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회사 안의 아내, 집 안의 사장

<창업가의 아내, 나로 살아가는 법>

by 작가 혜진

나는 남편 회사에서 '홍보팀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회사에 필요한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IT 회사의 필수직책인 디자인, 기획, 개발을 뺀 나머지가 다 내 몫이었다. 세금 신고부터 채용 공고, 거래처 관리, 매출 보고서 정리, 입금 확인, 월급 송금, 블로그 포스팅, 사내 복지를 위한 과자 구매, MT 기획까지. '내 일'은 없었다. 그냥 '비는 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전부 나였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내가 작은 실수라도 하나 하면 남편은 가차 없이 날 질책했다. 밖에서 일이 안 풀린 날이면, 그 감정을 집까지 끌고 와서 나에게 풀었다. 나는 그 감정을 받아야만 했다. 직원은 없고, 가족은 버릴 수 없으니까. 처음엔 그래도 참았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 회사니까, 같이 키우는 거니까.”


하지만 나중엔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내 일이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그 시절의 나는 매일 우리가 함께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서고 나면, 결국 이 모든 건 남편의 공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표님의 철학’, ‘대표님의 선택’ 일뿐이었다. 그 안에 내가 채운 디테일과 땀은 없었다. 나는 조용한 실행자였고, 그림자였고, 때로는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고마웠어. 네 덕에 내가 열심히 할 수 있었어.”라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돌아오는 건 늘 "그걸 왜 그렇게 해?", "이건 좀 아닌데?" 같은 말들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가 했던 일들은, 남편에게는 '고마워할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보였다는 걸. 회사에서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직업인답게 사소한 감정은 빼고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함께 일한다는 것이 그저 돈 받고 하는 일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처음부터 남편과 함께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혼이어서 서로에 대해 몰랐다. 신혼이었기에 서로에게 기대와 실망이 많았다. 그리고 남편이 창업을 했다면, 당연히 아내가 함께 남편의 창업을 도와야만 한다고 잘못 믿고 있었다. 남편이 창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 스스로가 남편의 창업에 지나치게 몰입했고, 남편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서운함은 점점 더 커졌다. 나는 남편의 가족이었고, 동료였고, 애인이었고, 직원이었다. 서서히 방전되어 가는 배터리 같았던 20대의 나를 돌이켜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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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참 어렸다. 가족이니까 알아줄 거라고, 가족이니까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나를 사랑하는 남편이 나의 부족함까지도 전부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던 여행업계를 떠나 남편의 일이라는 이유로 함께 일하고 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감당한 감정과 노동에는 이름이 있어야 했다는 걸. 그 이름은 ‘고마움’이었고, ‘존중’이었고, 때로는 ‘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름을 알아차리기엔, 남편 역시도 너무 어렸고, 여유가 없었고,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갓 서른이 넘은 남편이 가족의 가장이자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 살아가기에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그런 감정들을 서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창업도, 결혼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의욕만 넘치는 무지한 신혼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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