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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19. 2024

고등 3년은 내내 입시였다

비상구는 없다

초중고의 시간이 오로지 대학입시로 수렴되는  우리나라의 전통은 30년 전이랑 전혀 달라진 게 없다.

Ai가 세상을 천지개벽하게 바꿀 거라고 시끄러워도 입시 현장은 놀라울 정도로 흔들림이 없다. 이런 교육의 쓸모를 묻기엔 다들 처한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달음질쳐 깃발을 꽂는 데에만 열심이다. 질문은 사치다.

오로지 탈출이 목적이고 탈출 이후의 허무함은 다음 문제다.


학종은 사람 피를 말리는 입시제도다.

중간, 기말 하나하나가 다 중요해서 한 번 삐끗하면 타격이 컸기에 건강관리에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흑염소 진액이며 홍삼이며 온갖 좋다는 약들을 다 때려 넣었고

귀가 주에는 잔칫상처럼 온갖 음식들을 차려놓고 먹이기에 바뻤다. 

우리 역시 대학입시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외길만 바라보며 나아갔고

마침내 길이 끝났다.

영재고라고 딱히 일반고와 다르지 않았다

시험을 위한 공부와 학문적 열정을 가지고 접근하는 공부는 확연히 달라서

타임어택과 유형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 많았다. 아이는 관심 있는 것을 깊이 있게 공부할 배짱을 가끔씩 부리긴 했지만 불안감도 항상 따라왔다

시험은 물론 수행과 연구까지 몰아치는 3년의 시간을 혼자 견뎌내며 입시도 입시지만 혼자 서는 연습을 혹독하게 했다.



8시 20분부터 아이는 자고 있다. 아이의 대입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일무이한 면접이 있는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새벽 5시 15분에 일어나서 20분에 출발한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알람을 맞춰놓은 상태다.

자고 싶다고 그 시간에 잠이 들 수 있다니 나와는 참으로 다르다. 약 30년 전 학력고사를 앞두고 그 전날 잠을 설치고 너무 떨어서 시험도 보란 듯이 말아먹었던 나는 12년의 세월도 같이 말아먹었었다. 공부에 뜻도 없으면서 그냥 해야 하니까 했던 사람이었기에 탈출만이 목표여서 재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여러모로 다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잘 갈린 검처럼, 내내 준비해 왔다.

“이렇게 끝나다니 내일 어디서 불꽃놀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 나도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그간의 시간이 내일 시험을 위해서 모두 달려온 것처럼 내일 이후의 생활은 다르고 다르고 다를 것이다. 시간에 쫓겨 압박감에 쫓겨 마음껏 놀지 못했던 아이가 살아갈 인생은 내일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마음껏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시간도 제멋대로 쓸 것이다. 편안히 영화도 미술관도 가서 즐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도 기억하는 한 처음일 것이다.

고입을 치룰 때는 꽤 긴장했었다. 전날 잠도 설친 데다 아침에 일찍 가서 먹은 삼계탕을 바로 화장실에 가서 개워놓고 새로 편할 줄 알고 착용했던 마스크는 계속 입에 달라붙어 구역질이 나서 시험에 집중할 수 없어서 정신이 혼미했다고 한다. 평소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을 느끼는 아이를 걱정해서 하향 지원을 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낭패였을 시험이었다.     

이번엔 결코 하향 지원이 아니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되기 위해서, 그간에 단단해진 아이를 믿기에, 배수의 진을 치기도 했기에 갈 수 있었던 길이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도전하지 않아서 했을 후회보다 크지 않을 것이기에 신중히 오래 결정했다. 그리 많이 나는 떨리지는 않는다. 다만 새로운 마스크를 주어서 아이를 힘들게 했던 초보 엄마가 아니기 위해 내일 입을 옷을 한번 입혀본다던가 오늘 덥을 이불을 한번 덮어본다던가의 일들 정도는 했다. 아이의 콧물을 비 오듯이 나오게 하는 강아지는 언니네에 미리 맡겨두고 방의 온도를 살며시 들어가서 틈틈이 체크하고 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게 하기 위해 들어가 보면서 기침이 나면 습도가 안 맞나 싶어 수건을 적셔 넣어두면서 아이가 혹여나 나 때문에 깰까 봐 심장이 콩콩 뛰기는 한다. 나는 오늘 밤을 새울 작정이다.  다섯시에 일어날 자신이 없기도 하지만 이 순간을 오롯이 지나가고 싶기도 해서다.

- 입시 전야

    


언제 그랬냐는 듯 작년의 기억이 아득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누가 무슨 공부가 필요하냐 물어보면 이것저것 다 필요 없다고 한다.

지나고 나서 바라보는 과거는 기억이 드문드문해 왜곡도 쉽다. 

비상구가 없었다는 기억만은 선명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듯 대학 입학이란 관문을 넘어서면서 아이도 나도 자유를 얻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왔다.

짜증 나지만 그게 현실이다. 벗어나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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