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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어 Jul 16. 2020

슬기로운 다도 생활

"호모 커피 엔스 요기니, 다도를 유튜브로 배웠습니다"



"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차를 마셔도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으니 생애 단 한 번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머리로 따지면  안 돼요. 배우기보다는 익숙해져야 되죠. 하다 보면 손이 저절로 움직여요."

                                                                                                            영화 <일일시호일> 중


 요가를 오랫동안 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차와 다도에도 관심이 생겼다.

수련 후  요가원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 그리고 그 찻자리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소소한 담소가 좋았다.


 매일 하루에 한잔 이상 커피를 즐겨 마시는 나 같은 커피 애호가, 소위 말하는 호모 커피 엔스가 차(茶)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커피나 물 대용으로 간편하게 마시는 티백 차가 전부였다.

 하지만 일본식 다도를 다룬 "일일시호일"이라는 영화나 효리네 민박에서 효리 언니가 보이차를 즐겨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천천히 차를 따라서 향과 맛을 음미하는 그 모습이 여유 있고 멋있어 보였다. 기회가 되면 다도를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호기롭게 무작정 다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전문가나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하고자 하는 의욕과 의지만 있다면,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유튜브를 통해서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유튜브 만세!



인터넷으로 입문자용 다도세트와 말차를 주문했다. 


찻잎을 덖어서 만드는 녹차와 달리 말차는 덖음차가 아니라 시루에서 쪄낸 찻잎을 그늘에서 말린 후 잎맥을 제거한 나머지를  분말 형태로 만들어 이를 물에 타서 마시는 일본에서 주로 마시는 차이다.

 햇차의 새싹이 올라올 무렵 약 20일간 햇빛을 차단한 차밭에서 재배한 찻잎을 증기로 쪄서 만들기 때문에 빛깔이 진녹색으로 무척 곱다고 한다. (지금까지 말차와 녹차가 같은 걸로 알고 있었다.)


 다완에 말차 분말을 적당히 넣고 따뜻한 물을 약간 부어 거품이 생길 때까지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차선을 위아래로 저어준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바른 자세로 각을 잡게 된다.) 이걸 하다 보면 손목이 엄청 아픈데 어느 순간 그 아픔보다 초록 빛깔의 말차와 그 거품에만 집중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따뜻하게 데워진 영롱한 푸른 빛깔의 다완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초록색 빛깔의 차를 바라본다. 천천히 차를 서너 모금으로 나누어 그 초록 빛깔이 주는 차의 맛을 음미하면서 마신다.

 풀의 향기 나는 그 초록색의 따뜻한 액체는 오묘한 맛을 내면서 나의 목구멍을 통과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몸속의 모든 혈관이 초록빛으로 물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텁텁하면서도 풀 맛 같은 오묘한 맛이 나름 중독성이 있다.


 그렇게 찻잔을 비워내면 빈 다완에 나의 얼굴이 비친다. 온몸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오늘 하루도 제대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 마음을 빗질해서 정돈하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면서 오롯에 나 자신을 들여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요가 수련 후 가지는 티 타임은 어느새 나의 모닝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다도를 제대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차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격식과 절차에 집착하기보다는 차선으로 차를 저을 때의 마음가짐과, 차의 맛,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면서 슬기롭게 다도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머리로 따지면 안 돼요. 배우기보다는 익숙해져야 되죠. 하다 보면 손이 저절로 움직여요"라는 일일시호일의 대사처럼 차가 나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익숙해지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커피 애호가의 슬기로운 다도 생활은 계속될 것이다.


평소 관심 있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호기롭게, 가볍게 시작해 보시길.


 형식과 절차, 이론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것이 주는 즐거움에 집중하면서 온전히 즐겨보셨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으며 당신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주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유튜브가 있으니깐.

슬기롭게 해 나가시길.

유튜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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