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책은 산으로 쌓을 만큼 많다. 아이와 나의 책 읽기는 강박처럼 접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일종의 선택지였다. 필요할 때 가서 집어 들었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면 잠시 잊고 놓아버리곤 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책을 읽으라는 것에는 삐딱하게 반기를 들게 된다. 책의 효용을 지나치게 공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글쎄. 유퀴즈에 나온 몇 년 전 수능 만점자 두 명에게 당연히 책 읽는 거 좋아하시지요 라고 하니 둘 다 아뇨 저흰 싫어해요 라고 심상하게 이야기했다. 그래,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성적은 정비례가 아니라고. 나를 봐!
나는 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다. 학급 도서부장도 매번 내 차지였고 다독상이나 독후감 상 같은 것도 빈번히 받았다. 그때 책을 읽었던 것은 어라 책을 읽으니 칭찬해주네가 컸다. 집안 형제들이 모두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읽게 된 것도 있었다. 뭐 딱히 놀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많이 읽은 독서가 국어 실력에 그리 도움이 된 거 같지는 않다. 나만의 해석이 시험 때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같은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오독과 나만 잘났어라는 마음만 한껏 심어주고 마음의 양식이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고 뭐든 내식대로 보는 마이너의 감성만 증폭시켰다. 괜히 심각한 척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책 속에 담긴 문장 문장이 글을 수식하게 하는 힘을 주는 영양제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글쎄. 뭐 어디든 쓰였겠지. 오히려 도움이 된 것은 집에 만화책이 없어 읽고 또 읽던 역사만화가 역사 지식을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한 효과는 있었다.
아이 어렸을 때는 전집을 사주는 것이 유행이었다. 다양한 분야를 읽어야 한다고 고전동화, 자연동화, 창작동화 등등 책장에 빼곡히 채워놓고 뿌듯했다. 하지만 인테리어였다.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책 인테리어에서 스스로 꺼내서 읽는 횟수는 많지 않았고 내가 읽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선택한 것이지 아이가 선택하지 않은 책 읽기는 스르르 어디론가 흘러서 사라졌다. 의무적으로 담임이 책을 읽게 한 초2 때부터 그럭저럭 스스로 책을 읽었다 초3 때부터 2030 미래탐구보고서 같은 책들을 읽었다. 눈치를 보니 이때의 독서는 나의 청소년기와 비슷한 목적이었다. 약간의 으스댐의 마음.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이해되지 않는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는. 초4 때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책을 많이 읽어 심지어 꽤 두꺼운 책을 읽으니 분명 나중에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력은 하지만 넘어가는 속도는 현저히 느렸고,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 난 거의 고등학교때까지 그런 걸. 그것도 독서의 원동력이니 그러고 싶음 그러렴.
그러다 영재고를 준비하면서 엄청난 공부량에 책은 멀어져만 갔다. 자소서에 적어야 하는 독서목록을 겨우 채우는 수준이었다. 다시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지면서 고2때는 엄청난 독서를 해댔다. 필요할 때 책은 기다리고 있다 넓은 품을 내주었다. 맘껏 그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넓혀가는 방법을 스스로 즐기게 된 듯싶었다.
억지로 끌어다 읽히는 책은 물론이거니와 수동적으로 골라준 책들은 안드로메다로 갈 수밖에 없다. 주입해서 넣지 않는 한 책이야말로 자발성이 생명이다.
나도 한동안 책을 읽지 않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서 읽는 정도에 멈춰있다 몇 년 집중해서 책을 읽었던 시기가 있다. 흔들리는 시기에 책을 찾아가는 것은 아이나 나나 비슷하다. 하루에 한 권씩 책 읽는 엄마를 아이는 좋아했다. 그러고 다시 뚝. 엄마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때려치운 지 한참이어도 간섭하진 않았다.
나는 요즘 슬슬 책을 찾는다. 무언가 또 움직이는 때인가 보다. 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줄게 이야기하라 해서 비교적 최신작이라 동네도서관에서 구하기 어려운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을 빌려다 달라고 하니 놀랍게도 아이가 이미 빌려놓은 책이었다. 이런 순간은 즐겁다.
아이는 요즘 집 책장에서 괴델 에셔 바흐 같은 것을 찾아내어 아니 이게 우리집에 있었어 하며 읽곤 한다. 남편과 내가 결혼 전에 소장했던 아주 오래된 30년전의 색바랜 책들을 은근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누군지도 모르다 한두 장 읽더니 이게 뭐야 은근 재밌네 한다. 남편과 나의 취향은 극단적으로 다른데 아이는 둘 다 큰 거부감이 없다. 책 읽기는 때론 자연스럽게 가족 사이를 연결해 주는 끈이 되어준다.
선택은 상호작용적이며 강박은 일방적이기 쉽다.
진정 필요하다면 다가올 것이고 오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다른 선택지에서 뛰노는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