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배운 방식

<창업가의 아내, 나로 살아가는 법>

by 작가 혜진

창업 초기에 ‘돈’은 늘 없거나, 겨우 있는 것이었다. 얼마 안 되는 거래처 입금일은 조금씩 미뤄지고, 직원 월급은 정해진 날짜에 나가야 했다. 신용카드는 마감일이 채 되기도 전에 한도초과가 되었다며 문자가 왔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겨우 메꿔 직원들 월급을 보낼 수 있었다. 월급일을 미루지 않는 것은 초보 창업가 아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이건 잠깐이야.”


남편은 그렇게 말했고, 나도 믿었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고 일 년 동안은 내게 생활비를 보내준 적이 없었다. 아마 창업하고 난 이후 수입이 없었으니 그랬겠지만, 그 일 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참고로 남편은 결혼한 지 일 년이 넘어서 지난 1년 치 생활비를 한꺼번에 내게 입금해 주었다.) 대체 결혼이란 무엇인가. 원래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들이 말이 많이 바뀐다고 하던데, 내 남편도 그런 부류 중 하나인가. 왜 같이 사는 집의 집 대출금 이자는 한 달에 이백만 원 겨우 벌고 있는 내가 내야 하는가. 아니, 하다못해 내 출퇴근을 책임지겠다는 이유로 경기도로 이사를 왔으면 그에 대한 사과나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결국 그의 창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입고 있었고, 알게 모르게 해결도 내가 해치워나가고 있었다. 나는 집안에서 ‘가정’을 지키고 있었고, 남편은 집 밖에서 ‘사업’을 지키고 있었다.


a-silhouette-of-a-woman-gazing-out-the-window--moo.jpg


근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늘 기다리는 쪽이지?”

돈은 단순한 계산표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이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존중’을 받고 있는가의 지표였다. 더 슬펐던 건, 돈 얘기를 남편과 꺼내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번 달 생활비가 입금되지 않아 빠듯한 상황이었는데, 남편에게 왜 입금하지 않았냐고 묻는 일조차 눈치가 보였다. 생활비를 보내달라는 요구 자체도 자존심이 상했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요구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괜히 당당하게 나서질 못했다. 내가 해결하면 되는데, 내가 왜 굳이 이렇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남편과의 대화는 내가 원하는 답을 얻는 것으로 끝나기보다는 나의 이기심과 생각 없음만 강조되는 슬픈 상황을 남기고는 했다.


“지금 이런 얘기 꺼내면 타이밍 안 좋다.”

“회사 힘들 때 왜 그런 말 해?”

그 말 앞에서 나는 또 조용해졌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은 내 얘기할 때가 아니야’라고.


하지만 그런 시간이 반복될수록, 내 마음엔 불만이 쌓여만 갔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창업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것까지 포기해 가면서는 못 살 것 같았다. 한 달에 다만 돈 백만 원을 벌더라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하고 싶었다. 창업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참고 살고 싶지만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편의 지인은 이런 나를 보고 이기적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남편의 회사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나를 잃어간다면 앞으로 나를 찾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까지 있었다.


그리고 함께 일하면 일할수록 남편과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갔다. 서로 말하고 싶은 사소한 이야기들이 회사 일들로 변질되면서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대표로 군림하려고 하는 그의 태도에 신물이 났다. 대체 왜 그는 집에서조차 왜 대표이고 싶은 건가. 왜 대표질을 나한테 못해서 안달인가. 진절머리가 났다.

남편의 회사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잃어갔다.

keyword
이전 03화3화. 회사 안의 아내, 집 안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