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최적화
지난번 글에 이어 두 번째로 다루는 주제입니다.
저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오프라인 자체가 몰락하지는 않으며, 강력한 힘을 여전히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장사를 하는 개별 업체들에게는 기존과 매우 다른, 특히 기존 플레이어에겐 매우 고통스러운 반면, 새로운 플레이어에겐 희망 섞인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실제로 목격한 오프라인 시장의 기본 문법은 이것이었습니다.
A.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젊은 상인, 예술가, 그리고 독자적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듬
B. 그 지역이 유명해짐
C. 임대료 상승&젠트리피케이션 발생
D. 상권 몰락
E. A부터 다시 반복
A가 가능했던 이유는 오프라인을 통해 자기의 개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것과 함께, 그로 인해 발생하는 (크지 않은) 수익 때문이었습니다. 임대료가 저렴한 동안에는 그 수익으로 생활이 가능했죠. 그러다 임대료가 오르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또 다른 동네를 찾아 떠나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런 문법이 앞으로도 무한히 반복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동영상 트렌드와 코로나 19 이슈가 드라이버가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아래와 같은 물음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죠.
"고객에게 오프라인의 제품/서비스를 경험시키기 위해서 오프라인 매장만이 답인가?"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에 대해 대리 만족시키거나 혹은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이런 서비스는 이미 나와 있습니다. 먹방과 인플루언서 커머스죠. 자세한 설명을 위해 우선 오프라인의 변화에 대한 추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기존 오프라인 업체들의 경영 악화가 가속되고, 결국 많은 업체들이 사업을 철수할 것입니다. 동시에 실적이 악화된 이들 회사에서 구조조정당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는 곧 소규모 오프라인 업체의 증가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기존 오프라인 매장의 실패를 지켜본 차세대 오프라인 업체들은 경쟁의 문법을 바꾸려고 할 것입니다.
연남동, 가로수길 핫플이나 일부 유명 맛집들이 인스타에 사진을 올린다거나,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활용해 마케팅을 진행한 것은 굳이 새롭지는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형태는 예전 파워블로거 시절부터 해왔던 것이지요.
다만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는 온ㆍ오프라인의 적극적 결합이 아예 주류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처럼 단순히 인플루언서들에게 제품의 제공하고 광고를 의뢰하는 형태가 아닌, 매장 자체가 하나의 인플루언서, 유튜버가 되려 할 것입니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주체가 맛집 탐방을 다닐 것도 아니고, 다른 음식점 리뷰를 하면서 비교체험을 할 것도 아닙니다. 동대문 액세서리 매장을 돌면서 방송을 할 수도 없겠죠. 이런 'Cross-store'형 콘텐츠들은 전문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의 영역으로 남을 겁니다.
하지만 오프라인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나, 매장 고객들과의 상호작용 등을 중심으로 좀 더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당구장 사장님이 "물 100 직장인, 한 달만에 200 되기"같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이야기죠.
유튜브에 이런 거 전문으로 리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성공 가능성이 있겠느냐 싶겠습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의 경험과 고민에 가깝고, 또 오프라인 운영자의 콘텐츠 제작 목적은 고객 방문이 늘어나거나, 주문을 활성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조회수가 목적인 기존 유튜버와는 다른 결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곰탕 육수 우려내는데 10시간이 걸린다면, 육수 만드는 과정만 보여주는 방송도 생길 것 같다는 뜻입니다. 식당에서 새벽부터 밑반찬 만드는 모습을 그냥 틀어놓을 수도 있는 것이죠. 아니면 헤어샵에서는 고객이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머리 하는 모습을 방송하며 솜씨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여한 고객에게는 무료라던가, 기타 이벤트도 활성화되겠지요.) 오프라인이라는 공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콘텐츠화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이런 콘텐츠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2030을 타겟으로 한 일부 매장에 한정되었던 것인데 코로나 19가 끝난 이후에는 완전한 주류 마케팅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오프라인 공간에 매인 업체가 가지는 접근의 한계성을 온라인 콘텐츠로 '목적구매'의 타겟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시도입니다. (목적구매란 쉽게 말해 해변에 뷰가 좋은 어떤 카페를 가려고 강원도까지 운전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핫한 동네에 목 좋은 자리 구한다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온ㆍ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존재감을 높인다면 이후 배달과의 연계성을 높이거나 커머스로 발전하는 식의 변화도 언제든지 시도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품목과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온라인 콘텐츠 참여와 관찰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 잠재고객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목적구매를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오거나 온라인 or 배달로 구매한다고 한다면 굳이 지금처럼 비싼 임대료 주고 메인 상권에 목 좋은 곳에 매장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차하면 아예 상권과는 동떨어진 곳에서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라인에서 유명한 콘텐츠 업체가 오프라인에 컨셉 스토어 오픈한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물론 콘텐츠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기업형 업체라면 여전히 메인 상권에 가겠죠. 그 정도 고정비 조차도 매출 규모에 비해 별 것 아닐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소규모 상인들입니다.
콘텐츠를 만들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툴은 갈수록 편리하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만만치가 않을뿐더러 상당한 감각도 있어야 하죠. 옆집에서 유튜브로 대박 났다고 해서 나도 해볼까 싶지만, 기술과 경험이 없으니 난감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는 공간이나 시간을 공유하는 식의 서비스도 성행할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매장과 관련한 '공유'라고 하면 Shared kitchen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 매장을 공유한다기보다는 도구와 공간만 공유하는 것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매장 자체를 공유하거나 활용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테헤란로에 한 맥주집이 있다고 합시다. 일반적으로 맥주집은 낮에는 문을 닫고 저녁부터 장사를 시작하죠. 하지만 이 맥주집 공간에서 낮에는 음식점 사장이 직장인들에게 점심 식사를 판매하고 저녁에는 원래 주인이 맥주를 판매하는 식으로 상부상조, 공유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마이샵온샵 같은 업체들이 시도 중인 모델입니다.)
