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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16. 2024

누구나의 행복을 쫓지는 않았지만

중2  아들에게 건네준 편지

중2, 남들은 사춘기로 팔딱팔딱하는 시기에 아들은 올림피아드 3개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참 친구가 좋을 나이였으나 아이는 나가서 어울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공부의 길을 가게 되어 하루가 멀다 하고 학폭이 열리고 뒤숭숭한 때에 엄마는 마음 졸일 일 없이 솔직히 매우 편했더랬다.

오히려 시간이 남아돌아 글쓰기 프로그램에 가서 내가 한다 사춘기 했더라는.

그러면서도 아들 행복한 거지? 이래도 되는 거지? 속은 시끄러웠다.

 


오늘 수업은 행복에 관한 거였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도 좋다고 하니 당연히 엄마는 너를 생각하였지. 세상 누구보다 너의 행복이 엄마에게는 가장 중요하니까. 행복하기 위한 조언을 할 내공이 있는 것도, 닭살 멘트 날릴 성격도 아니고 그냥 엄마의 생각이 이렇다 정도로 참고해 주렴. 그러고 보니 엄마가 너에게 편지를 쓸까 하니 씨익 웃던 너의 미소가 지금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군. 아빠에게 농담 삼아 “오빠한테도 써주까” 하니 너~~~무 부담스럽다고 하더구나. 역시 아들밖에 없다.     

항상 행복하라는 말, 불가능한 거 너도 알지? 마음 같아서는 24시간 365일 내내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지만 또 막상 그러면 얼마나 지루할까 싶기도 해. 마음이 부대끼는 일을 겪어봐야 좋은 일을 눈치챌 감각도 생길 테고. 작은 아령에서 큰 아령으로 가듯 작은 실패와 고통을 연습해서 앞으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큰 고통과 시련에 의연해지는 것도 나쁠 것 없겠지. 그러나 그 무게는 누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이니까 네가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이 온다면 꼭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렴. 때 이르게 다가오는 그런 일들은 원래 함께 헤쳐 나가는 거야. 넌 아무리 훌륭해도 겨우 중2니까. 어른들의 세계에 걸쳐져 있을 나이니 아직은 엄마아빠가 도움이 된단다.     

엄마는 굳이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으려고.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야.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알 수 없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괜한 데 힘쓰기 싫다.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는 ‘끝내 명랑하자’고 그러더구나. 태도가 상황을 이겨낼 순 없지만 온전히 즐기거나 견디게 하는 힘은 주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런 명랑해지려는 노력은 필요하겠구나. 어쨌든 행복은 열심히 살다 문득 아님 나중에 지나고 나서 아 그것이 행복이었구나 하는 게 아닐까 해.     

언젠가 네가 4학년 때였을까 아빠가 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우리 아들 너무 든든했다’ 하니 어린데도 너는 매우 부담스럽다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 너는 항상 그랬어. 아주 어릴 때부터 기대 뒤에 오는 책임감의 무게를 알았지. 이런저런 큰 시험들 앞에서 기대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네가 최선을 다했든 아니든 스스로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란다. 뭐 다 알고 있지? 이제 너의 인생에서 어쩌면 별것도 아닐 수 있지만 꽤나 중요한 시험을 위해 엄청난 시간을 공부해야겠지. 엄마는 영재고에 가지 못할까 걱정이라기보다 네가 혹시나 실패를 해서 너무 슬퍼할까 봐 더 걱정이라고 하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실패할 수도 있지”라고 했지. 아마 실제로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네가 말한 그 마음이 나중에도 너를 지켜줄 거라 믿어. 혹시나 떨어지더라도 그 옆 다른 길에도 좋은 거 많단다. 이건 엄마가 살아봐서 아는데, 절대적으로 좋은 선택은 없더라고. 사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그 말들은 다 소용없을 것도 알아. 하지만 실패를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능력이더라. 그거라도 건지면 되는 거지. 인생에서 능력껏 최선을 다하는 경험도 나중에 돌아보면 어쩜 힘들기만 했던 줄 알았는데 괜찮은 일이었어 할 거야. 엄마는 그런 게 없었던 것이 좀 슬퍼.     

넌 세상에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는 거 같니? 친구가 꼭 많아야 하는 것도 돈을 꼭 많이 벌어야 하는 것도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생각해. 물론 다 가진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것에 집중하며 누구나의 삶이 내 삶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엄마는 아들이 너만의 행복을 가꿀 줄 알았으면 좋겠어. 세상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너의 올바름과 야망을 알기에 이런 말도 쉽게 던지는 거겠지. 살다가 남들처럼 못 사는 것에 불안할 때가 온다면 엄마의 편지를 보고 위로가 되었음 해서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엄마 최고 행복했던 순간은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유럽 여행이었어. 너는 스트라스부르 비 오는 거리에서 좋아서 아무 이유 없이 깡충깡충 뛰었지. 또 스위스 폰트레지아에 꼭 다시 오자고 머무르는 순간조차 아쉬워했던 그 시간을 잊지 않았단다. 네가 원할지 모르지만 엄마는 네가 대학에 들어가면 꼭 같이 다시 가고 싶다. 그런 우리 가족의 행복을 나이가 먹더라도 가끔 생각해 주렴.

이제와 말인데 “무슨 엄마가 이래 전형적 엄마 같지 않잖아”라고 해준 거 엄마는 좋았단다. 이제 친구로 너의 옆에 있고 싶네. 꼭 딸만 엄마랑 친구가 되는 거 아니잖아? 사랑한다 아들.     

2019.5


어쩌면 너는 남들과는 조금 달랐고 그게 걱정이어서 돌려 글을 적은 거 같아.

어쩌면 항상 부정적이며 패배주의자의 태도를 가진 엄마가 너의 실패를 더 걱정했던 거 같아.

어쩌면 공부하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교묘하게 너를 그 길로 밀어 넣었는지도 몰라.

어쩌면 누구나의 행복을 좇지 않는다고 하면서 더 원했는지도 몰라.


그 모든 의심이 사실이라 해도 

너를 사랑했다는 것만은 진심이었으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서로를 아끼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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