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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Oct 09. 2020

모바일이 불러온 초경쟁의 시대

Corporate venturing과 기업 성장 chapter 1

1. 기업의 성장 전략과 변화 필요성 


(1) 기업 사업모델과 신사업의 역사: IMF, 금융위기, 그리고 중국


이전 글 참고(클릭)


(2) 인터넷과 모바일, 그리고 Super competition 


모바일 시대와 이전의 인터넷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IT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이 오프라인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기존의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영역을 전방위적으로 넘보기 시작한 것이죠. 


인터넷 비즈니스 그 자체를 업으로 하는 업종들이 있습니다. 가령 네이버 같은 포털이나 SNS, 게임, 각종 플랫폼 서비스는 인터넷, 정확히는 PC 웹을 기반으로 출발했죠. 이들의 시장 규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커지기는 했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존의 제조업이나 오프라인 서비스 업종과는 직접적으로 경쟁하거나 갈등 관계에 놓이지는 않았습니다. 기존 기업들 입장에서 인터넷 비즈니스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것, 혹은 그래서 새롭게 광고를 집행해야 하는 곳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는 지금에야 워낙 대세이니 상상하기 어렵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유튜브가 성공하기가 어려우며 그래서 내수 위주 기업들이 유튜브에 광고를 올린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기껏해야 포털 사이트에 광고 배너를 걸거나 지마켓에서 일부 상품을 판매하는 정도에 그쳤죠. 


이런 상황에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런데 모바일 서비스는 기존 기업들이 제대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안드로이드 창업자가 삼성전자에 회사를 판매하러 갔다가 비웃음만 당했던 일화는 신기술에 대한 기존 기업들의 이해 수준을 말해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이후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5,000만 달러에 인수되었고 이후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조차 이런 상황이었으니 다른 대기업들의 모바일에 대한 대응은 더욱 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인터넷 기업에 잔뜩 투자했다가 닷컴 버블에 덴 기억이 있는 대기업들은 눈 앞의 금융위기 극복과 중국 열풍에 집중하느라 새로운 기술에 무신경했습니다. 그동안 모바일 혁명을 이뤄낸 것은 카카오를 비롯한 스타트업들이었죠. [주 1]


대기업이 모바일에 신경 자체를 쓰지 않거나 그저 광고비 일부를 집행하는데 그치는 동안 스타트업들이 몸을 키울 기회를 잡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입장에서는 중국과 동남아 시장 진출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굳이 이해도 되지 않고 내부에 전문 인력과 경쟁력도 없는 모바일 영역을 고민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일례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IT분야 근무 인력은 개발자는 물론, 관리 업무 담당까지 모두 합해서 1백만 명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상용 근로자가 1,800만 명 수준인 걸 감안하면 대부분의 근로자가 IT나 신기술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전통적인 업종, 그러니까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고용한 회사들 또한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업종이었단 뜻이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등 IT 신기술이 한창 유행이던 2018년 통계가 이 정도이니, 2010년대 초반에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고 그만큼 기존 기업들의 관심 바깥이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온라인의 격전지, 유통업계


2010년대 초반, 모바일 기술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던 스타트업의 시작과 초창기는 정말 미약했습니다. 국내 최대 유통업체 중 하나로 성장한 쿠팡은 그 당시에는 이른바 '소셜 커머스' 업체 중 하나로 동네 마사지 업체 할인권을 팔았고, 우아한 형제들 창업팀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전단지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스니커즈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였던 무신사는 2009년 말에 온라인으로 신발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국민 메신저를 만든 카카오조차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용자에 비해 수익 모델이 없어서 적자에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대기업 입장에서 모바일 시장이란 너무 영세할뿐더러, 진출해서 사용자를 모았다고 해도 수익이 날 가능성이 극히 적은 시장이었습니다. 게임회사들 정도가 비교적 큰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습니다만 게임 시장은 정말로 기존 기업의 비즈니스와는 별개의 산업이었으니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부터 드디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은 바로 유통업이었습니다. 물론 어전에는 오프라인 유통업의 규모라 온라인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주 2] 


