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의 아내, 나로 살아가는 법>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남편은 창업을 했다.
사실, 남편은 결혼하기 전부터 원래 창업이 목표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던 가장 큰 계기도 결혼 전 남편이 얘기한 창업에 대한 꿈 때문이기도 했다. ‘수소주유소를 창업해서 내게 뚜껑 열리는 차를 사주겠다’라는 남편의 야심이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당시 남편은 신촌에 있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는 종로에 있는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둘의 직장과 전혀 관계없는 경기도에 신혼집을 얻게 되면서 남편은 종로까지 출퇴근을 책임지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 불현듯 한 달 만에 갑자기 사표를 내고 경기도의 집에서 혼자 사업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남편의 한 손엔 원대한 계획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한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말없이 집의 대출 이자를 떠안았고, 공과금을 비롯한 각종 생활비를 떠안았다. 지금이었다면 아마 어떤 미친 짓을 하면서까지 반대도 마다하지 않았겠지만, 신혼이었던 나는 말없이 남편의 손을 잡았다.
사랑했고, 믿었고,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가장 자주 찾아온 감정은 ‘모르는 채로 함께 있는 것’이었다. 남편이 사업을 준비하던 그 몇 달, 우리 부부는 쉬지 않고 대화를 했다. 보통은 집에서 혼자 사업계획서를 쓰며 외로움에 사무친 남편이 내게 이런저런 창업 아이디어는 어떻냐고 물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1시간 30분 넘게 걸려 잔뜩 지쳐 집에 도착한 나는 ‘재미있네’, ‘흥미롭네’, ‘그게 되겠어’ 세 가지 용어를 돌려 써가며 투자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남편의 사업계획서 중에 진심으로 잘 될 것 같은 아이디어 같아 보이는 게 있으면, 뚜껑 열리는 차가 우리 집 주차장까지 들어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헛된 희망은 금세 사라졌다.
그게 우리의 신혼이었고, 회사의 태동기였다.
친구들이 신혼여행 사진을 올릴 때, 나는 세무법인에 보낼 부가세 신고를 위한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었다. 친구가 명품백을 샀다고 SNS에 올리면, 나는 여행사 출장 다니면서 이미 많이 샀다며 정신승리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을 ‘로맨틱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말은 조금 비겁한 것 같다.
나는 사실 많이 두려웠고, 서툴렀고, 외로웠다. 사랑만으로는 감당 안 되는 수많은 현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시험했다. 대체 결혼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창업은 무엇인가 라는 무정형의 질문 속에 나를 던지며 내가 속물은 아닌지에 대해 따져 묻곤 했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나는 남편의 아내이자 회사의 직원이었고, 불안정한 삶의 매니저가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없었지만, 맡지 않을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결혼과 창업에 공통점이 있다면, 아무도 모른다가 아닐까. 20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한마디. “잘 버텼다”는 말뿐이다.
‘그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는 참 기특하고 고맙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라도 꺼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