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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규 Nov 04. 2018

4. 백점 만점에 4.5점

아이들과 함께 걷는 세상 4

큰 아들이 집 근처의 대학에서 언어 연수를 시작하면서 작은 아들 역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로컬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물론 거주하고 있는 집이 구와 구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탓에 집에서 2분 거리의 학교를 두고 10분 정도 돌아 걸어가야 하는 학교에 들어가게 되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었다.

중국어의 기초가 있던 큰 아들이 보낸 1년의 시간과는 달리 아무런 중국어의 기초도 없이 1년 동안 놀면서 시간을 보낸 작은 아들의 중국어 실력은 큰 아들 벼리에 비하면 말 그대로 벙어리 그 자체였다.


아내는 이곳에 있는 대다수의 한국 아이들이 하듯이 국제학교나 국제반이 있는 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지만, 나의 자격지심인지 아니면 다른 특정한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이를 국제 학교에 보낸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물론 보내고 싶어도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사실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다.

중국에 왔으면 중국의 로컬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나의 확고한 지론과 국제도시인 상하이에서 사는 것 자체가 바로 국제학교와 같은 환경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나는 작은 아들 누리를 완벽한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로컬 학교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약 나에게 보다 풍족한 경제적 여건이 주어졌다면, 나는 아마도 자식을 둔 여타 다른 부모의 바램과 같이 두말않고 내 아이를 국제 학교에 보내는 결정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자식을 더 나은 환경에서 더 좋은 공부를 시키고 싶은 모두 부모의 심정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말은 즉, 나의 이 교육에 대한 지론과 고집이 어떻게 보면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것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교육에 대한 방법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며, 다른 부모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다른 환경에서 그에 맞는 다른 선택을 했을뿐.


누리가 학교에 가는 첫날, 나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 단 한 가지를 부탁했다.

성적에 부담을 주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나는 아들이 성적이 좋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래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이고, 지금 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반드시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어렵게 자기 입으로 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던 아들이,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학교라는 환경을 더욱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가 즐겁게 학교를 다니기를 바랐다.

로컬 학교를 간 첫날 작은 아들은 집에서 애를 태우고 있던 나와는 달리 무덤덤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힘들지 않더냐는 나의 말에, 1년 동안 상하이에서 놀면서 지내던 것과 별 다른 게 없었다고 했다. 그저 또래의 애들을 보니 반가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받아온 교과서를 본 나는 그 수준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국어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20년을 중국에서 지내온 내가, 중국어로 된 고서와 의학서적을 읽으며 논문을 쓰던 내가 봐도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했고, 현대 중국어가 아닌 고문(古文)으로 된 내용도 가득했다. 두보와 이백, 그리고 백거이 등이 쓴 한시는 거의 매 장마다 한 두 개씩 들어가 있는 중국어 교과서였다.

내가 보았던 중국어로 된 전공 서적들


게다가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숙제였다.

아이들에게 학업의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는 중국 교육부의 정책에 따라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중국어와, 영어, 수학 숙제는 매일 상당한(외국인의 수준에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양으로 나왔다.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는 숙제와 공지 사항들은 자신이 직접 알림장에 적어 와야 했다. 하지만 글자를 읽지도 못하는 작은 아들 누리에게 그것을 적어 오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작은 아들에게 비상 연락용으로 마련해준 구형 휴대전화(아이폰 3GS)를 쥐어주고 수업이 마치면 칠판에 적힌 숙제를 사진으로 찍어 오라고 했다. 물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중국 교실의 규칙에 위배되는 일이었지만 선생님께 어느 정도 양해를 구했고, 누리에게도 친구들 몰래 찍어 오라는 조건이 있었다.

수업을 못 따라가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나는 작은 아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공부는 안 해도 숙제는 무조건 해 가자는 것이었다.

카페와 집에서 숙제를 하는 누리. 벽에 붙어 있는 송중기는 덤. 집이 춥다 보니 후드를 머리 끝까지... 완전 무장이 필요하다.


숙제를 하는 것이 바로 공부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했던 숙제는 정말 그냥 보여주는 숙제를 말했다.

작은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작은 아들과 나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숙제를 했다.

숙제를 한 것이 아니라 베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다행히(?) 숙제의 대부분은 인터넷에 답까지 친절하게 모두 있었다. 내가 그것을 베껴서 작은 아들에게 건네주면, 작은 아들을 그것을 다시 공책에 고대로 베껴 적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글자 공부는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인터넷을 검색하여 숙제의 답을 베껴오는 것은 학교에서 철저히 금지하는 것이었고 발각되면 호된 질책이 이어졌다.

한 번은 당나라의 시인이 쓴 글의 내용에 로켓 발사에 관한 내용으로 잘 못 베껴 내는 바람에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공개적으로 숙제 내용을 찢어 버린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다시 한번 학교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했다.

