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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Aug 02. 2020

미니멀라이프, 일 년 후

나를 나답게 하는 길을 찾다

미니멀라이프를 한 지 일 년이 흘렀다. 매일 3개씩 버리고, 매일 가방을 정리하는 단순한 루틴이 이어졌다. 작은 실천이 만든 오늘이다.


나는 살림이 정말 싫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는 모든 과정이 지루하고 아까웠다. 아이 ‘둘’ 엄마라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대충 해치웠다. 대충 치워놓고, 대충 빨래 돌리고, 대충 먹었다.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버티고 버텼다. 딱 죽지 못할 만큼만 살았다. 재택근무하면서 아이 직접 키우느라 너무 바쁘다고, 맨날 아이들과 밖에서 노느라 시간이 없다면서 늘 수줍게 변명했다. 아마,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집도, 나도 쓰레기가 되겠구나 싶었다. 제대로 살고 싶었다. 남들 하는 만큼만, 딱 그만큼만......


그때부터 꾸준히 버렸다. 매일 나오는 영수증, 분리수거에서부터 창고, 서랍장, 옷장도 뒤졌다. 안 쓰는 물건은 팔거나 무료 나눔 했다.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 그냥 성실하게 버리기만 했다. 그리고 나면서 차츰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집이 깨끗해졌다


깨끗한 집은 누구나 좋아한다. 그러나 깨끗한 집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랬다. 나도 깨끗한 집을 좋아하지만, 깨끗한 집을 만들기 위해 내가 노력하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 깨끗해질 집을 위해 오랫동안 애쓰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면서 맞게 된 가장 큰 변화는 집 정리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매일 꾸준히 버리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쓰레기가 사라졌다. 새로운 물건을 사고 귀찮아서 창고에 치워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물건들이었다. 팔 물건은 팔고, 줄 물건은 주고, 버릴 물건은 버리고 나니, 집에 쓰지 않는 물건들이 사라졌다. 집에는 내 마음에 들고 항상 쓰는 물건만 남았다. 이걸 지키려고 남긴 물건은 조금이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코*아의 구이바다를 쓰기 위해 집에서 샤부샤부를 해 먹고, 믹서기 안 버리려고 수박주스도 만들었다.


그렇게 버리는 습관이 몸에 붙자, 늘 습관적으로 정리하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미니멀해진 집은 매일같이 로봇청소기 두 대가 관리해준다. 5년 전에 샀던 로봇청소기의 수명이 다해 최근에 샤*미 2세대를 샀다. 다들 극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존보다 꼼꼼하고 깔끔하게 집먼지를 빨아들인다. 먼지가 없으니, 바닥의 찌든 때가 더 잘 보인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까만 발자국을 바닥에 만드는 것도 너무 거슬린다. 매일같이 닦아보려 했으나 실패다. 결국 에브*봇 엣지를 들였다. 하루에 2시간씩 바쁘게 돌며 청소하는 로봇청소기 덕분에 정갈해진 집을 가질 수 있었다.


남편이
달라졌다


최근에는 남편까지 미니멀라이프에 동참했다. 내가 계속해서 버리는 걸 일 년 정도 보니 영향을 받았나 보다. ‘집이 깨끗해지니 참 좋다’라고 말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았던 남편은 지난달에야 비로소 남편의 물건을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다. 창고에 쌓여만 있던 키보드, 리디북스 페이퍼, 캠핑용품, 애플 워치 1세대 등을 당근마켓에 팔았다. 남편이 사고 싶어 해서 샀다가 쓰지 않는 무거운 러그도 깔끔하게 팔았다. 남편 가전제품 팔아서 남긴 부수입이 쏠쏠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 번 쓰고 말 용품 사느라 바빴던 그였다. 택배박스째로 있다가 버려지는 물건도 종종 나왔다. 그랬던 그가 요즘에는 청소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12년 동안 한 번도 안 닦은 창문청소를 한다. 간식 먹고 난 뒤에는 정리해서 싱크대까지 가져다 둔다.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 아이들 먹으라고 죽도 챙겨주고, 아침이면 샌드위치도 만들어주었다. 집안일이라면 관심도 없고,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집이 넓어졌다


