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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Sep 26. 2020

오빠, 우린 무슨 사이야?

응! 마스크 벗은 사이

이렇게 사람들의 삶이 순식간에 달라진 일이 있었을까? 말로만 들은 4차 혁명이 코로나가 아닌가 싶을 때가 여러 번이다. 집에서 나갈 때면 마스크를 챙기고,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슬금슬금 피하게 된다. 코로나 초창기만 해도 외부에서는 코로나 감염이 낮다는 말에 산책하거나 놀이터에서 마스크를 벗는 일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사라졌다. 집 이외의 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2020년에 학교를 스무 번도 못 간 열 살인 첫째는 홀수 짝수로 수업을 진행하는 탓에 같은 반 친구들을 한꺼번에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올해 처음 같은 반이 된 친구들의 마스크 벗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급격히 줄었고,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부딪히고 겪을 수 있는 사건도 줄었다.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접하고, 온라인으로 대강 수업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 역시 그렇다. 이주일에 한 번은 만났던 같이 일하는 실장님은 2020년이 들어서 딱 한번 만났을 뿐이다.


앞으로 어쩌면 ‘마스크를 벗다’가 사생활을 공유하다는 뜻으로 쓰일지도 모르겠다.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 안심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에서만 마스크를 벗는 일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친근감의 척도를 나타내기 위해 ‘쌩얼을 보이다’ 혹은 ‘방귀를 트다’를 썼다면 여기에 ‘마스크를 벗다’가 추가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후대에서는 마스크가 달린 아이가 진화해서 나올 것이라든가 아가미 달린 호흡 형태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전혀 우습지 않은 우스갯소리도 종종 들린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울하다. 일곱 살 아들은 코로나가 얼른 끝나서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뛰어놀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 아들이 마스크를 벗고 놀았던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나중에 커서 아들의 아들에게 ‘아빠 어렸을 적에는 말이야. 마스크를 벗고 다녔단다.’라는 말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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