물론 지마켓은 2009년에 미국 이베이에 인수되면서 국내 최대의 온라인 커머스 업체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총 취급액이 7조 원을 넘는 초대형 업체였으니 오프라인 유통사에 충분한 위협이 되었죠. 하지만 오픈마켓이라는 특성상, 그리고 당시 주력 판매 제품군이 PC 부품이나 소형 전자 제품이라는 점에서 식료품 위주의 대형 마트, 명품 중심의 백화점과는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용품 역시 대형 마트와 그들의 SSM 체인이 접근성과 즉시성을 앞세워 월등히 강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유통사들의 온라인 전략은 상대적으로 느슨했고 오프라인 판매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Ansoff matrix 기반 의사결정 대상도 아니었고 그저 주력 비즈니스를 보조하는 마케팅 채널에 불과했던 것이 당시 모바일의 위상이었습니다. 


2013년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의 매출은 연간 478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2014년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매출액은 3,485억 원을 기록하게 됩니다. 전년 대비 729% 성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찍은 것이죠. 그전까지 국내 기업에서 이 정도의 성장을 기록한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이런 폭발적인 매출 성장이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유명한 '로켓 배송'이었습니다. 온라인 배송은 보통 3~5일 정도 소요되는 것이 평균이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바로 사용하는 제품들, 그러니까 식료품이나 주방용품 등은 마트에서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찬거리가 없다거나 당장 세제가 떨어진 상황에서 배송까지 사흘은 걸리는 온라인 구매를 선택하는 것은 말이 안도는 상황이었죠. 로켓 배송은 이런 장벽을 단숨에 허물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단지 빠른 배송 하나만으로 1년에 7배나 매출액이 늘 수는 없죠. 쿠팡을 성장시킨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기저귀였습니다. 기저귀를 로켓 배송으로 빠르게 배달한 것이죠. 


이 기저귀라는 제품은 참 재미있는 물건입니다. 아기 키우는데 하루라도 없으면 곤란한 제품이지만 그렇다고 한꺼번에 대량으로 구매할 수는 없습니다. 아기 자라는 속도라는 게 하루가 다르기 때문에 이번 달에 쓴 기저귀 사이즈와 다음 달에 쓸 사이즈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가격도 은근 부담스럽습니다. 한 달에 기저귀 값만 몇십 만원씩 나가는 경우도 있을뿐더러 1~2년이 쌓이면 정말 만만치 않은 금액이 되죠. 고객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번거롭지만 육아에 필수적인 제품인지라 조금씩 자주 구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 굉장히 많이 공유하는 정보가 바로 기저귀 저렴하게 구매하는 법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기저귀를 구매한 엄마들은 이후에도 육아용품, 이유식, 아이 옷 등등 계속해서 꾸준히 관련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기도 하고 입소문도 굉장히 빠른 사람들입니다. 맘 카페 등에서 육아정보를 공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유통회사 입장에서는 잡을 수만 있다면 최고의 고객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이 기저귀 고객입니다. 


로켓 배송 이전 쿠팡의 M/S가 얼마나 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 쿠팡의 기저귀 M/S는 1% 미만에서 30% 이상으로 미친 듯이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소매가 기준으로 약 6천억 원이던 기저귀 시장에서 100억 원도 팔지 못하던 쿠팡이 1년도 안 되는 새 2천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는 뜻입니다. 


