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이 키우기, 회사 키우기

<창업가의 아내, 나로 살아가는 법>

by 작가 혜진


남편 회사에서 나왔다.

다시는 이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남편이 하는 사업 내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아주 작고 설레는 결심을 했다. 오래전에 알고 지낸 여행작가님이 운영하는 여행 콘텐츠 회사에 들어가기로. 비록 규모는 작고, 급여도 많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에게 보란 듯이 잘 해내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내 뜻만큼 흘러주지 않았다. 첫째 딸이 겨우 돌을 지난 시기였다.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4시간’뿐. 그 시간에 나는 미팅도 해야 했고, 블로그 콘텐츠도 기획해야 했고, 보도자료를 위한 자료도 모으고, 기자분들과 전화통화도 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집에서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조용한 집안에서 혼자 전투처럼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금방 엄마의 빈자리를 알아챘다. 자다 깨어 방문을 열고 나와 울던 날도 있었고, 엄마의 빈자리에 서러운지, 어린 마음에 말을 하지 않고 내 옆에 한껏 토라진 얼굴로 의자 위에 축 늘어져 일하는 나를 방해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땐, 조금만 더 하면 끝낼 수 있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아이가 울고 있는 현실이 겹쳐져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냈다.


“왜 안 자? 엄마도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미워졌다. 너무도 작고 소중한 아이에게 함부로 화를 낸 나 자신이 인간쓰레기처럼 느껴졌다. 하원 후에도 일이 끝나지 않은 날이면 아이에게 뽀로로를 잔뜩 틀어주고,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시간이 너무 잦다 보니, 어느새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는 아이’가 내 딸이 되었다.


“어머니, 아이가 어머니를 계속 찾아요.”


어린이집 선생님의 사소한 한마디에 내 마음은 늘 무너져 내렸다.


그날의 나는,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세상이 나를 향해 질책하는 느낌을 받았다.

“일이 뭐라고, 너는 엄마가 되는 것보다 어떻게 일을 택할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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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내 안에 가시처럼 숨어서 나를 찔렀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죄책감 속에 있었다. 일하는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은 마음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사이에서 매일 흔들렸다. 일도, 육아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 같았다. 친정부모님도 “돈 한 푼이 중요한 게 아니야. 애를 제대로 키우는 게 더 중요하지”라며 일하는 나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일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뭐라도 쏟아내고 싶은 나 자신에 대한 욕구로 미칠 것만 같았다. 남편은 본인의 사업만 챙기느라 너무 바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저 사소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그런 일들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열심히 공부를 하고, 4년제 대학교를 나오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취업하겠다고 그렇게 노력했던 걸까. 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그간의 노력을 없앨 수는 없었다. 그러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었고,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딸을 낳은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되는 것보다 일이 좋아서 일을 택했다는 말은 전혀 잘못되었다. 그때의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엄마가 될 수 없다고 느낄 정도였다. 딸만 바라보는 엄마가 되려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나도 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었고, 그걸 육아라는 이유 때문에 희생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딸이 나중에 커서 그런 암미가 되었으면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엄마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딸에게 빛나는 엄마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참 용감했다. 무너지지 않고, 매일 새벽을 버티며, 작은 자존감을 한 줌이라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게 10년을 일한 덕분에 역류성식도염, 추간판 탈출증, 일자목, 손목 염좌, 각종 염증 등을 달고 사는 만성 면역력 약화로 가득한 40대를 맞게 되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는 엄마가 된다는 것은 항상 뭔가 하나를 덜어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엄마가 되어서도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건 내 아이에게 가장 오래 남는 메시지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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