집에서 사용하는 공간이 무척 많아졌다. 전에는 침실과 거실, 부엌 조금 쓰는 일이 전부였다. 요즘에는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서 아이들 방도 활발하게 사용된다. 아침저녁으로 옷만 갈아입던 남편 방도 활기를 찾았다. 가끔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남편은 본인의 방에서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내게 필요한 물건만 있는 공간에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해진다. 누군가와 집에서 커피 마시는 일도 편안해졌고, 아이들 친구 데려다가 가볍게 밥 먹는 일도 잦아졌다. 일도 엄청 빨라지고, 집안일도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는 돌밥돌밥 신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집을 넓게 쓰기 시작하면서 개방감을 느낀다. 답답하게 느껴졌던 창고도 한결 훤해졌다. 쌓여 있던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만으로도 쾌적해졌다. 물건을 정리하고, 팔고, 버린 효과다.


쇼핑할 때
더욱 신중해졌다


물건을 많이 버려보니, 쇼핑이 더욱 신중해졌다. 블로그나 인스타 보면서 충동구매하는 일이 줄었다. 누가 공구한다 그러면 우르르 따라가서 막 사곤 했다. 단톡 방에 핫딜 떴다는 알림이 오면 또 샀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샀던 물건들은 모두 당근마켓 행이었다.


버리면서 이게 뭔가 싶었다. 팔면서도 아니다 싶은 순간이었다. 10만 원에 사서 3만 원에 팔면 나는 명백한 7만 원 손해다.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물건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기 위해 쓴 7만 원은 수업료로 치부하기에는 금액이 컸다. 그런 깨달음이 쌓이자, 소비가 좀 더 신중해졌다. 좀 더 나를 이해하고, 좀 더 내가 좋아하는 물건에 투자하기로 했다. 가비양에서 매번 같은 원두 받던 일을 중지하고, 다양한 카페에서 새로운 원두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취향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랄까. 전보다 더 다양한 원두를 고르고, 사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안 쓰는 물건을 열 살 첫째에게 직접 사진 찍고 당근 마켓에 올려 팔아보라고 했다. 금액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문구는 어떻게 쓸지 고민해보라고 했더니 멋진 해답을 찾아온다.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장난감도 팔고, 여자애들이 좋아할법한 소품도 골라왔다.

직접 번 돈을 용돈으로 주었더니, 부자가 되고 싶다며 커다란 저금통에 모으기 시작한다. 오천 원, 만원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싶다고 한다. 엄마에게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벌써부터 공간의 중요성을 알다니 대단하다 싶다.


나를 제법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 준다


매일 정해진 루틴에 따라 움직인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끼니를 챙기고, 한약과 영양제를 먹는다. 아이들이 아침 먹는 동안, 혼자만의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비 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기도 한다. 첫째가 온라인 클래스를 듣는 동안 화장실, 부엌, 유리창, 이불, 먼지 등등 돌아가며 가볍게 청소한다. 로봇청소기 2개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자료도 찾아보고, 제목도 고민하고, 맞춤법까지 꼼꼼하게 보고 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과 놀이터로 떠난다. 서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시간이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돌아온 아이들은 씻고, 저녁 먹고, 책 읽다가 잠에 든다.


별 것 아닌 평범한 일상이지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근사한 일도 없고, SNS에 올릴만한 멋진 장소도 아니지만 만족한다.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나의 성장까지 도모해나가는 나를 보며, 기특하고 대견하다. 오늘도 이렇게 성실하게 잘 해냈구나 하며 어깨를 톡톡 두드려준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일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가 튼튼해지고, 좀 더 나의 본질에 집중하게 되는 기분이다.


미니멀라이프 일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내게 가장 큰 선물을 전한 듯하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내가 완전히 새로워졌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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