당시 쿠팡이 판매하던 기저귀 가격은 납품가보다 낮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마트 등 오프라인에서 판매되는 기저귀보다 한 팩당 거의 만 원이 저렴했으니까요. 각 가정에서 한 달 기준으로 5만 원 이상을 세이브할 수 있는 가격이었습니다. 오프라인 유통사보다 훨씬 저렴한 기저귀를 로켓 배송으로 각 가정에 배달하면서 5백억 원이 채 안되던 쿠팡의 매출은 3천5백억 원 수준으로 상승했고, 이듬해에는 1조 원을 넘어서게 됩니다. 가격 및 배송 속도와 더불어 배송 완료 후 사진 전송, 로켓 배송 기사님들의 손편지 등 세심한 서비스들은 육아에 지친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는 곧 폭발적인 매출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쿠팡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드디어 매출의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통계청 기준으로 2015~2019년 사이 대형마트의 매출액 성장률은 0%입니다. 쿠팡이 쏘아 올린 로켓 배송 이후 위메프, 티몬 등의 연이은 이커머스 진출과 지마켓, 11번가 등 기존 이커머스 강자들의 약진으로 인해서 한 때 동네상권과 전통시장을 고사시키던 오프라인 대형마트는 제로 성장에 놓여버렸습니다. 


그래도 마이너스는 아니니 다행 아니냐 하시겠지만 대형마트의 매출액에는 그들의 온라인 채널에서의 판매액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형마트는 그동안 온라인 매출 신장에 사활을 걸었고, 더불어 코스트코나 이케아 등의 매출도 섞여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기존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이 받은 타격이 얼마나 심대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대형마트 3사 모두 점포를 축소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롯데쇼핑은 전국 700여 개 매장 중에서 슈퍼를 포함한 200여 개를 없앨 것이라는 발표를 하기에 이릅니다.



모바일의 진출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배달업계 


모바일의 전방위적 공격은 이처럼 유통업에서 가장 뚜렷하기는 했습니다만 이것이 끝이 아니죠.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음식점 자영업 영역에서도 이런 추세는 명확했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 국내 음식점은 대략 50만 개, 전체 매출액은 130조 원 정도가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PC 인터넷 시대에서 온라인이 음식점에 미치는 영향이란 기껏해야 파워블로거가 맛집 소개하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즉, 앞서 살펴본 유통기업들처럼 음식점들 역시 온라인은 색다른 마케팅 장소 정도였을 뿐이고 이는 프랜차이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아한 형제들이 배달의 민족을 만들었을 때 크게 신경 쓰고 주목한 사람은 그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9년 밝혀진 배달의 민족 내 식당의 매출액은 8조 7천억 원 규모에 이른다고 하죠. 우리나라 전체 식당 매출의 6.7% 정도가 배달의 민족 어플에서 이뤄진 셈입니다. 배민의 M/S 등을 고려하면 2019년 전체 음식점 매출의 약 12% 정도가 배달앱 3사(배민, 요기요, 배달통)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먹는 점심이나 외식할 때 먹는 음식들이 배달보다 더 비싸고 여러 명이 먹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로지 '배달'음식 만으로 15조 원, 전체 음식값의 12%가 거래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배달앱의 파워가 이렇게 세지다 보니 한 때 배달앱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자체 어플을 만들고 쿠폰을 뿌리던 대형 프랜차이즈까지 현재는 백기 투항을 한 상태입니다. 배달앱에 수수료, 광고료를 빼앗기는 건 싫지만, 그렇지 않으면 매출 하락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배달앱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아직까지는 배달앱들이 시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결국에는 유통업체들처럼 배달앱들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PB 식당을 운영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지역별, 고객별로 판매되는 음식 종류와 특성에 대한 데이터가 누적되어 있으니, 이에 기반해서 배달 전문 PB 식당을 만들고 이들을 어플 내 상위에 노출시키게 되면 사실상 취급액 15조 원짜리 초대형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는 셈입니다. 우아한 형제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자본금 3천만 원짜리 스타트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자영업 식당은 물론이고 프랜차이즈 기업들까지 두려워하는 기업이 된 것이죠. 식당과 프랜차이즈 모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플랫폼의 하청업체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 잠식되고 있는 Legacy media


이처럼 모바일과 기술 진보가 가져온 변화로 인해 기존 기업의 전략 실행이 결국 더 큰 플랫폼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은 분야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유통과 배달에 이어 세 번째로 생각해볼 분야는 바로 미디어입니다. 현재 국내 미디어 시장을 휩쓰는 키워드 두 가지만 뽑아본다면 바로 유튜브와 넷플릭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곳은 공중파 3사를 비롯한 Legacy media죠. 