지금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숙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베낄지언정 스스로 인터넷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중국어 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베끼고 안 베끼고는 지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중국어 선생님은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이해를 한다며 양해를 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수학에서 다시 생겼다.


수업을 마친 누리와 친구들. 뒤로 마중 나온 학부모도 보인다.

어느 날 수업이 마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교문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중국은 학교가 마치면 학부모가 반드시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무슨 일인가 하고 교실로 가보니 땀을 뻘뻘 흘리며 울상이 된 채 책상에 앉아 있는 아들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에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교실에 들어가 보니 수학 선생님이 매서운 눈을 하고 앉아 있었다.

아들은 나를 보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듯한 모습으로 수학 시험의 문제를 틀렸다고 다시 하라고 하는데, 자신은 틀린 게 없고, 제출을 했지만 몇 번이나 다시 하라며 시험지를 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교탁에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작은 아들이 쓴 7이라는 숫자가 문제였다.

한국은 7을 쓸 때 앞이 갈고리처럼 꺾어져 있는 7 모양으로 쓰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시험지에 적힌 7을 다 고쳐 적으라고 했지만 아들은 그 말 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것으로 애를 괴롭히나 하는 생각에 나도 흥분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작은 아들 누리를 한 외국인으로 특별대우를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중국 아이들과 같이 하나의 학생으로 대우해 준 것이었다. 내가 놓칠뻔한 아주 중요한 착오를 그 선생님이 7이라는 숫자로 알려 준 것이었다. 작은 아들 누리도 지금에 와서는 그때의 수학 선생님이 정말 고마웠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수학에서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숫자로 적힌 수학식을 풀어서 답 구하는 것이 아들에게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답의 과정을 중국어로 설명하여 적으라는 응용문제는 작은 아들 누리에게 있어 더 이상 수학이 아니라 중국어 시험에 가까웠다.


중국어 숙제는 수준이 너무 높아 인터넷에서 베껴서 내면 되었지만, 수학 숙제는 답을 내는 것보다 그것을 풀어서 해석하는 중국어 공부를 해야 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중간고사가 다가 오자, 아들은 수학에 온 정성을 쏟는 듯했다. 영어 실력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영어 문제의 대부분이 중국어로 뜻을 묻는 것이라. 아들에게 있어 영어 시험은 그냥 중국어 시험과도 같았다.

즉, 중국어, 영어, 수학 수업은 내용만 다를 뿐 아들에게 있어 모두 중국어 수업이었다.

그나마 수학 시험에서 나오는 중국어가 쉬운 편이었다.


첫, 중간고사의 성적표가 나오자 우리는 축하 파티를 했다. 점수가 잘 나와서가 아니었다.

잘 버텨냈다는 자축 파티였다.

중국어는 100만 점에 4.5점이었다. 45점이 아니라 4.5점. 하지만 수학과 영어는 80에서 90점대의 그런대로 높은 점수를 받아 왔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은 우리의 분위기 때문인지 작은 아들 누리는 학교 생활을 의외로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다녔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이 외국인을 신기하게 보기도 했지만 모두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상하이에서 국제학교나 한국 학교를 다니는 다른 아이들이 겪는 따돌림이라든지 부모의 경제력으로 비교당하는 일은 보이지 않았다.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자, 아들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서히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국어(중국어) 시간에는 선생님 몰래 공책에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를 하면서 보냈고, 대신 수학은 집중을 해서 보냈다. 영어는 일반 영어수업은 힘들었지만 원어민 수업은 재미있어했다. 원어민 영어 수업만큼은 자기와 다른 친구들이 모두 동등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고 했다.

2학기의 중간고사의 결과는 놀라웠다.

국어는 한 자릿수 점수에서 두 자릿수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15점을 받아 왔다. 우리는 또 파티를 했다. 작은 아들은 우리 집이 이상한 집이라고 했다. 100점 만점에 15점 받았는데 파티를 하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을 거라 했다.

수학과 영어는 거의 반에서 3등 안에 드는 점수였다.


거의 매주 보는 중국어 테스트는  뜻도 모르고 그냥 글자만 줄창 외어 갔다. 그래서 간혹 62점을 받아 오기도 한다.

나는 아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부를 했다.

수학과 영어 점수가 너무 좋게 나와서 걱정이 되니, 이제 공부를 조금만 하자는 것이었다.

작은 아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들에게 지금 학교를 다니는 것은 점수가 잘 나오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인데, 자칫 잘못하면 점수에 메이다가 학교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아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지금 숙제만 하지 학원이나 과외도 받지 않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안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이제부터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TV도 조금 더 봐야 한다는 말을 하자 아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늘색 잠옷이 걸려 있는 누리의 책상.  그 옆으로 썰렁한 벼리의 책상도 보인다. 공부하는 책상은 아닌게 확실하다.

- 5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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