아니면 스페이스 클라우드처럼 카페나 다른 오프라인 매장의 유휴 시간대에 그 공간을 다른 목적으로 대여하고 공간 활용률과 잠재 고객 인지도를 높이는 방안도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모임 공간에 특화된 장소들만 대여하는 식이지만 이후에는 더욱 다채로운 공간을 다양한 형태로 단기 재임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녁 장사를 하는 식당을 점심때까지는 가족 모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오픈한다던지, 재택근무자가 많은 동네에서 오전 일찍 동네 카페가 오픈하기 전에 그 카페 공간을 프리랜서 강사가 운영하는 영어 클래스에 대여한다는 식이죠.
이런 서비스들 역시 스타트업들이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시도했던 모델입니다. 하지만 아주 큰 성공 사례가 나오거나 시장의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코로나가 강제하고 있는 오프라인의 수익 악화는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의 수를 늘릴 것이고, 이처럼 공간 활용을 극대화시키려는 시도 또한 더욱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서비스가 온라인 서비스 대비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은 고객의 니즈에 따라 개인 맞춤형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골목식당 프로그램에 소개된 공릉동 백반집처럼 단골의 식성을 고려해서 반찬을 바꿔서 내놓는다던지, 머리를 하러 가면 익숙한 미용사가 나의 취향을 잘 고려해서 커트를 한다던지 하는 것들이죠.
하지만 이런 ‘단골’식 서비스의 문제점은 내 취향이 바뀌었거나, 아니면 새로운 트렌드 등을 따라가고 싶은 경우입니다. 또 자주 가는 그곳에 갈 수 없는 상황일 때도 어렵죠.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기존의 소상공인들 말고 스타트업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들이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화’입니다.
가령 고객 피부 데이터와 최근의 라이프 스타일 정보가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고, 이런 정보가 여러 피부 관리샵에 공유될 수 있다면 내가 퇴근하고 가던 회사 앞 피부관리샵이 아니라 주말에 집 앞에 있는 피부관리샵을 가도 동일한 퀄리티의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피부관리샵의 예시를 생각해보면 매장마다 설비가 다를 수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태도 등도 서비스 품질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이를 프랜차이즈 수준만큼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쉽지 않겠죠. 하지만 만약 점포 운영자 입장에서 프랜차이즈에 참여하는 것보다 덜 얽매이고, 로열티 등으로 나가는 비용도 줄어들 수 있고, 내 점포의 위치를 전에는 알지 못했던 고객이 나를 찾아올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난다면 이런 비용을 감안해서 설비를 증강하거나, 혹은 최선 설비가 아니더라도 기존 설비를 이용해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서비스를 별도로 제공하는 식으로 해서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도 있을 겁니다. 분명 프랜차이즈와 똑같지만, 선택의 여지가 많고, 운영 유연성도 높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Virtual franchise'라고 할까요?
이런 플랫폼을 운영하는 업체 입장에서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매우 어렵기는 할 텐데, 각종 트리트먼트와 고객 만족도 사이의 변화 같은 것을 트래킹 할 수 있거나, 서비스별로 고객들의 반복 여부와 구매 주기 등을 알아낼 수 있다면, 이 데이터들은 조금 더 지나면 매우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고객의 행동과 만족도에 대해 예측을 하게 되어 고객과의 최적 인터랙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평소 한 달에 한 번 커트하는 고객이 있습니다. 이 고객은 미세먼지나 황사, 아니면 환절기에는 머릿결 관리를 함께 받는데 커트만 할 때는 아무 매장이나 가지만 관리가 필요할 때는 특정 매장만 갑니다. 플랫폼 업체에서 결제 정보를 이용해 이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고, 고객 동의를 받아 머릿결에 대한 정보도 분석해놓았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한동안 매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고객에게 할인 쿠폰을 보내 주거나 고객의 동선상에 유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매장을 추천하는 알림을 보낼 수도 있겠죠. (물론 개인정보 이슈부터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꾸준히 새로운 기술들을 통해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맞춤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특정 개인을 위한 맞춤 정보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 머릿결과 미용실 방문 주기 및 소비 금액을 가지고 있는 고객들이라면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경우 반응 확률이 얼마쯤이니 출시해도 좋겠다는 식의 AI와 제품 개발이 결합된 서비스들도 계속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처럼 내가 어딘가를 갈 때 나의 동선에 최적화된 정보 제공의 단초들이 이전보다 강해지는 거죠.
위에서 언급한 변화들은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세련되지 않았거나 너무 니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죠. 고객이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프라인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이런 주제들에 관해 생각해볼 여지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고객들이 찾아오지 않는 추세가 생각보다 길어졌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게 되었지요. 누군가는 마냥 발만 구르겠지만 또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한 변화를 기회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객들 또한 오프라인을 경험하기보다는 반 강제로 온라인에만 머무르는 전대미문의 경험을 하고 있죠. (누가 그랬던가요, 자발적 집순이는 즐겁지만 강제적 집순이는 답답할 뿐이라고..) 이런 경험들은 크던 작던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소설들이 얼마나 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은 이미 너무나도 뻔한 사실들을 글로 풀어낸 것일 수도 있겠죠. 다만 제가 도와주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들의 말, 그리고 주변에 창업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지인들의 생각을 모아 보면 이런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현실화되거나 대세가 될 여지가 커 보입니다.
※ 원래 글 순서로는 배달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요, 이 부분은 대기업 온오프라인 커머스까지 포함한 대하소설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우선 소상공인 중심으로 짐작되는 오프라인 최적화 이야기를 먼저 올리고 차분히 준비해서 마지막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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