201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 공중파 3사와 그들에게 프로그램을 받아 재전송하는 케이블 방송, 그 외에는 CJENM과 같이 음악이나 영화 등 특화된 채널을 운영하는 업체가 몇몇 있는 구조였습니다. 물론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전문 업체도 있었습니다만 네이버나 네이트 등 대형 포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마케팅 운영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겁니다. 소위 ATL(Above The Line, 공중파나 전국 단위 일간지 등의 대형 미디어) 중심으로 마케팅이나 광고가 이뤄졌고 인터넷이나 모바일은 BTL(Below The Line, ATL을 제외한 나머지 미디어) 중 일부로 취급되던 때가 201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이후 종편이 탄생하고 CJ ENM의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지상파에 집중되었던 광고 수익이 급격하게 신규 채널로 이동하게 됩니다. 2006년 공중파의 광고 수입액은 2조 5,255억 원이었는데 2018년에는 1조 3,007억 원으로 완전히 반토막이 납니다. 지상파가 방송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던 비율도 75.8%에서 44.6%로 줄어들게 되죠. 2018년 공중파 3사는 결국 연간 기준으로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MBC의 적자는 1천억 원을 넘었죠. 


지상파는 광고 매출을 종편과 CJ 같은 방송사에 빼앗긴 것이지만 방송 전체의 광고 매출도 줄어들고 있어서 결국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다른 미디어로 무게 축이 옮겨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2017년 기준 국내 인터넷/모바일 광고비 규모는 4조 7,751억 원으로 지상파 포함 전체 방송광고 시장보다 크다고 합니다. 


2018년 이후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고,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한 이후 전체 미디어 사용 시간을 두고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현재는 아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송사의 광고 시장은 위축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당장 올해만 해도 KBS는 존속을 위해서 수신료를 두 배로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MBC 역시 수신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미디어 지형 자체가 도저히 공중파가 견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KBS와 MBC가 그동안 미디어 운영을 엉망으로 해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일단 떠오르는 경쟁사인 CJENM은 공중파의 몰락에 역할을 담당했을지는 몰라도 완벽한 수혜자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 1조 2천억 원 정도에서 출발한 매출액은 2015년에 2조 3천억 원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만 이후 오쇼핑과 합병될 때까지의 매출액은 매년 제자리걸음입니다. 즉, 2010년대에 중국이나 동남아에 진출하고 TVN 등 채널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매출액이 증가했지만 이후에는 종편의 등장과 유튜브, 아프리카TV 등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일 겁니다. 그 사이 CJ는 중국과 동남아의 홈쇼핑 시장에 진출하는가 하면 MAMA를 비롯한 각종 문화 콘텐츠 기획 및 실행, 그리고 나영석 PD를 비롯한 공중파 유명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등 대단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도 뉴미디어로 무게추가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공중파 3사와 같이 기존 방식에 안주하다가 뒤쳐진 경우는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전략 실행에 최선을 다하더라도 결국 산업 구조의 전면적인 재편 앞에서는 지금 자리조차 지키기가 어려운 현실을 CJ ENM이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CJ ENM도 새로운 매출을 찾아 나서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파트너가 바로 넷플릭스입니다. 국내에만 머물거나 유튜브에 영상 풀고 수익 챙기는 정도가 아니라 넷플릭스에 글로벌 방송에 관한 권한을 주고 그 대가로 매출을 올리는 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죠. 넷플릭스는 자사 경쟁력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고 또 사들이고 있으며, 국내 방송사의 콘텐츠는 한류 덕분에 동남아나 남미에서 인기가 좋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국내 방송사와 콘텐츠 제작사는 결국 넷플릭스의 하청업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존 기업들이 위기에 몰린 원인


