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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 imagine Nov 06. 2020

11월에는 자꾸 잠이 온다

맥주가 맛없어서 그런가?

맥주가 이제 예전처럼 맛있지 않다. 밤 일곱 시만 넘으면 맥주를 꼴깍거리며 삼키고, 마른안주들을 질겅이던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렇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끝무렵인 11월이 된 것이다.


11월이 되니 유독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어 첫째가 학교를 3일이나 가게 됐다. 해가 일찍 지고 추워지니 놀이터 갈 일도 줄어들었다. 카톡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일하다 보니 평상시에는 말할 일이 별로 없다. 아이들한테 잔소리할 때, 아침 준비할 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누군가 오프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대화 활동을 멈춘다. 혼잣말도 없다. 뭘 먹을까 속으로 생각한다. 뭘 살까 혼자 고민한다. 누군가와 긴밀한 대화를 나눌 일도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가끔 누군가와 나누는 오랜만의 대화가 가끔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날이 추워지고, 해가 빨리 지는 요즘에는 집 안으로 숨어든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과자 먹고, 책을 읽고, 혼자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아이들 손자국이 가득 나있는 유리창을 좀 닦아볼까 싶다가 그만둔다. 귀찮다. 둘째가 어린이집 특별활동으로 뽑아온 무로 뭔가 해볼까 하다가 검색마저 멈췄다. 이불을 둘둘 감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며 잠에 빠져든다. 얼마나 깊게 잠들었는지, 전화벨 소리를 아침 알람으로 착각하고 화들짝 깨버리기도 한다.


11월이 되면, 올해 처음 세웠던 계획을 훑어본다. 책 출간은 ‘나도 작가다’ 이벤트 당첨(http://www.podbbang.com/ch/1772869?e=23781847)으로 달성했고, 코로나19로 집밥만 했던 시즌이 있었던 만큼 집밥 목표도 대략 달성했다. 아이들과 매일 책 읽는 것도 미션 완료. 매달 0백만 원 저금 목표도 이루었다. 매일 팔천 보도 걷고, 일주일에 2회 필라테스도 꾸준히 갔다.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목표도 있다. 올해 너무 고마웠던 동네 언니네 식구를 초대해 집에서 식사 한 끼 하고 싶고, 바이올린 비브라토(https://youtu.be/Ey5 n37 rNkZA)​도 어느 정도 만들고 싶다. 아직 두 달 남았으니 할 수 있을까. 포기는 금물, 바이올린 연습은 틈나는 대로 해봐야겠다. 아이들 잠자리 독립은 2021년 1월 1일부터 하기로 약속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반쯤은 잠에 취하고, 반쯤은 깨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툭 놓아버린다. 지금까지 열심히 성실히 살았으니, 남은 두 달쯤 놀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우겨본다. 2021년 1월 1일이 되면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1사 분기까지 어떻게든 지켜보겠다고 아등바등거릴 테니 말이다. 코로나19라는 특이상황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일주일 동안 자발적으로 집안에 갇혀도(?) 보고,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도 해보고, 일주일 동안 디톡스라는 이름으로 단식도 해볼만큼 내 몸을 못살게 굴었으니 두 달쯤 2020년의 방학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라고 믿어본다.)


잘 살고 있어?

매번 늦다가 오래간만에 일찍 온 남편이 내게 물었다.


그냥 사는 거지 .


그렇다. 그냥 사는 거다. 일단 오늘도 잠부터 자야 겠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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