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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17. 2024

돼지 엄마? 술꾼 엄마!

키친드링커라고 아시나요

나는 키친드링커이다. 그런 말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우연히 기사에서 접했다.               


* 키친드링커 : '주방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란 뜻으로 주로 가족들이 없는 시간대에 집에서 지속적으로 혼자 술을 먹는 주부나 술을 과하게 마시는 여성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마치 술을 마시기 위해 대학을 간 것처럼 맹렬하게 입학과 동시에 술을 마셨던 시기에서 벌써 30년이 지났다. 안 마셨던 기간이 마셨던 기간보다 훨씬 적어진 셈이다.  임신기와 수유기, 아이 입시 한 달 전 금주 기간을 빼고는 거의 일 년의 360일 술을 마셨다. 청소하면서 맥주 한 캔,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한 캔, 축하할 일이 있어도 한 캔, 바쁜 하루 귀가 후 한 캔 이유는 많고도 많다.

원래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라 주부의 삶이 힘들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다. 커리어 우먼이 되었어도 아마 같은 결과였을 거다. 다만 전업주부의 삶이 몸에 딱 맞는 옷은 아니었기에 부대끼며 술의 양이 넘쳐났을 수도 있겠다. 주부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실제로 술을 많이 가까이한다고 하고 키친드링커라는 말은 주부우울증과 세트일 가능성이 많다. 어쩌면 나도 그 언저리에 있었을 수도 있다.               


돼지엄마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정보가 빠삭한 엄마를 일컫는다. 그만큼 그녀의 파워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쎘고 그녀의 픽을 받아야 정보나 팀 수업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예전에는 돼지엄마가 자연스럽게 대학을 보내고 학원 실장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시절 학원계에 종사했던 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다들 보통이 아니었다고 한다. 요즘엔 컴퓨터 사용이 용이한 것이 실장의 능력 중 하나지만 그때만 해도 컴퓨터를 잘 모르는 실장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한 실장님이 지인에게 “아우, 컴퓨터 다 써서 도대체 못 쓰겠어요.”라고 해서 무슨 말인가 가서 보니 파일을 바탕화면에 가득 채워놓은 후 컴퓨터를 다 썼다고 했다고 한다. 그 정도의 컴퓨터 실력에도 불구하고 10년 전에는 돼지엄마들은 취업이 됐다.


아이 초등 때 나도 돼지엄마를 영접한 적이 있다. 영접이란 것이 맞는 것이 그 사람은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않고 고고하기로 유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위한 탄탄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고 보란 듯이 2학년 때 학교 한 명만 뽑히는 영재로 뽑혔다. 범인과는 다른 듯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그 엄마와 다른 엄마들은 욕하면서도 같이 차를 마시고 싶어 했다. 그런 유명한 엄마가 나와 차를 마시게 된 것은 코딩학원에 다니고 있던 우리 아이가 출중한 실력을 가졌다고 원장이 그 엄마에게 이야기하면서였다. 중간에 다른 엄마의 소개를 같이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역시 남들이 다 아는 뻔한 학원이 아닌 숨겨진 학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대치동에 친구가 많아 정보가 많았던 거 같았고 모든 학원 선택에 확신에 차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이 있을 수 있는지 참으로 부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난생처음 들어본 수학학원을 소개받을 수 있었고 다행히 처음 발을 들인 동네 수학학원에서 문제 풀이가 너무 많아 괴로워하고 있던 아이는 매우 시기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그 엄마의 아이가  대차게 사춘기의 바람을 맞고 공부를 슬슬 안 하게 되면서 그 엄마는 학부모계에서 사라졌다. 돼지엄마는 아이에 의해 은퇴 시기도 정해진다.

살면서 종종 돼지엄마의 포스를 가진 사람들을 스치듯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술도 전혀 마시지 않겠지. 결국 확신과 자신감을 가진 그들과 술을 퍼마시고 의심이 많은 나와는 결이 많이 달라 관계는 지속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학원 실장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키친드링커라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이 크다. 키친드링커라는 말을 만들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과 선을 긋는 것은 주부의 우울감이 병적으로 발현된 것이라 생각해서인 거 같다. 차라리 약을 먹어라는 글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럭저럭 친구로 함께 해온 시절을 생각하면 나로서는 약보다는 쓸모가 있었다. 왜! 그러면 안 되냐고!! 돼지엄마를 할 정도로 자기 확신에 찬, 엄마 직업이 꼭 맞는 사람이 아니니 좀 핑계로 삼아보자고.

하지만 육아 졸업도 하고 있는 마당에 육아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도 이젠 더 이상 안 된다. 핑계도 바닥난 김에, 몸도 더 이상 안 받쳐주는 김에 매번 하는 거짓말이지만 절주의 다짐을 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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