이 약해서 수영을 오래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녔네요.”

“제 생각에는 호흡의 문제인 것 같아요. 폼도 좋고 발차기도 제법 잘하시는데 한 번만 수영해도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이상했거든요. 물속을 보니까 숨을 하나도 안 내쉬고 계시더라고요. 숨을 많이 내뱉을 수 있어야 ‘파’하면서 숨을 많이 들이마실 수 있거든요. 한번 계속해보세요.”     


숨을 더 많이 쉬기 위해서는 숨을 더 많이 내뱉어야 한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필라테스하면서도 끝까지 숨을 내뱉으라고 하는데 끝까지 내뱉는 것이 너무 어려워 그저 숨을 멈춰버렸던 것 같다. 이해했으니 연습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씩 추가되는 수업에 그동안 내가 왜 수영을 못했는지 이유가 밝혀지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추석 때 친정식구들이 한데 모여 2022 아시안게임 수영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했다. 숨도 안 쉬고 미친 듯이 팔 돌리며 메달을 거머쥐는 수영선수들의 자태에 흠뻑 빠져버렸다. 나도 수영 잘하고 싶다. 나도 멋진 폼으로 수영하고 싶다. 단단한 몸을 가지고 수영하고 싶다. 복근, 파워, 호흡 등등 다 부러웠다. 멋진 턴으로 돌고 싶어졌다. 유연하게 몸을 꿈틀거리며 유영하고 싶다. 물의 리듬에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물의 파동에 감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숨 쉬듯 수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가도 수영장에서 머리 말리다가 팔 아파서 짜증이 난다. 어우씨, 머리 드럽게 안 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