이제 소비자들이 먹고, 사고, 즐기는 모든 것들이 모바일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들 손에 넘어갔습니다. 중간자를 거치는 거래는 일단은 편리성도 높고 새로운 영업 기회도 생겨서 좋습니다만, 이런 구조가 장기화되면 공급 업체는 시장과의 접점을 잃어버리고 결국 중간자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공급업체는 다수인 반면에 중간자가 소수인 구조라면 사실상 독과점 업체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소구 할 방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2010년대 이후의 변화들, 즉 모바일 서비스 업체들이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모든 공간을 막아섰다는 사실은 기존의 B2C 제조업체와 그들에게 납품하는 B2B 제조업체는 물론, 유통업 같은 오프라인 업체들에게는 '완벽한 을이 되었습니다.'라는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개별 업체들이 아무리 합리적인 전략을 세워서 최선을 다해 실행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에 마주한 상황에서는 그 어떤 시도도 의미를 가지기가 힘들죠. 


그럼 이쯤에서 하나의 의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과연 기존 업체들은 이런 변화를 아예 예측하지도 못했고 대응할 역량도 없었던 것일까요?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2010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기업의 성장을 견인했던 독트린은 '자기 영역에서 잘하자.'였습니다. 즉, 잘하는 일을 가지고 사업을 확장하자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Ansoff나 BCG Matrix에 기반한 논리이며 프라할라드 (C.K. Prahalad) 교수와 게리 하멜 (Gary Hamel) 교수가 주창했던 'Core Competence', 즉 핵심역량 / 핵심 경쟁력 이론에 기반한 논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문어발식 경영을 하다 호되게 당했던 IMF의 교훈이기도 하고 인터넷 사업에 투자하려고 했다가 버블을 경험하면서 학습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내 내수 시장이 부족해질 무렵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 중국 시장에서의 기회는 잘하는 것을 잘하는 전략에 대한 기업의 믿음을 더욱 높이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하나의 역량, 어느 하나의 전략에만 특화되는 것은 사실 리스크가 매우 높습니다. 동물의 진화에서 확인되듯 굉장히 어느 한 분야에 특화된 생명체는 그 환경이 안정적일 때는 최강자로 살아갈 수 있지만 환경이 급변하는 경우 오히려 그 특화가 '부채'가 되어서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게 되거든요. 국내 업체가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중국 시장에 눈에 팔려있는 동안 모바일 서비스는 야금야금 성장을 했고, 그 후 10년 동안 산업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그동안 대기업 내부에서 이런 준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수없이 많은 혁신 전략들이 보고가 되었겠죠. 하지만 '그거 우리가 하면 잘할 수 있어?'라는 질문에는 대답이 궁해집니다. 기존 사업도 잘 되고 있고, 새로 진출해야 할 중국과 동남아에 투자할 돈도 부족한 상황인데 모바일 같은 사업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기존 기업이 플랫폼 같은 사업을 하려면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가령 KBS가 영상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해봅시다. 과연 유튜브만큼 모든 참여자가 자유롭게 들어오고 자료를 올리는 플랫폼을 만들었을까요? 그것보다는 그냥 KBS 영상물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다른 업체가 들어오면 검색창의 한참 후순위에 놓지 않을까요? (국내 모 포털사가 유통업을 하면서 검색 결과를 장난쳤다는 신문 기사가 나오고 있죠. 비단 이 포털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KBS가 유튜브처럼 완전히 열린 플랫폼을 만들려고 해도 KBS 내부에서는 '그럴 거면 그 사업 왜 하냐?'는 반발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업체들 또한 '우리도 만들면 되지 KBS 플랫폼에 왜 들어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충분하죠. 


