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아파봐서 하는 소리다
드디어 남편이 집에 왔다. 남편이 도착하자마 바로 119를 부를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핫팩을 내 배 위에 올려두며 잠시 보자고 했다. 아마 그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전혀 알 수 없었나 보다. 독립적이다 못해 이기적인 내가 출근길의 남편을 불렀다는 것은 급격한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한데도 갑자기 여유를 부리는듯한 그의 모습에 화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래, 바쁘디 바쁜 출근길에 어렵게 와준 건 정말 고맙지만 쌍욕이 절로 나오기 직전이었다.
“오빠, 핫팩 따위로 될 게 아니야. 빨리 119 불러. 나 진짜 심각해.”
수많은 병들과 함께 살기는 했지만, 지금껏 119를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를 낳으러 갈 때도 차 타고 우아하게 갔으면 갔을 뿐이었다. 이렇게 내가 119를 불러보나 싶어 허탈했다. 나는 지금 지옥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데 상냥하기 짝이 없는 남편의 119 전화가 내 화를 불렀다. 119를 부르면 전부 해결될 줄 알았으나 안타깝게도 내 굴욕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출동한 두 명의 119 대원은 전부 합쳐야 겨우 내 몸무게는 될 만큼 말랐다. 두 명의 119 대원이 나를 들것에 싣기 위해 엄청난 힘을 써야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졸지에 옆에 있던 남편까지 합세한 끝에야 비로소 종잇장처럼 얇아 보이는 들것에 겨우 실릴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제대로 알았다. 남편 없이 내가 혼자 119에 전화해서는 나는 결코 들것에 실리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들것에 누워 우아하게 구급차에 실리면 좋았으련만. 왜 우리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들 것이 온전히 실리기에 작은 것인가. 결국 디스크가 터져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내가 쭈그려야만 탑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으아아아악,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내 몸을 겨우 접었다. 빨리 문 닫아요. 나 죽기 전에 1층에 도착하고 싶어요. 나 진짜 아픈데 정말 이럴 거예요? 누구든 붙잡고 짜증 낼 시간도 없이 모든 고통을 참고 겨우 일단 쭈그리고 탑승했는데 그 와중에 윗집 사는 아줌마까지 만나버렸다. 누군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인간의 처절한 민낯과 병약한 동물로서의 치부까지 드러나버린 나는 그때부터 멘털을 놔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볼 테면 봐라. 에라. 처절함과 아픔 속에 속절없이 눈물은 계속 나고, 애들은 걱정되고, 지금의 내 꼴은 너무나 한심하고 그런 감정의 파도를 혼자 서핑하듯 넘나들고 있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처럼 들 것에 누워있는 내게 전등이 흔들리며 움직였다. 아, 그래서 응급실 장면에서는 항상 이 장면이 클리셰처럼 나오는구나. 생명에 위험은 없지만, 움직일 수 없는 끔찍한 병을 가진 나는 응급실 베드에 다급하게 옮겨졌다. D응급실의 처방은 근육이완 주사였다. 근육이완? 이토록 우아한 이름의 링거라니. 생명과 전혀 조금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병명의 처방만으로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 그리고 아직 잊지 않았으려나. 이것으로 내 문제는 절대 해결된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지금까지 있는 힘을 다해 겨우 참았으나 거의 한계에 임박한 내 방광은 마지막을 앞두고 미친 듯이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자, 이제 여기서 용기를 내야 한다. 이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걸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지금 당장 누구든 불러야 한다. 자, 힘을 내. 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용사여, 어서 마지막 용기를 내야 한다.
“저, 선생님.”
“네? 무슨 일이시죠?”
저 소변줄 좀 꽂아주실 수 있을까요?
“네? 뭐라고요?”
(진짜 이걸 또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한다니 수치심에 눈물이 날뻔했다.)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어서요. 소변줄 좀 꽂아주세요.”
(남편은 그제야 내가 정말 위험에 처했다는 걸 감지하고 ‘소변줄 좀 꽂아주세요.’를 랩처럼 같이 더블링을 쳐주었다. 닥쳐. 이 정도는 나도 혼자 말할 수 있어. 딱 간호사만 듣고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단 말이야. 그만)
네? 소변줄이요?
(이봐요, 간호사 양반. 이렇게 되묻는 와중에 제 방광은 터지기 직전이라고요. 제발 그냥 꽂아줘요. 꽂아줘요. 제발)
“네, 지금 빨리요. 저 정말 급해요.”
