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ㅠㅠ
첫째 초6, 둘째 초3이던 여름방학, 우리도 남들 다하는 영어 공부 해봐야 되지 않겠냐는 호기로움을 가지고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향했다. 3주 영어캠프로 시작했지만, 남편 없이 아이들과 우리 셋이서만 떠난 3주 해외살기 프로젝트였다. 아이들은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6시 40분쯤 학교로 떠났다.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학교는 7시 30분에 시작해 1시 50분에 학교가 끝났다. 학교를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지 학교 시간표가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 중간중간 아침 간식 먹는 시간, 점심 먹는 시간이 있을 정도였다. 3시쯤 집에 오면 골프 레슨이나 수영 레슨을 받고, 저녁 먹고 좀 쉬다가 잠들면 하루가 끝나는 매우 규칙적인 나날이었다.
나는 새벽 5시 30분에 같이 일어나 애들 좀 챙겨서 내보내고, 아침에 글 좀 쓰고, 필라테스 수업 다녀왔다가 근처 몰에서 한 시간 정도 걷고 점심 먹고 돌아와 아이들 골프, 수영 레슨을 따라다녔다. 애들 수영 배우고 있으면 옆에서 같이 수영하고, 골프 배우고 있으면 첫째 애만 따로 데리고 나가 파3를 하고 오는 식이었다. 영어로 수영 배우고, 영어로 골프 배우고, 영어로 스탠드업패들보드 배우고, 영어로 래프팅을 배웠다. 학교는 물론이고, 안팎으로 끊임없이 영어 자극이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같이 학교를 오가고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한국 학생들이 있었으나, 드라이버도 말레이시아 사람, 요리사도 말레이시아 사람, 보모도 말레이시아 사람으로 영어를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편이라는 점이 좋았다. 서툰 영어로 말해도 부담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이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해 주었다. 바빠서 냉정한 서구 국가들보다 훨씬 더 친근한 느낌이었다. 놀라웠던 것은 말레이시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잘했다. 이상한 악센트도 없었다. 길거리에서 영어로 말을 걸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창하게 대답해 주었다. 쇼핑을 마치고 계산을 할 때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곤 했다.
아이들 영어 캠프를 보내야겠다는 목적으로 왔던 코타키나발루였는데, 의외로 내 전지훈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할 일 없어서 집에서 매트 깔아놓고 운동하고, 걸을 곳이 없어서 쇼핑몰에서 운동복 쇼핑하면서 걷고, 점심 한 끼 거하게 제대로 먹고(거의 생맥주 두 잔씩 벌컥벌컥), 오후에는 콘도에 있는 50m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러닝을 했다. 아침엔 간단하게 계란을 삶아 먹고, 요구르트에 그래놀라를 먹었다. 저녁은 거의 안 먹었다.
콘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나가서 먹을 수도 없었다. 그랩잇(GRABEAT)으로 시켜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게다가 부엌에는 깨알 같이 조그마한 개미가 너무 많아서 뭘 사다 놓을 수조차 없었다. 개미를 피해 냉장고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음식은 먹고 싶지가 않았다. 이쯤 되자 이렇게 여기까지 온 김에 공복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즐겨보자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려웠던 18:6 간헐적 단식인 셈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운동밖에는 할 게 없어서 운동만 했다. 먹을 게 없어서 (어쩌면 먹고 싶은 게 없어서) 최소한만 먹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던 살들이 감자칼에 깎여 나가는 것처럼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목표는 11자 복근을 만드는 것이었다. 3월부터 필라테스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던 목표였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공복에 복근 운동 5분 정도 하고, 저녁에 자기 전에 5분 정도하고 주 3회 필라테스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응원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애들 밥해먹이고 라이드 하느라 바빠서 내 몸에 신경 쓸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코타키나발루에서는 나만 챙기면 되었다. 행복한 상황이었다. 아이들은 영어캠프 스케줄 따라 알아서 척척 잘 해내고 있었다.
3주가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3kg 정도가 빠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50g도 쉽지 않았던 일이었다. 뭔가 막혀있던 혈 하나가 뚫린 기분이었다. 눈에 뭔가 희미한 것들이 보이면서 운동이 더 재밌어졌다. 앞으로 운동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는 못했는데, 마흔이 넘어서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몸에 복근이 생긴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데, 확실한 건 작년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변화라는 것. 스쾃 하나도 제대로 못했던 내가 실금 같은 복근이어도 갖게 된 것만 해도 그렇다.
결국 코타키나발루는 아이들 영어 캠프가 아니었다. 내 운동캠프였고, 전지훈련이었다. 내가 달라지게 된 전환점이었다. 내 몸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애들 영어는 많이 안 늘었지만, 내 전지훈련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구든 늘었으니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효과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됐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