모바일 시대 속에서 기존 기업이 휘청거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존 사업을 굉장히 열심히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었던 것이고, 굳이 변하지 않아도 실적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전략적 시각이나 역량, 자금의 부재가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철강, 화학, 조선과 같이 전체 산업의 기반이 되는 소재/인프라 분야 대형 B2B 업체들에게는 모바일로 인한 변화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인재 영입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는 모바일 영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는 인재가 몰리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프라 산업은 최고 인재들의 시야에서는 벗어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위협받게 됩니다. 



점점 심화되는 플랫폼으로의 종속


앞서 설명했던 B2C 업체들은 이제 거의 모든 영역에서 모바일 기업들에게 소비자 접점을 빼앗긴 상황입니다. 많은 수의 식당들이 배달의 민족과 거래를 끊을 경우 매출 폭락을 감수해야 하고 쿠팡과 거래하지 않는 소비재 업체는 상상하기가 어려우며 콘텐츠 사업을 하는 기업이 유튜브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세상입니다.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해왔지만 어느 시점에서 결국 하청업체가 되어버렸다.. 가 모바일이 기존 기업들에 만들어낸 의미입니다. 플랫폼 입점 업체 중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 있다면, 플랫폼은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제품을 내재화하고 PB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극소수의 유명 브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PB와 싸우느라 수익이 줄어들고 매출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소비자에게 차별성을 직접 어필하지 못하고 중간상(=플랫폼)의 컨트롤을 받게 되면 결국 극심한 경쟁에 마주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소비재 관련 업체들이 이런 변화를 마주했습니다만 과연 카카오뱅크 및 토스와 경쟁하는 은행들은 어떨까요? 혹은 보험업에 네이버가 진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은행이나 보험업은 각종 법규로 보호되고 있고 또 업체들의 규모가 크니 일반 소비재처럼 되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중후 장대형 제조업, 그러니까 조선, 화학, 통신, 반도체 등은 모바일 혁명과는 거리룰 둔 상태로 여전히 기존 기업들의 영역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물론 기술이 더 진보한다면 변화가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마도 최소 10년 이향은 지금과 유사하게 모바일과 스타트업의 영향은 크게 받지 않는 구조를 유지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가전 등은 이와는 달리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단순한 모바일 혁명이 아니라 더욱 복잡하고 광범위한 소위 '4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습니다만, 굳이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소프트웨어가 뒤바꿀 자동차 업계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량은 줄어들었습니다. 휴가를 멀리고 가지 않음은 물론이고 지역 간 이동도 줄어들고, 심지어 재택근무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죠. 이런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들은 실적 악화를 겪고 있습니다. 당장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판매량을 늘려왔던 현대차는 작년 상반기 판매량 220만 대에서 올해 동기간 164만대로 25%가량 판매량이 급감했습니다. 그래도 영업이익은 1조 원을 넘기면서, 줄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미국과 유럽의 메이커들이나 전년대비 영업이익이 99% 감소한 도요타보다는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재미있는 것은 테슬라입니다. 올해 상반기 테슬라의 판매량은 18만 대, 그러니까 현대자동차의 1/8밖에 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2,560달러(약 300조 원)로 현대자동차 42조 원의 7배가 넘습니다. 아무리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차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7월에는 테슬라의 시총이 도요타, 폭스바겐, 혼다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높기도 했습니다. 