몸을 못 움직이는 이유로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가 하는 소리가 ‘소변줄 꽂아주세요’라는 요청이라니 내가 간호사였더라도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 되묻고 소변줄을 꽂아주세요.
순간 간호사 얼굴에 물음표가 열 개쯤 떠 있는 게 보였다. 간호사는 어정쩡한 자세로 소변줄을 주섬주섬 챙겨 내 몸에 꽂아주었다. 내 방광 속 오줌들은 잠깐 소변줄과 낯을 가렸지만 이내 그럴새 없다는 자세로 세차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우여곡절 끝에 꽂은 소변줄이 내 몸에서 튕겨나가 응급실 전체를 오줌바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우리 집 거실에서 쌌으면 나 혼자 치우면 되는데, 병원에서 이러면 ‘응급실 오줌녀’로 실명과 함께 인터넷에 떠다니는 건 아닐까 우려스러웠다. 물음표로 가득했던 간호사의 얼굴이 느낌표로 바뀌는 데에는 불과 10초면 충분했다.
“어머, 정말 오래 참으셨나 봐요.”라는 멘트를 필두로 “어머, 어머.”라는 추임새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사실 간호사의 ‘어머’라는 추임새 소리는 정말 작았다. 평상시였다면 전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내 마음속에 수치심이라는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더 수치스러운 건 오줌이 끊임없이 나와 계속해서 간호사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안 끝나셨어요?”
(그만 물어봐요. 이제 나도 내 몸 모르겠으니까.)
“그런가 본데요?”
(조금 살만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3인칭으로 고급스럽게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던 걸 보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응급실의 오줌통이 넘치기 직전에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오줌 열 방울 정도는 튀어 내 오래된 파자마에 흩뿌렸으나 그 정도 치욕은 응급실 오줌녀가 될뻔한 사연에 비하면 깃털처럼 가벼웠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몸에 가득 차 있던 오줌이 줄어들고 나니 제법 여유가 돌아왔다. 역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사람은 다른 법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여기에 근육이완주사를 맞고 30분 정도 지나니 온몸이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을 스스로 꿈틀거릴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훌륭한 기술이었나. 아이가 백일쯤 되었을 때 뒤집는다고 동네사람들 다 불러서 구경했던 것 같은 감격이었다. 119 들것에서 응급실 베드로 옮겨야 할 때 꿈틀거리지 못해 1mm씩 (세상 부끄럽게) 천천히 움직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진전이었다. 이것이 의술의 힘이로구나. 링거 한방이면 사지를 못쓰는 30대 여성도 번쩍 일어나게 하는구나. 현대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의 발달에 끊임없는 찬사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전부 내가 일단 쉬를 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윽!’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 지 2시간 만에 나는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에 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렇게 문명인답게 혼자 변기에 앉아서 쉬를 하는 나를 보며 ‘대단하다’라며 스스로를 추켜세워주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쉬하는 것이 이렇게 엄청난 교양이고 성취인 줄 몰랐다. 그때부터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디스크가 터져서 몸을 못 움직인 것이었다는 병명을 확인받고 난 후부터 욕실은 공포의 공간이 되었다. 혼자 욕실에서 머리를 감는 일은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물이 많아 미끄럽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타일을 잘못 밟아 넘어져서 터진데 또 터질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아픈 몸을 구부리고 자유자재로 샴푸를 덜어 머리에 넣고 비비는 것에는 근육이 필요했다. 팔 들 힘도 없으니 시원하게 벅벅 긁을 수 있었던 것은 한참 지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벗고 있는 비루한 내 몸을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독립된 공간에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서 뿌듯했다. 혼자 화장실에서 똥과 오줌을 마음껏 쌀 수 있었고, 내 똥 냄새는 나만 맡을 수 있는 우아함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했다. 밖에 나가기 전에 로션과 선크림을 발라 조금이라도 단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희대의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었다. 진심을 다해 다짐했다. 다시는 이렇게 몸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운동을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볼 수 없는 상태로 방치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사람이 운동 좀 못할 수도 있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운동은 생존과 연결된 문제였다.
그때 내 목표는 하나였다. 아프지 말자. 애매하게 아프다 말다 하는 상태에서 올라가 ‘아프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자. 그러기 위해 내 몸을 잘 보살펴야겠다고 결심했다. 시간에 쫓겨 대충 먹지 않고, 일이 바쁘다고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내 몸을 잘 봐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야겠다고 여겼다. 그래야 아직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랑하는 아이들과 더 오래도록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