수익성이나 매출 규모에 비해 과한 평가인 것이 사실이고, 일론 머스크라는 최고의 스타 CEO의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테슬라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테슬라가 자동차를 더 이상 'The driving machine'이 아니라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이며, 100년이 넘는 중후 장대형 산업을 서비스 머신 산업으로 완전히 바꿔 버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테슬라가 만드는 자동차는 차량 그 자체로만 보면 아무리 좋게 봐도 중간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단차나 차량 도색은 겨우 구색만 맞춘 수준이고 내장재는 경차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차량의 소프트웨어, 특히 테슬라가 자랑하는 'Full self driving'(운전 보조 소프트웨어 패키지인데, 완전 자율운전이라는 오해를 받거나 자칫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명칭이기도 합니다.)을 경험하고 업데이트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기존 자동차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기 구동 차량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인 배터리 관리 소프트웨어 역시 다른 업체보다 3~5년은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여기서 테슬라가 내세우는 소프트웨어나 기술력의 진위나 그 수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비판받는 조립 품질과 내장재, 빈약한 전기 충전 인프라 등을 감수하고도 2020년 상반기에 국내에서 7천대 이상 판매되었으니까요. 


테슬라도 나름 15년이 된 회사지만 50년이 넘는 브랜드가 수두룩한 자동차 업계에서 내세울 만한 역사는 아닙니다. 판매량은 기존 업체들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이지요. 하지만 테슬라가 기록한 시가총액과 몇 년간의 성장세는 코로나가 한창인 지금은 물론, 그 이후에 기존 자동차 업체와 테슬라 중 누가 웃을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 이외에도 아예 자율주행 관련 소프트웨어만 연구하거나 차량 내외부 센서를 집중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전 세계에 수십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일반 소비자용 차량이 아닌, 트럭 등에 AI를 적용하고 센서와 배터리 관리 능력에서 차별성을 갖추려는 후발 주자들이 미국, 중국, 유럽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Nikola, Rivian, Fisker, Faraday Future, Byton 같은 아직은 낯선 회사들이죠. 


물론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또한 주저앉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하지만 만약 테슬라처럼 성장하는 업체가 한두 군데라도 나타난다면 기존 자동차 업체들에게는 또다시 엄청난 타격을 줄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글로벌 차원의 과다 설비로 인한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던 업계가 바로 자동차 업계니까요.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를 굳건하게 지키던 노키아가 아이폰 등장 이후에 사라져 버린 것을 자동차 업계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참, 아이폰과 함께 안드로이드의 대중화로 피처폰 업체의 몰락에 크게 기여했던 구글은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에도 Waymo라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통해 그때와 동일한 전략을 반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트업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자율주행차 연구개발에 필요한 대규모의 펀딩을 지원할 정도로 큰 VC도 없는 상황이라 세계적인 흐름과는 조금 어긋나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의 입장은 그리 급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테슬라가 부지런히 생산량을 늘리는 한편, 만약에 한국에 진출해서 공장을 짓는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2) 자동차 업계보다는 여유가 있는 가전업계


반면에 가전/홈 솔루션 같은 경우엔 유통업이나 자동차 업계보다 다소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과 LG가 매우 공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자체 연구 개발에도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유통은 '더 싸게/편하게 사고 싶다.', 자동차는 '귀찮은 운전 안 하고 싶다.' 혹은 '트럭 운전수 비용을 아끼고 싶다'는 명확한 불만 포인트가 있는 반면에 가전은 그런 점이 그다지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각각의 독립적인 디바이스를 묶어서 하나로 관리하게 해주는 플랫폼 소프트웨어는 불편함이 크고 또 여러 군데에 상존하는 상황 속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적용되는 것처럼, 구글이 기존 자동차 제조사의 하드웨어에 Waymo를 씌우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죠. 하지만 가전 영역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스마트홈, 즉 IoT 기술과 데이터 기반 AI 솔루션이 결합된 제품들에 대한 1차 공급자는 당연히 기존 가전제품을 만들던 삼성이나 LG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전/홈 솔루션 영역은 당분간, 어쩌면 한 세대 이상은 기존 제조사가 주도권을 쥐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아마존의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등 스마트 스피커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인간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능력 또한 데이터가 쌓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고도화되므로 사용자들의 만족도 역시 높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스마트 스피커의 진짜 역할은 시간이나 날씨 질문에 답변해주는 것이 아닌, 집 전체에 대한 통제입니다. 


스마트 스피커라는 아이디어는 단순히 인간과 Q&A를 수행하는 것 이후 역할에 대한 기대에서 출발했습니다. 알렉사는 아마존에 접속해서 물건을 구매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이며, 구글 어시스턴트는 간단한 개인 비서 역할은 물론, 우리 집의 모든 가전과 유틸리티의 상태를 확인하고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습니다. 


즉, 말 한마디로 집 안의 조명이나 보일러/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고 알아서 보안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꿈꾸는 것인데 이게 가능하려면 스마트 스피커가 문제가 아니죠. 집 안의 모든 가전과 유틸리티에 IoT 기능이 설치되고 자동 통제 장치들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말로 가스밸브를 오픈하려면 먼저 가스밸브의 상태를 확인하는 센서와 이를 알려주는 커뮤니케이션 장치, 그리고 자동으로 밸브를 오픈하는 장비가 필요합니다. 집 안의 모든 가전이 이런 식으로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죠. 


IoT 기술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줄 것처럼 알려졌지만, 지금 단계에서의 가정용 IoT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별 상관은 없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고 오히려 비용만 더 늘어나는 상황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보니 등장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확대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가전제품들을 묶는 허브 역할을 해야 할 스마트 스피커 역시 Q&A 머신에 머물고 있죠. 개별 품목 단위로 내려가면 각자의 입장이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만, 넓게 보자면 가전 영역은 다른 B2C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타트업으로 인한 영향을 늦게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경제 전반적에서 스타트업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더욱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특히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크게 남아있던 콘텐츠, 유통, B2C 제조, 금융, 자동차 등은 엄청난 변화의 파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유통업이 종소형 소비재 제조 업체를 통제하고, 제조업체들의 광고/마케팅은 네이버, 카카오, 유튜브 등이 통제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예전에는 기존 업체들의 공고한 성벽 안에 있었던 금융업에도 발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죠. 요식업에서도 우아한 형제들 같은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나 화학 같은 업계는 당분간은 기존 업체들의 영역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테슬라가 배터리 팩 운영 관련 소프트웨어 등에서 기존 배터리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자동차 업체들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형 제조 산업에서도 조만간 변화가 생겨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들은 기존 기업들에게는 수익성 악화와 위기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모바일과 기술발전이 가져오는 초경쟁의 세상이 열린 것이지요. - 다음 글에서 계속



[주 1] 

원래 스타트업이라는 말은 꼭 기술 기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창업을 의미합니다. 2010년대 이전에는 일반 창업과 분리해서 인터넷 같은 신기술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창업 업체들을 벤처라고 불렀습니다. 모험이라고 할 만큼 위험도가 높은 사업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차츰 미국을 중심으로 벤처라는 용어가 너무 '위험성'만을 강조하는 말처럼 느껴진다며 그냥 신규 창업을 의미하는 '스타트업'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가 국내로 넘어오면서는 사실상 벤처와 동일한 기술 기반 신규 창업 업체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 2]

통계청 기준으로 2015년 국내 온라인 쇼핑몰 전체 취급액은 54조 원입니다. 동일한 해의 자동차 제외 소매판매 총액은 364조 원으로 온라인 유통의 비중은 15% 수준입니다. 하지만 19년에는 각각 135조 원과 424조 원으로 온라인의 비중은 32%까지 올라왔습니다. 2010년 불과 25조 원이던 시절의 온라인은 무시할만했겠지만, 불과 10년이 지난 사이 5.5배 성장했고, 그만큼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영역이 줄어들게 된 것이죠. 그리고 명확하지는 않지만 상기 온라인 유통사의 금액에는 배달의 민족 등 소위 O2O라고 부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들의 취급액은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항목들까지 추가한다면 이미 국내 B2C 시장의 절반은 온라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쯤 되면 IT 기술 기업들이 그냥 잠재력 있는 신규업체가 아니라 기존 기업을 무너뜨릴 힘을 가진 강력한 플레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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